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남이 아직까지 살아있을 줄은 뜻밖이군..."
그의 목소리는 낭랑했으나 차가운 감정이 실려 있었다.
"매형이 쾌의당과 서장침공의 주동인물이었다니 믿어지지가 않소."
고목같은 노인은 바로 조씨세가의 전전대 가주인 조익현이었다.
조익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도 처남이 이곳까지 올 줄은 몰랐네, 허나 이제 처남의 끈질긴 목숨도 멀지 않았군."
석동은 자신의 친형제보다 더 절친했던 매형으로부터 이와같은 말을 듣자 마음이 찢어지는 듯 했다.
그는 침울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그 옆에 서있는 궁장미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의식적으로 석동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부인, 그 동안 설마 이 남편의 얼굴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
그의 말에 그녀는 억지로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허나 그녀의 얼굴 또한 조익현과 마찬가지로 냉랭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오랜만이군요."
그녀는 무뚝뚝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녀는 석동의 부인인 철혈홍안 조여홍이었다.
그녀는 과거 석동을 거의 미치도록 사랑했는데 이토록 그를 무정히 대하다니
세월의 흐름은 여인의 마음마저 바꾸어 놓는 것인가
석동은 나직이 탄식을 하며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조익현에게 말했다.
"매형에게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소. 당신은 왜 나를 배신했소? 내가 그토록 미웠소?"
문득 조익현의 무표정한 얼굴에 일말의 감정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는 잠시 허공을 올려다 보았다. 그러다가 천천히 고개를 내려 싸늘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 . 나는 전부터 처남이 미웠네."
"어려서부터 자네는 항상 나를 앞서갔네. 스승님 앞에서 처음 검을 잡고 검술을 익힐 때도
자네는 항상 스승님의 칭찬을 독차지했지. 나는 언제나 자네에게 뒤져 대만이란 놀림을 당해야했고...
그의 음성은 비록 차가웠지만 가늘게 떨리고 있어 그가 얼마나 격동한지 보여주었다.
"하지만 나는 무공을 익히는 것이 뒤지는 것은 그런대로 참을 수가 있었네. 허나....
"내가 오직 사랑했던 한 여인 백모란마저 자네에게 뺴앗기고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석동은 몸을 가늘게 떨었다. 허나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조익현은 주먹을 움켜쥐고 처절한 부르짖음같은 음성을 흘렸다.
"처남은 내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갔네, 천하제일기재의 영예도, 스승님의 정도...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까지도... 그러니 내가 어찌 자네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바로 그때였다.
돌연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 그것이 어찌 그의 잘못이란 말인가요?"
중인들은 흠칫 놀라 음성이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언제부터인가 종산의 바위언덕에 서서 그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 한 인영이 있었다.
그 인물은 은의무복을 입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면사를 쓴 미모의 여인이었다.
조금전 일갈을 터뜨린 사람은 바로 그 여인이었다.
그녀는 중인들의 이목이 자신에게로 집중되자 몸을 날려 그들의 앞으로 날아왔다.
그녀의 신법이 너무도 표홀했기 때문에 중인들 틈에서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당신은 누구요?"
조익현은 면사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조익현! 당신은 그새 내 목소리도 잊었군요."
그 말에 조익현은 몸이 부르르 떨렸다.
"호.... 혹시...."
여인은 조용히 면사를 벗었다. 아주 고아하게 생긴 삼십대초반의 여인이었다.
눈빛이 티 한점없이 맑고 깨끗했으며 얼굴 전체에서 풍기는 인상이 그윽하고도 우아한데가 있었다
누구도 그녀의 앞에 서 있으면 엉뚱한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진산월과 석동, 조익현은 그녀의 얼굴을 보자 몸을 떨었다...'
"모란....!"
"단봉공주..."
그녀는 바로 천봉궁의 단봉공주였다. 아니 백년전에 낙양최고의 미녀였던 봉황인 백모란이라고 해라 옳으리라.
그녀는 석동이 무공에 미쳐 자신마저 떠나자 상심하여 천봉궁을 창립한 것이다.
