오늘 일도 일찍 끝나고 내일도 노는 날이기 때문에 갑자기 흥이 돋아 씀
오늘은 술마실 일도 없고 오랜만에 아무생각없이 자빠져 쉴수있음
오늘 내가 이 잡설들을 펼치는 것은 바로 뇌격권을 사용하고 싶어 안절부절못하는 하후봉도의 마음과 같다
오늘의 쟁빠들은 부디 철령간 따위는 씹어먹을 호신강기를 익혔기를 바란다
1. 군조
군조라는 캐릭터는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작중에서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까고 있기는 하지만 정말 신선같은 풍모와 분위기에 반해 미친놈같은 면모가 잘 대조되기 때문이다.
vs석대문전에서의 묘사를 보자.
"검객은 추괴하고 마두는 기품 있었다."
이런 묘사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신선을 자처하면서도 잔인하기가 작중 톱을 달리는 군조의 짓거리를 화상입은 석대문이 징벌하는 '청천' 챕터는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부분.
그리고 군조와 노동옥이 백낙천의 비파행을 읊으면서 자뻑질하는 것도 인상깊었다. 비파행은 개인적으로 감동깊게 읽은 시라서, 정신나간 놈이
점잔빼면서 흥취를 돋구는 장면이 정말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지더라.
조명무라는 조연도 상당히 잘 만든 조연으로 보이고.
조명무가 군조와 만나 수작질을 부리는 장면의 묘사
"하늘에 걸린 그믐달도 이들의 수작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지 구름 뒤편으로 모습을 감췄다."
칠성노조 곽조가 어떤 식으로 표현될 지 궁금하기도 하다. 건정회 결성일에 우근과 잠깐 티격태격하긴 했는데,
뭐 결말부니 비중을 안 둬 버릴 수도 있겠고.
군조를 보면서 천룡팔부의 정춘추가 떠오른 것은 나뿐이었을까?
차이가 있다면 정춘추는 사실 개그캐릭터에 가까웠지만 군조는 정말 섬뜩하고 잔인한 정신병자라는 정도.
캬 근데 천룡팔부의 클라이맥스인 소림사 집회가 갑자기 생각난다.
정춘추 제자들이 "우리 성숙노선은 짱이라능! 개방은 좆밥이라능!" 하면서 병신짓하고 있을 때
"성숙파의 무공이 개방의 항룡십팔장보다 낫다고 말하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서 연운십팔기와 함께 밀어닥치는 소봉...
2. 이재일과 군상극
쟁선계는 군상극이니까 호불호가 존나 갈린다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요즘 회의가 들기는 한다.
이건 군상극이라기보다는 옴니버스에 가깝다고 해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ㅋㅋㅋ
주인공이 미미해지는 거야 내 관점에서는 전혀 약점이 아니고..
장길산의 주인공 장길산은 중반부 이후 등장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근데 장길산이 존나 병신같고 감정이입 안되는 소설인가?
뭐 이건 더 하면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패스
그리고 계속 강조해 왔는데 묘사상의 비중과 스토리 상의 비중이 일치하지 않는 건 분명한 단점이다.
존나 공들여 묘사해놓고 순식간에 오징어 만들어놓는다든지..
앞의 군조건도 그런데, 진짜 중원을 다 잡아먹을 것처럼 위험하게 써놓고, 방기옥에 화비정까지 죽여놓고, 석대문한테 3초식만에 깨갱..
금부도 건도 그렇고.
연벽제도 혈마귀와 같이 죽으면서 큰 스토리라인에서는 없어도 무방한 인물이 되어 버렸다. 난 태고의 4망령 설정이 정말 싫거든.
3. 에피소드의 연출
이게 2번과 연결되는 건데, 메인 스토리에 아무짝에도 관련없거나 별 중요하지 않은 에피소드가 정말 공들여 쓰인 게 몇 개 있다.
금부도 같은 경우는 그 자체를 따로 3권짜리 무협으로 냈다면 아주 훌륭한 작품이 되었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민파대릉과 아리수의 치정극..
어장관리 개썅년 하나한테 제대로 물려서 고생고생하는 형제와 그에 따라 개박살나는 문파.. 포리기하라는 멋진 캐릭터..
여기에 개입하는 비각과 무양문에 금청위 사망씬까지. 아마 백야의 취생몽사와 비슷한 퀄리티의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상당히 호평받는 에피소드 중 하나인 연극 챕터도 그렇다.
이건 예전에 어떤 아재가 잘 써줘서 자세히 적진 않겠음
그리고 개귀문 챕터.
이것도 솔직히 석안과 화소임을 만나는 것, 양진삼의 대비각 공작 준비를 빼면 너무 길기는 하다. 중요한 건 마지막 구절이다.
7월 1일에 연극 챕터의 영향으로 무양문의 삼로군이 출진했다. 칠월 초하루가 되면 신화 속에 있다는 도삭산 귀문이 열리고 그 안의 귀신들이 뛰쳐 나와 날뛴다는 내용이다.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었던 서문숭의 움직임을 전설 속의 귀문이 열리는 것과 짝을 맞춘 연출은 기가 막혔다.
