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협이 어쩌니 하면서 사기까지 들먹거리는데 사기 자객열전, 유협열전에 나오는 '협'은 실정법이나 보편적 윤리와 같은 외재적 규범의 승인을 요하지 않는, 오직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면 그 자체로 규범력을 갖는 내면적 행위윤리로서의 코드를 의미함. 저 사람이 나에게 잘해 주었으니 그의 원수를 죽여 주겠다, 그게 정치적 테러이건 말건 나에게는 상관없다는 식. 여기서 개인적 코드로서의 '협'과 대립하는 대상은 어디까지나 실정법으로서의 '법'이지, '정의'가 아님. 실제로 사기 열전에서 이렇게 각자의 내면적 코드로서의 협을 따르는 유협(遊俠)과 대립되는 존재로 등장하는 것은 법가적으로 실정법을 관철하는 혹리(酷吏)이고.
협이 정의의 대립항이라면 자객열전이나 유협열전에 나오는 자객이나 유협들은 협을 따르면서 정의에 반했다는 소린데, 애초에 그네들한테는 그 자신의 내면적 코드로서의 협이 바로 응당 따라야 할 옳은 도리로서의 '정의'인데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협과 실정법 또는 협과 보편적 윤리가 다르다는 거면 모를까, 협과 정의가 다르다면서 협과 정의를 대비시키는 건 머가리 나쁜 무알못 인증하는 격.
정의가 사회적 규범이나 보편적인 윤리를 의미하지 않고, 내면적인 신념이나 도리를 의미한다면 맞는 말.
다만 시로시로는 정의=세상 모두를 이롭게 하는 보편적인 완벽한 행동 으로 보고 있어서 그렇지 않을 경우가 있다는 것 뿐
정의의 사전적 의미는 '올바른 도리'이고, 이건 흄의 is–ought 기준에서 볼 때 ought에 해당하는 당위를 의미함. 유협에게 그러한 당위는 어디까지나 본인 자신의 내면적 코드로서의 협임. 대체 왜 정의의 사전적 의미를 넘어 사회적 규범이니 보편적인 윤리라는 의미를 씌워서 협과 대비시킴?
시로한테 물어봐 왜 그러는지 궁금하네ㅋㅋㅋㅋㅋ
몰랐음? 쌍팔년도 유협열전에 나오는 유협도 확립된 법질서나 보편적 윤리에 반하더라도 본인의 코드를 관철한다는 점에서는 IS 지하디스트와 다를 바 없다는 거?
협과 정의는 완전 동일시되지도 완전히 대비되지도 않는다. 유협의 행위가 언제나 정의를 동반하지는 않지만 때로는 정의에 부합되는 행동을 한다고 보여질 수도 있기 때문. 복수행은 협에 입각한 행동이지만 그 일련의 과정과 결과에서 정의롭지 못한 행위가 나탈 수 있음.
정의의 의미를 확대해석한 건, 현재 보편적으로 정의라는 개념이 사회적인 것이 되어서 그렇게 했음. 그리고 나는 협과 정의가 반대된다 대립한다고는 하지 않았고, 사회적인 정의와 반드시 합치되지만은 않는다고 말함
'협'이 사회적으로 확립된 법질서나 보편적 윤리와 대치된다는 건 부정 안 하니까 그것들과 대비하면 됨. '협'과 '정의'는 다르다며 틀린 소리 늘어놓는 건 관두고.
정의라는 게 애초에 모든 사람이 합의한 그런 정의는 없음.. 그냥 힘의 의지로 작용되는 부분임..
저 말이 가장 정확한 것으로 느껴짐. 애시당초 '정의'의 개념이 모호한 상태로 싸웠기 때문에.. 그냥 '협'이 윤리나 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선에서 정리하는 게 제일 낫겠음
시로대협께서 보편적 윤리에 정의라는 이름을 씌워서 말하니 네가 생각하는 그 정의와는 다르다고 했지 협과 모든 정의는 다르단 말은 한적이 없는데 누군가의 정의에 맞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며 시로가 생각하고 일반적인 작가들이 생각하는 정의는 사람수만큼 많은 정의의 한가지 인데 그게 모든 협과 같다는 것이 될수 없다는게 내 요지 였는데...정의라는 단어의 무분별한 사용은 좀 경솔했구만
말 존나 어렵노 흄이니 실정법이니..간단히 말해서 결론이 뭐노?
그래서 협이 정의와 동일시된다는거야 대치된다는거야 아니면 양자 모두에 반할수도 합할수도 있다는거야
근데 흄 얘기에서 궁금한 게 있는데, 흄은 비록 ought가 객관적이지 못하지만 최대한 객관적이고자 하는 연구를 했던 걸로 아는데, 이걸 is에 가까워지려는 시도로 봐도 됨?