(중략)
" 내 마음은 이미 싸늘히 식어버렸으니 더 이상 주저할 것이 없다. 절대로 너희들을 살려보내지 않겠다!."
그의 음성은 비통했고 절규에 가까웠다
조익현은 손을 번쩍 쳐들었다. 그들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백여명의 서장 고수들이 일제히 기세를 내뿜었다.
그들의 개개인에서 뿜어나오는 강력한 무형지기로 보아
그들은 모두 십육사 십이기에 못지않은 일당백의 절정고수들임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조익현의 뒤에서 여섯명의 인물들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가장 우측의 두 인물은 홍포와 흑포를 입은 노인들이었다. 그들이 바로 성숙해의 성숙이괴였다.
홍포를 입고 위명하게 생긴 노인이 적괴 나문표였고 흑의를 입고 냉혹하게 생긴 노인이 흑괴 목극동이었다.
그들의 옆에는 네 명의 노승들이 뒤 따르고 있었다. 그들의 가슴에는 각기 동,서,남,북의 방위가 수놓아져있었다.
이들이 바로 사대불법존자였다.
네 명의 존자는 한눈에 보아도 삼성에 못지않은 무서운 고수들임을 감지할 수가 있었다.
조익현은 무서운 살기를 띈 눈으로 석동과 진산월을 바라 보았다.
"천룡객 석동!, 종남파의 애송이 장문인! 이제까지 운이 좋았다만 그 운도 이젠 끝이다."
(중략)
조익현은 냉기가 감도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잘 닦인 몸이군... 네가 바로 그 종남파의 장문인 신검무적이냐?"
"그렇소."
"네 검술이 백년이래 최고라고 들었다. 어디 소문만큼 대단한지 한 번 보자"
이어 그는 번개같이 검을 뽑아 휘둘렀다.
(중략)
"나의 미인상의 검초를 이토록 쉽게 물리치다니 소문이 거짓이 아니었군."
"여홍! 합세하자.!"
조여홍은 한쪽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석동과 백모란을 슬쩍 쳐다보았다.
"좋아요"
차앙!
두 사람은 각기 무서운 기세로 진산월에게 덮쳐갔다.!
"촤아아!"
하늘이 온통 두 사람의 공세에 가려버리는것 같았다
"쐐액!"
그때 진산월의 검이 움직이며 무수한 검영이 폭포수처럼 피어올랐다.
노도처럼 밀려오던 공세가 끝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구름에 휘감긴 듯한 착각이 들었다.
주위 사방이 온통 검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버렸다.
조익현과 철혈홍안은 안색이 변한 채 사방으로 검기와 난화지를 내갈겼다.
그러나 그들의 공세는 끝도 보이지않는 검의 그림자에 휘감겨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으음...."
"윽!."
중인들이 깜짝 놀라 보니 진산월과 두 절대고수와의 대결은 이미 끝나 있었다.
진산월은 용영검을 든채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조익현과 철혈홍안은 그의 앞에 피투성이가 된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조익현의 얼굴이 경악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이... 이정도라니..."
진산월은 묵묵히 그들을 보고 있었다. 헌데 그 때였다.
"히히힝!"
어디선가 말울음 소리와 함께 언덕너머에 한 인영이 나타났다. 그 인영은 비루먹어 금새라도 쓰러질듯한
당나귀를 탄 중년인이었다. 헌데 중년인이 가볍게 당나귀의 배를 한번 걷어찬 순간 당나귀는 어느새
눈깜빡할 새 백여장을 달려와 그들의 지척에 당도해 있는 것이 아닌가?
실로 어느 누구도 이처럼 늙고 초라한 당나귀가 이와같이 빠르게 달릴
수 있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당나귀는 늙고 초라했지만 그 위에 올라탄 중년인은 더욱 초라했다.
헌데 그 중년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진산월과 석동의 얼굴이 대변했다.
중년인은 당나귀에서 힘없이 내려 조익현의 앞에 우뚝 섰다.
조익현은 반색을 하며 그의 앞에 넙죽 엎드려 절을 했다
"제자가 스승님을 뵈옵니다."
