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산월은 그녀의 입술이 고집스럽게 닫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아마 어제의 일로 심기가 불편해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진산월은 이런 정도로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도 진산월이 얼마나 심기가 깊은 인물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게 아닐까? 신검무적이 한낮 아녀자의 투정에 넘어가리라고 생각한단 말인가?
잠시 후에 진산월은 입을 열었다.
"나는 사매와 자지 않았소."
단봉공주는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왜요? 당신들은 서로 정혼한 사이가 아니었나요?"
진산월의 음성은 무뚝뚝했다.
"친구의 아내는 안지않아."
단봉공주는 한참동안 아무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모용공자가 당신같은 사람과 친구가 되다니 믿어지지 않아요."
"나 같은 사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같은 사람. 모용공자는 당신하고 너무 틀려요. 성격도 틀리고 분위기도 틀리지요....
모용공자라면 절대로 당신이 했던 말 같은 건 하지 않아요."
그녀는 아직 알지 못하는게 분명하다.
인간이란 서로 비슷할수록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다를수록 더 가까워진다는 것을....
성격이 정 반대인 사람일수록 상대방에게서 자신에게 없는 걸 발견하고 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녀가 어째서 당신같은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알 것 같아요. 당신은 무뚝뚝하고, 냉혹하고, 사람을 두렵게
하지만...또한...또한...." 그녀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그녀의 얼굴에 붉은 홍조가 피어 올랐다.
아침햇살을 받으며 얼굴을 붉게 물들이는 그녀의 모습은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다 합친 것 같았다.
진산월은 그녀를 곤궁에서 구해 주었다.
"또한 그런대로 매력도 있지."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요. 그런대로..."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자들이 살인자(殺人者)에게 곧잘 반한다는 말이 사실인가봐요."
(중략)
산의 정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하나의 거대한 건물이 있었다.
그 건물은 유난히 짙은 운해속에 쌓여 있어 흡사 환상속의 조각품같았다.
이토록 깊은 산중에 이토록 거대한 건축물이 있다는 것은 누구도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진 건물의 위로 우뚝우뚝 솟은 전각의 지붕이 그림처럼 드러나 있었다.
진산월은 건물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건물에서 십 여장 떨어진 곳에 하나의 거대한 암석이 서 있었다.
암석의 중앙에는 황금색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천룡사라고 새겨진 거대한 글씨였다.
그렇다, 이곳이 바로 서장무림의 성역이자 중원과 패권을 다투고 있는 서장 천룡사의 본부인 것이다.
진산월은 글씨가 새겨진 거대한 암석앞에 우뚝 섰다.
암석의 크기는 무려 삼 장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진산월은 암석에 파여진 거의 일 장에 달하는 글씨를 바라보고 있다가.
벼락같이 일장을 내질렀다. 태인장이었다.
"꽝!"
건물 전체를 뒤흔드는 듯한 요란한 폭음과 함께 거대한 암석이 그대로 박살나 버렸다.
실로 무시무시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가공한 장력이었다.
사방으로 비산되는 돌조각을 우박처럼 맞으며 진산월은 부서진 암석앞에 묵묵히 서 있었다.
침묵에 잠겨있던 천룡사의 건물안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한 떼의 인영이
건물 밖으로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앞으로 달려나왔다가 거대한 암석이 박살나 있는 것을
보고 대경실색하여 경악성을 내질렀다.
"앗!"
그들은 너무도 엄청난 광경에 놀라 모두들 멍청하게 부서진 암석의 잔해와 그 앞에 서있는
진산월을 번갈아가며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들로서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갑자기 벼락이 치는 듯한 굉음에 놀라 달려와보니 삼장에 달하는 거대한 천룡사의
현석이 돌조각으로 변해있다니.. 혹시 이자가 폭약이라도 쓴게 아닐까?
그들중 유난히 눈썹이 짙은 라마승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시주는 누구시오? 감히 천룡사 앞에서 이런 행패를 부린단 말이오?"
진산월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고적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졌다. 막 소리를 질렀던 라마승은 진산월의 고적한 눈과 마주치자
모골이 송연해져서 입을 다물었다.
진산월의 입이 천천히 열리며 조용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야율척을 불러오시오..."
그 음성... 그 태도.. 그 눈빛!
장내에는 이십여명의 라마승이 있었지만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하나 누군가는 입을 열어야 했다.
"당신은 대체 누구시오? 무엇때문에 밀주님을 만난다는 말이오?"
그리고 들려오는 음성 하나
"그는 살아있는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오."
동시에 진산월의 몸은 무서운 속도로 그들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가장 앞에 있던 세 명의 무승들이 엉겁결에 손을 내밀어 그에게 맞서려 했다.
하나 그것은 너무도 무의미하고 부질없는 짓에 불과했다.