지금 논의에 쓰이는 "정의"라는 단어 자체가 보편적 인식에서의 정의(말하자면 현대의 일반적 인식에서 봤을때 사회규범이나 보편윤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라는걸 깔고 가는거잖아.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금 이 논쟁에서 쓰이는 "정의"는 네가 말하는 본질적인 정의 랑은 좀 다르게, 고유명사 비슷하게 쓰이는중 인거지. 지금 "정의"와 협이 같다고 주장하는 시로조차 그럼 살인범 절도범도 협객이냐면서 이런 전제를 깔고 가고 있고. 왜 단어를 그렇게 뭉뚱그려서 쓰냐면, 어차피 넷상 키배니까 굳이 귀찮게 "정의"라는 단어 자체를 확실히 정의하지 않고 대충대충 논의가 진행되다보니 이렇게 된거지. '아따 쟤가 말하는 거시기가 거시기여? 그 거시기는 거시기가 아니랑께!'같은 식으로.
나도 흄잘알은 아니지만, 애당초 흄은 논리적으로 is로부터 ought를 도출할 수 없다고 본 사람인데 ought를 is에 가까워지려고 노력을 했을지 자체가 의문이고, 또 윤리는 이성이 아닌 도덕감에 기반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인 만큼 당위로서의 ought를 객관화한다는 아이디어 자체와 전혀 친하지 않다고 봄.
근데 이 논쟁이 불붙은게 사마천의 말에서 부턴데 사마천이 말한 정의에 대해서 계속다뤘지 이런 정의에 대한게 아닐듯 사마천도 협이 정의를 벗어날 수있다고 한걸로 보아 보편적 윤리에 대해 정의라 한듯
협과 정의는 완벽히 동일시 될 수도, 대립의 개념으로 대비될 수도 없음. 협에 의한 행동이 때로는 정의로 나타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 협은 옳지 않음을 인식하고도 실행될 수있음
ㄴ 생각해보니 맞는 말같다 신의와 체면을 위해 옳지 않은줄 알면서 하기도 하지 이렇게 말하면 될텐데 난 왜그리 오랫동안 떠들고 있었지
옳지 않음을 인식하고도 실행한다면 그 협행은 자신의 '협'에 따른 것이 아니겠지. 사기 열전에 나오는 협의 개념에 따른다면.
하지만 협이라 함은 자신의 정의를 위한 것뿐아니라 신의와 체면을 중시하는 것도 있는데 이 둘이 충돌한다면 어찌되는가? 정의가 협의 모든 것이라기엔 협이라는 단어의 정의와 좀 다른데
애시당초 고친 거 웃기네 ㅋㅋ
좆로시로새끼가 "그럼 살인범 절도범도 협객이냐!!" 이지랄 하길래 키배가 이렇게 커진건데, 이 말은 즉슨 "범규범 적으로 살인범 절도범이면 협객이 아니다!"라는 소리. 이것처럼 지금 쓰이는 "정의" 라는 단어 자체가 사회규범,보편윤리같은게 사전적 의미의 정의에 더해져서 일종의 고유명사 비슷하게 뭉뚱그려서 대충 "정의"로 퉁치고 키배가 벌어지고 있는거 (왜 단어를 확실히 정의하고 넘어가지 않냐면, 인터넷 키배니까 대충하지), 이런 맥락에서 진짜 정의가 어떤것인가는 시로새끼와의 키배에 있어 무의미함. 다만 이렇게 단어를 바로잡아서 "정의"를 보편윤리와 법규범으로 칭하고 진짜 정의개념과 분리 함으로서 그 키배와는 별개로 무갤러들 자체적으로 정리를 하는데에는 좋은 역할을 한듯.
신의와 체면을 중요시한다고? 그럼 무슨 일이 있어도 신의를 지켜야 한다거나, 체면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게 그 자신의 내면적 코드로서의 '협'이고, 응당 따라야 할 올바른 도리로서의 '정의'겠지. 결국 협행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자신의 자발적인 행동이고, 자발적인 행동인 이상 이는 스스로의 내면적 코드로서의 협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만약 자신의 기준에서 정당화되지 않는다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처벌의 두려움에 의한 위하라던지 협박과 같은 모종의 외부적 강제에 의해서 억지로 하는 것이라는 얘긴데 이건 당연히 그 자신의 '협'에 의한 협행이라고 볼 수 없지.
협은 옳지 않음을 인식하고도 실행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는 옳지 않은 행위이더라도 예컨대 어떤 일이 있어도 신의를 지켜야 한다거나, 절대로 체면을 잃을 수는 없다는 식으로 종국적으로 이를 '옳은' 것이라고 정당화시키는 최상위의 행위윤리에 해당하는 내면적 코드가 바로 '협'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건 당연히 옳지 않지만, '밀고자는 용서할 수 없다'는 최상위 행위윤리로서의 내면적 코드에 따라 도망자를 경찰에 팔아넘긴 아들을 쏴 죽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