중년인은 시큰둥한 얼굴로 그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흥. 쓸모없는 녀석! 어린아이 하나도 당해내지 못하다니..."
그는 고개를 돌려 석동과 진산월을 바라보다 그들이 멍청히 서있자 버럭 호통을 질렀다.
"너희들은 설마 눈이 멀었단 말이냐? 아니면 그새 내 얼굴을 잊어버렸단 말이냐?"
그 호통을 듣자 진산월과 석동은 벼락을 맞은듯 몸을 떨었다 진산월과 석동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불초제자 진모가 사부님을 뵙습니다."
"제자가 사부님을 뵙습니다."
그제야 중년인은 싸늘한 얼굴을 거두었다. 중인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앞의 이 중년인은 벌써 사년전에 죽었다던
종남파의 전대 장문인 임장홍이 아닌가? 그는 대체 어떻게 다시 돌아온 것일까?
그가 돌연 이곳에 무슨 일로 나타났단 말인가?
진산월은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사부님께서 여기에 대체 어떻게..."
"하하 .... 그것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너는 익현이 쾌의당과 서장세력을 부추겨 종남파를 습격하고
너를 암습한 것을 몹시 원망하는 모양인데 그럴 필요가 없다. 익현에게 중원침공을 지시한 사람이 바로 나였으니까....
중인들은 그의 말에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강호제일의 신비세력인 쾌의당과 서장무림의 침공이 바로 임장홍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졌다니...
임장홍은 태연한 신색으로 말했다.
"너는 내가 왜 신분을 숨기고 종남파의 장문인으로 있었는지 아느냐? 그 당시 나는 이미 검으로는 천하제일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하나의 선거를 발굴하게 되었지. 그것은 이백년전의 고금제일 고수였던 매종도의 태을선거였다.
나는 거기서 세개의 미인상을 입수하자 그 무공과 내 무공을 비교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 나는 최소한 그에게
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미인상에는 오직 세가지 검초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바로 미인상의 검초다.
취와미인상의 무공!
그것이야말로 천년무림사상 최고의 고수라는 매종도가 자신의 모든 무공을 집대성한 무적의 검초였다.
각기 변, 파, 쾌에서 무적이었고 임장홍은 자신이 아는 모든 무공을 동원하여 그 세가지 검초를 꺾으려고했다.
그러나 그 중 단 한가지도 꺾을 수 없었다. 임장홍은 심한 좌절에 빠지고 말았다.
천하제일임을 자부하던 그의 검학이 한낱 이백년 전의 인물의 그것에도 못 미침을 알았을 때
자부심이 가득하던 그의 마음은 산산 조각이 나고 만 것이다.
임장홍은 이십여 년간 홀로 참오한 끝에 나름대로 미인상의 검초를 꺾을 수 있는 무공을 창안해 냈다.
허나 그에게는 한가지 의문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 과연 내가 창안한 무공이 매종도보다 뛰어나고 명실상부한 천하제일의 검초일까?
그는 고민을 해보았으나 생각만으로 도저히 그것을 알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혹시 이보다 더 뛰어난 무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한가지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
── 좋다!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기재를 찾아 각각 미인상의 한 가지 초식을 연구하게 하자.
그들이 그 무공을 완벽하게 익혔을때 그것과 내가 창안한 무공을 비교해보리라..!
그리하여 그는 천하를 돌며 기재를 찾기 시작했다.
몇십년이 흐르는 동안 그는 자신이 원하던 세 명의 절대기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가 찾은 기재는 두 사람이었다. 진산월은 그가 미처 미인상의 무공을 전해주기전에
중봉의 석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로 조익현, 석동 그리고 임장홍이 마음속으로 가장 기대를 걸고있던 그의 제자 진산월인 것이다.
"너희들은 각기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기재들이었다. 허나 각기 커다란 단점이 하나 씩 있었지
조익현은 너무 오만하여 당시 자만심에 빠져있었다.