콰쾅!
굉음과 함께 세 명의 무승들은 세 가닥의 비명을 지르며 십여장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크아악!"
장력에 피떡이된 그들에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물이 사방에 안개처럼 퍼져나갔다.
"피..피해라!"
"미...미친 살인귀다!"
놀란 라마승들이 다급한 외침을 토하며 물러섰다가 진산월을 향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하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진산월은 천천히 검을 뽑았다. 용영검이 우윳빛 검광을 뿌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용영검은 한줄기 돌풍처럼 그들의 몸을 사정없이 휩쓸어버렸다.
서걱!
진산월을 향해 장력을 날리던 무승 하나가 목덜미가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비명도 지르지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또 다른 무승 하나는 용영검에서 나온 검기에 왼쪽 옆구리부터 오른쪽 옆구리까지 그대로
관통되어 처참한 모습으로 나뒹굴었다.
양쪽에서 달려들던 두 무승은 끝도없는 구름같은 검기에 휘감겨 전신이 난도질된 참혹한 모습으로 절명했다.
그것은 가히 일방적인 도살이라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사람들을 베어죽이는 진산월의 모습은 지옥의 사신과 다를바가 없었다.
핏물이 튄 얼굴로 조용히 고개를 드는 그의 얼굴에 깊게 파인 흉터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 순간 라마승들의 틈에서 비명에 가까운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시...신검무적!."
"신검무적이닷.!"
무승들 중에는 서장무림과의 첫 충돌때 선봉에 선 진산월의 모습을 본자가 있는 듯
그 말은 가뜩이나 공포에 질려 있던 승려들에 가슴에 불을 지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중략)
진산월은 전신에 피칠을 한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 폭의 지옥도가 눈앞에 펼쳐져있었다.
잘려진 팔과 피떡이 된 시신... 난도질된 시체.... 그 선열한 핏물과 시체의 산은
인간의 손에 의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될 수없는 참혹한 것이었다.
진산월은 핏물을 밟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내단은 이상하리만치 적막감에 휩싸여 있었다. 아주 넓은 장소였고, 천장도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높았다.건물의 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넓고 웅장한 장소였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터무니없이 넓고 큰 내단 안에는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진산월은 피로 물든 몸을 움직여 내단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때 아득히 저 멀리에 있는 내단의 반대편 벽에있는 작은 문이 열렸다.
가까이에 가서 보면 상당히 큰 문일게 틀림없지만, 진산월이 있는 곳에서는 작아 보였다.
그것은 다시말하면 이 내단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를 여실히 말해 주는 것이었다.
반대편의 열린 문에서 네 명의 승려가 걸어나왔다.
그들은 어깨에 하나의 침상을 메고 있었다. 침상위에 한 사람이 비스듬히 누워 있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들이 다가올수록 침상위에 누워 있는 사람의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금포를 입은 비쩍 마른 인물이었다. 얼마나 깡말랐는지 입고 있는 금포가 헐렁헐렁해서 금시라도
벗겨져 버릴 것만 같았다. 머리는 거의 벗겨져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흘러내려 있었고, 주름살 가득한 얼굴에는 검버섯이 여기저기 피어 있었다.
그 검버섯은 금포중년인이 예전에 매우 악독한 독에 중독되어 내장이 썩어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승려들은 마침내 진산월의 바로 앞까지 도착했다.
금포중년인은 죽어가고 있었다. 진산월은 한눈에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검버섯이 얼굴 전체로 확대되어 본래의 얼굴 모습이 어땠는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주름살 투성이의 얼굴속에 박혀 있는 두 눈에서는 진물이 뚝뚝 내려 보기에도 끔찍할 정도였다.
대체 이 금포 중년인은 누구란 말인가?
진산월이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금포 중년인은 침상위에 누운 채로 힘없이 그를 올려다 보았다.
금포 중년인의 메마른 입술이 열리며 거의 꺼져가는 듯한 미약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본좌가...누구인지 아는가?"
거의 개미가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였다.
진산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포 중년인은 다시 물었다.
"본좌가 누구인가?"
진산월은 한동안 그를 내려다 보다가 짤막하게 입을 열었다.
"야율척."
금포 중년인의 검버섯 가득한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주름살 몇 개가 움직인 듯한 모습이었으나 그것은 분명한 미소였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씁쓸한 미소였다.
"내가 바로 야율척일세..."
야율척!
눈앞의 이 금시라도 관속으로 들어가 버릴 것 같은 병자가
바로 서장무림의 주인이며 검성 모용단죽조차 뛰어넘었다는 서장제일인 야율척이란 말인가?
가공할 취와미인상의 검초와 천룡사의 대수인으로 일세를 풍미하던 절대고수란 말인가?
