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章(一)   石大原

  자궁내 양수와도 같이 포근한, 숙면(熟眠)이라는 무의식을 부영하다
가, 사내가 최초로 느낄 수 있었던 감촉은 간지러움이었다. 그가 느낀
간지러움은, 방금까지 그를 포옹하고 있던 몽계(夢界)의 율법과는  대
단히 이질적인 것이다. 몽계는 비명처럼 경계선을 허물어뜨리며, 사내
에게 형벌을 내린다. 의식(意識)의 복원. 어느 한 순간 사내는 거칠고
딱딱한 현계(現界)로 추방당한다.
  속눈썹의 미세한 경련. 그리고 천천히, 하지만 순간적으로 눈꺼풀이
열린다. 세계의 경계를 넘는 것을 저어하는  동공(瞳孔)의  자지러짐.
멍함. 그리고 습관적인 적응.
  석대원(石大原)은 초옥(草屋)의 창으로 비쳐  들어오는  조광(朝光)
속에서 깨어났다.

  얼굴을 간지럽히던 녀석은 다름 아닌 <빛의 물결>이다. 놈은 연인의
손길과 같이 따뜻하고, 또 감미로왔다.
  빛이 만들어낸 투명선(透明線)을 쫓던 그의 시선은 문득,  어느  한
곳에서 멈춘다. 수면의 나른함이 채 가시지 않은 망막 속으로 한 여인
의 얼굴이 투영된다. 여인의 얼굴은, 시장 화구점(畵具店)이면 어디서
나 찾아볼 수 있는 싸구려 족자 속에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내
가 누워있는 침상의 머리맡에 걸려있다.
  여인은 갸름한 얼굴에 고운 눈매를 지닌 미인이었다. 약간은 우울해
보이는 미소를 입가에 담고있는 여인화. 매우 정성들인 흔적이 엿보이
는 그림이지만, 거친 필선(筆線)과 어색한 구도에서 솜씨있는 화공(畵
工)의 작품이 아님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모친 석부인 연씨를 그리워하며(望 先母 石婦人 燕氏), 불초자  석
대원이 그림(不肖子 石大原 畵)>

  그림 옆에 쓰여진 두 줄의 글귀에서 그림을 그린 사람이 다름  아닌
석대원, 지금 침상에 누워 그림을 바라보는 사내란 것을 짐작할 수 있
다.
  어머니    .
  입꼬리가 미묘하게 풀어진다. 새벽안개를 바라보는 듯한 몽롱한  눈
빛. 마치 그림 속의 어머니로부터 정겨운 화답이라도 듣는  것  처럼.
하지만 먹과 조잡한 물감으로 이루어진 그림 속의 여인은 아무런 대답
이 없다.
  흣.
  나직한 냉소와 함께 장대한 신형이 훌쩍 침상을  벗어난다.  거구에
어울리지 않는 쾌활한 움직임. 방안의 공기가 일순 출렁거린다.
  그의 눈빛은 일순 우울하게 가라앉는다. 되새기고 싶지않은, 하지만
유령처럼 문득문득 되살아나 그의 영혼을 괴롭히던 어느 아침의 광경.
딱딱한 돌바닥이 배겨 잠에서 깨었을 때, 천정에서 대롱거리던  주검.
그 얼굴, 얼굴    . 그는 사납게 고개를 내젖는다. 마치 눈 앞에 떠오
른 생생한 영상의 유리막을 깨뜨려버릴 듯이.
  석대원은 초옥의 문을 향해 걸어가다가 문득 무엇인가 생각난 듯 다
시 족자를 돌아본다.
  좋은 아침입니다.
  목이 잠겼는가. 그의 목소리는 입 안에서 헛되이 웅웅거릴  뿐이다.
여인은 우울한 미소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그녀의  미소
에서 힘을 얻는다. 묵묵히 족자를 응시하던 석대원의  얼굴이  조금은
밝아진다. 그래. 지금은 아침이다. 이 세계가 시작하는 아침이다.  그
의 입이 얄팍하게 벌어진다.

  "어머니, 좋은 아침입니다."




이때부터 어언 21년.



쟁선계 완결보다 하이텔 나우누리 망하는 게 빠를 줄 몰랐고

쟁선계 완결보다 시공사가 무협 접는 게 빠를 줄 몰랐고

쟁선계가 파이브스타스토리보다 먼저 완결날 줄 몰랐고

쟁선계 연재부터 완결할 동안 PC의 외부회선 속도는 1만배 빨라졌고

쟁선계 연재부터 완결할 동안 서울 지하철은 5개 선이 늘어났고

등등등

등등등



읽는 건 마음의 준비를 좀 한 이후에



일단 현재로선 시작부터 완결까지 가장 오랜 기간이 걸린 무협소설에 쟁선계가 1위를 차지하는데, 지금 봐선 군림천하 묵향 비뢰도 때문에 1위 지키지는 못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