석동은 사랑하는 여인과 집안이 석가장이라는 것 때문에 폭넓은 무공을 섭렵할 수 없었다.
산월이 너는 마음이 너무 유약하여 절대의 재질을 가지고 있고 좋은 사제들에 둘러싸여있으면서도
그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너희들을 자극하기 위해 쾌의당과 서장을 움직인 것이다.
백년내 일어났던 무림의 큰 사건들은 실로 임장홍의 이와같은 개인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의 목적은 천하무림의 석권이 아니었다. 바로 세 기재를 분발시켜 미인상의 검초를 꺾을 파해식을
창안하게 하는 것이었다.
임장홍은 허공을 올려다보며 강한 음성으로 말했다.
"세 기재들에겐 자극이 필요했다. 오직 필생의 신념으로 무공에 정진 할 수 있는 강렬한 자극이!
그래야만 너희들은 미인상의 검초를 완벽히 익히고 나와 겨루어볼수 있는 자격이 될 것이다."
(중략)
"나의 삼십년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나의 마음은 아주 흥겹다. 더욱 기꺼운 것은
미인상의 검초가 결국 나 외의 한 사람에게 꺾였다는 것이다.
임장홍은 진산월을 바라보았다.
“너는 내가 한 일이 너무했다고 생각하느냐? 하지만 그렇지 않다. 무인이라면 모름지기 무공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나는 내 무공을 입증해 볼 상대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의 음성에는 강한 신념이 담겨 있었다.
“이제 네가 세가지 미인상의 검초들을 모두 꺾었으니 너는 내 좋은 적수가 될 것이다.
백 여년에 걸쳐 결국 내 소원을 이루었으니 나의 마음은 한없이 흡족하다. 네 생각은 어떻느냐?”
진산월은 담담히 말했다.
“사부의 말에도 일리는 있소. 허나 사람의 생명은 다른 무엇보다도 귀한 것이오.
무도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그 결과는 너무도 비참했소.”
임장홍은 껄껄 웃었다.
“허허..... 쓸모없는 생명이라면 벌레만도 못한 것이다. 나는 최고의 무도를 위해
그들의 목숨을 희생시킨 것이므로 조금도 아깝지가 않다. 천하제일은 고독한 것이다.
매종도의 검초를 꺾음으로써 내 무공은 천하제일이 되었다. 아무도 내 상대가 되지 않았다.
너는 정상에 선 자의 고독을 아느냐?”
임장홍은 열기 띈 음성으로 말했다.
“모든 것을 이루었을 때 문득 자신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는 그 비참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느냐?
백 여년을 고생한 무공을 창안했으나 그것을 시전해 볼 상대조차 없는 그 허무함을 한낱 세인들이 어찌 알겠느냐
? 그동안 나는 너무도 외로웠다.”
그의 음성은 점차 가라앉았고 열기를 띄고 있던 눈도 낮게 침잠되었다.
“너는 내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다. 너라면 내가 완성한 검초를 받을 자격이 있다.
백년동안 나는 너무도 간절히 너를 기다려 왔다. 이제 내 소원을 이루게 되었으니 나는 조금도 후회하는 마음이 없다.”
그는 천천히 진산월의 앞으로 걸어왔다.
“너는 이 사부의 간절한 소망을 저버리지 않겠지?”
진산월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조금전처럼 임장홍을 미워하는 감정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추구했던 것은 무인으로서의 가장 높은 이상이었다.
그는 그 이상을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 제자와 자식까지도 등한시했다.
어쩌면 임장홍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무인이 아닐까?
진산월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중략)
독자제현의 건승을 빈다
203X년 칠순을 맞이하며 용화소축에서..
용대운 -배상-
연재 재개 기념으로 태극문 버전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소재가 안 떠오르네
새벽이라 심심해서 걍 조금 수정해서 오랜만에 재업
칠순ㅋㅋㅋㅋㅋ - DCW
애썼다. 특히 용노괴 문체와 유사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칠순잔치에 호호탕탕 늙어버린 애독자들하고 국수먹을 날도 얼마남지 않았다
처남이랑 매형을 반대로썻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