이런 식의 묘사가 또 있다. 붕악에서 연벽제에게 죽기 전, 소철이 자기 자신을 낙엽과 비유하는 묘사..
소철 하니까 생각나는 건 화암차가 있다. 군조가 만든 차를 소철에게 복용시키는 문강의 술책이었는데, 요거의 다른 이름이 화연(化然)..
칠십 대 노인은 칠십 대 노인이 되어가는 것..
책사 챕터의 운리학 파트 마지막을 보자.
운리학 파트 자체는 과거사를 쫙 정리해 주는 역할이라 딱히 임팩트는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이호가 천자문을 읽고 있는데 마침 그 구절이 운리학의 지금 상태와 맞아떨어진다. 심동신피 수진지만이라는 구절로 기억하는데,
"지켜야 할 참됨이 무엇인지, 채워야 할 뜻이 무엇인지, 혼란스럽기만 한 늙은 책사는 조수처럼 밀려오는 피로를 견디기 힘들었다."
설명은 생략..
맹룡과강 파트를 보자.
장강을 건너는 다리를 직접 만들어 놓고, 강물에 흔들리는 시커먼 다리를 용이라 표현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천주산에서 산적 두목과 그 늙은 남편의 러브스토리도 있다. 이걸 읽으면서 이재일은 의외로 로맨스에 소질이 있다고 느꼈는데, 진금영 끔살에서
아웃. 무갤에서 존나게 까이는 개방의 소읍논쟁도 그렇고.
아무튼 짤막짤막한 에피소드 연출하는 능력은 정말 발군으로 보인다. 다만 철저하게 짜맞춰진 설정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연재라는 특수성 때문에 비중이 들쭉날쭉한 것일 테다. 드라마 작가 하면 참 잘 할 것 같다.
뭐 더 있겠는데 쓰다보니 귀찮아서 뻐큐.
이분 쟁선계 읽을줄 아는분
맹룡과강 하니까 생각나는데, 한자가 의미하는 건 비유인데 개세마두께선 그걸 이야기속에 직설적으로 매치시키는 걸 좋아하는 듯. 예를 들면 삼화취정은 무공 경지인데 진짜로 정수리에 세 꽃이 피고, 금선탈각은 계책 이름인데 진짜 매미가 우화하고.
쟁선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고, 또 그만큼 높이 평가하기도 하는데, 막상 보다보면 단점은 보여서 또 걍 막 빨지만은 않게되는 좀 묘한 소설..
2번같은 경우, 지금와서 보니 혈마귀 퇴치는 이재일이 상당히 공들이고 크게 다룬 내용이라고 봄. 석무경의 진짜 목적도 결국은 비각 퇴치가 아님 혈마귀 때려잡기였고. (운리학은 이에 충분히 빡칠만한듯) 그래서 난 쟁선계 본편에서 석대원 다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 중 하나가 연벽제라고 생각함. 결말부를 지배했다는 점에서 보면 주연급이고. 이 글에 받아서 뭘 더 적고싶지만 나가봐야돼서 ㅋㅋㅋㅋ
각 장면들은 판소리나 연극의 에피소드로 삼아도 괜찮을 것 같아. 위에 태빠형이 적어놨듯이, 스토리상 비중과 연출상 비중이 다른 경우가 많은데(군조, 이창 등), 오히려 그게 해학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야. 기존 무협지에서 느껴지던 비장함이나 몰입도와는 다른.
너무 꼼꼼하게 읽어서 그런듯
지금까지 본것중에서 본편과 가장 동떨어진 에피소드는 서북풍. 그건 그냥 시퀄을 위한 챕터일뿐 아무 의미가 없음ㅋㅋ금부도에선 마누라라도 구했지. 나중에 직접 죽이긴하지만.. 어쨌든 전체를 잇는 줄기와 연결되는게 조금이라도 있는데 반해 (진금영. 천잠포도 전체 내용에선 별 의미없는 도구고.. 나중에 토목의변때 활약하겠지만 이것도 시퀄을 위한 장치에 가까울듯) 서북풍은 그런게 아예 없음. 천주산이야 그냥 자기가 쓰고싶었던 무협단편 하나 쓴 느낌이고
스토리와 연출상 비중 차이는 연재 재개하면서 두드러지는데, 연재 재개 이후 이재일의 표현 방식 차이에 대한 것으로 보임. 곡리혈사 지금 다시 쓴다고 하면 제갈휘가 아무리 방심하고 주화입마 입어도 그런 놈들한테 기스라도 나는게 상상이 안감. 그렇게 만들어놨음ㅋㅋㅋ
이분..
난 쟁선계를 아주 재미나게 읽고 있다. 연재전에 쟁선계 9권까지인가 읽고 군림천하에 빠져있다가 다시 쟁선계 연재분량을 읽는데 전체적인 문체나 내용의 짜임새가 군림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근런데 웃긴거는 군림은 두번 세번 읽어도 별로 질리거나 힘들거나 하지 않았는데 쟁선계는 두번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 이유가 위에 써있는거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