그것은 실로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율척은 한차례 메마른 기침을 쿨럭거렸다.
"쿨룩....쿨룩... 본좌는 삼 년전에 악독한 절독에 중독당해 이런 꼴이 되어버렸네.
일어나서 손님을 맞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 주겠나.."
야율척의 음성은 금시라도 꺼질 듯 하면서도 용케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진산월은 감히 그에게 독을 쓴 것이 누군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누구요?"
야율척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용단죽."
모용단죽!
이 이름을 듣는 순간 진산월의 가슴에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회오리쳤다.
자타가 공인하는 천하제일고수!
출도한 후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무적의 절대자!
중원무림의 성역인 구궁보의 주인!
그리고... 모용봉의 조부...
그의 이름을 이곳에서 듣게 된 것이다.
진산월은 너무나 의아하여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아난대활불에게 미인상의 무공을 가져다 준 조익현은 어디에 있소?"
야율척은 꺼질 듯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갔다.
"태사부님은 오래전에 모용단죽의 부추김을 받은 천룡객과 칠주야를 싸워 양패구상하셨네
나는 그 분의 유지를 이어 중원무림으로 나가려고 했지
그러나 나의 실력으로는 모용단죽에게 이길 수 없었네..."
(중략)
그것은 모든 진실을 알고 천룡사로 항햔 줄 알았던 진산월에게는 놀라운 말이었다
백년내 중원무림의 큰 사건의 원흉이라 생각했던 조익현과 석동이 이미 죽었다니...
그리고 암중에서 모용단죽이 그 사건들을 모두 조종했던 거였다니!
"모용단죽의 무공은 이미 인간의 경지를 벗어났네.. 이제 인세에는 그를 당할자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적어도 자네가 나타날 때까지는...."
야율척은 흐릿한 눈으로 진산월을 물끄러미 올려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자네를 보고서야 비로소 모용단죽을 상대할 수 있는 인물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았네.
강호의 소문은 왕왕 와전되기 마련이라 본좌는 소문을 별로 믿지 않는 성격이거든..."
"....."
"모용단죽도 그것을 알았겠지.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까... 자네를 이리 보냈을거야 아니..
자네가 나타날 때부터 이리 될 것을 알고 있었을거야 그는 그런 인물이거든..."
야율척은 문득 고개를 들어 진산월을 응시했다. 그의 주름지고 검버섯 핀 얼굴에는
기이한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본좌가 아픈 몸을 이끌면서 자네를 만나러 나온 것은 한 가지 이유가 있네."
진산월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오늘로서 천룡사는 서장무림에서 사라지게 되었네. 본좌의 네 명의 사숙인 사대불법존자는
실질적으로 천룡사를 이끌어가는 중추세력들이었네. 그들이 모두 자네 손에 쓰러진 이상
이제 천룡사와 서장무림은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아."
"......"
"자네를 탓하려거나 원한을 갚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세 쿨룩..쿨룩..
다만 나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서장무림에는 손을 쓰지 말아주지 않겠는가?
다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부탁일세.."
진산월은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살심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심지가 다 타버린 등잔같은 몸이었다. 진산월이 굳이 손을 쓰지않아도 며칠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진산월은 한동안 야율척의 검버섯이 가득한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가 천천히 등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소."
야율척은 드물게 보는 밝은 웃음을 지었다.
"고맙네"
그는 다시 네 명의 승려가 맨 침상을 타고 사라져갔다.
그것이 진산월이 본 야율척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진산월이 떠난 지 이틀 후에 야율척은 파란만장했던 일생을 마무리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던 것이다.
독보건곤은 마검패검보다 내용이 많아서 2개로 끊어서 올림 헤헤
개년글로 가버렷 - DCW
벌컥벌컥 꺼억~
글쓴횽 옆에 독보건곤 놓고 쓰는거야? 앞에 마검패검도 그렇고 콜라보 정말 죽이네 ㅎㅎ. 독보건곤 다음엔 태극문과 콜라보도 좋을듯 ㅋ.
캬 퀄리티 보소...
틀려요(x) 달라요(o) 너무 아쉬워서 댓글로 남긴다
ㄴ 나도 모르는게 아니라 살짝 고민했는데 독보건곤 원문이 그래서 그냥 씀 용노괴도 맞춤법 그런 기본도 모르진 않을테니 일부러 그렇게 쓴것 같기도 하다 틀려요라고 하면 넌 그놈하고 다른게 아니라 그냥 틀려먹은 새끼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쓴 것같기도 하거든
아래쪽에 노독행만 진산월로 고치면 될 듯 → 야율척은 흐릿한 눈으로 노독행을 쳐다보며
걍 넘어갈까하다가 퀄이 좋아서 쓰는 건데.. 가공한 장력→가공할(?) 장력.. 암튼 잘보고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