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4 장 현신육결(顯身六結) (2)



 먼저 공격을 시작한 것은 고진이었다.


고진은 현음출세(玄陰出世)의 일식을 펼쳐 진산월의 가슴


쪽을 찔러갔다. 형산파의 구종검법(九種劍法) 중에서도


장로회의 승인을 받은 자만 익힐 수 있다는 서열 일 위


검법인 현음십이식(玄陰十二式)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고진이 이러한 절학을 비무가 시작하자마자 대뜸


펼친 이유가 과연 무엇이겠는가? 이는 반드시 이겨 형산의


강함을 증명하겠다는 필사의 각오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현음출세는 표홀(飄忽)하면서도 경쾌한 맛이 있는 초식으로,


비단 상대방의 반응을 알아내기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현음십이식의 다른 초식으로 이어나가기 매끄러운 효용이


있어서 선공권을 가져왔을 때 특히 그 위력이 배가되는


초식이었다. 고진과 비무를 해 본 형산의 오결검객들은


이렇게 선공권을 내주고 연환되는 다른 초식에 어이없게


당해본 경험을 다들 가지고 있었기에 내심 쾌재를 불렀다.



   '신검무적이 비록 강호의 절정고수들을 연거푸 격파했지만


 아직 나이가 젊어 대처가 미흡하구나. 우리가 이겼다!'



 하지만 장내의 변화는 이들의 바람과는 사뭇 다르게 흘러갔다.


진산월은 천하삼십육검의 첫 초식인 천하앙시(天河仰視)를


펼쳐 고진의 목젖을 노렸다. 허나 이는 단순한 천하앙시가


아니라 그 속에 장괘장권구식의 영양괘각(羚羊卦角)의 변화가


내포되어 있었기에 고진이 이를 무시하고 계속 현음출세를


펼쳤다면 수비력이 좋은 영양괘각으로 검을 위로 받아친 후에


바로 천하앙시가 전개되어 목젖이 꿰뚫리게 될 것이었다.


이를 깨달은 고진은 현음출세를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비록 단순한 초식들의 연계였지만 그 속도가 매우 빠르고


시기와 방위가 적절해 절학과 겨루기에 부족함이 없는


무서운 초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고진은 이러한 점을


깨닫고 신검무적의 화후(火候)에 내심 놀라고 있었다.



  '이런 수준일 줄이야.. 과연 명불허전이구나..!'



 고진은 현음십이식의 초식들을 거푸 펼쳤으나


진산월의 천하삼십육검과 장괘장권구식을 조합한


단순한 초식에 계속 가로막히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고진이 계속 현음십이식의 놀라운 초식들을


사용해 기기묘묘한 수법으로 공격을 퍼붓고 진산월이


수세에 몰려 가로막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 고진이


느끼는 기분은 이와 달랐다. 자신이 이미 많은 것을


쏟아부었는데도 신검무적은 간단한 수법으로 이를


파훼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방금도 현음십이식의 절초인


현음무한(玄陰無限)을 펼쳐 서릿발같은 검기를 퍼부었는데도


신검무적은 천하성산(天河星散)으로 현음무한의 변화를 모두


해소한 후 장괘장권구식에서 가장 투로가 단순하지만


속도와 위력이 강맹한 천성탈두(天星奪斗)를 검으로 전개해


반격을 해 왔다. 이를 수비력이 현음십이식에서 가장 뛰어난


현음설산(玄陰雪山)으로 가로막은 고진은 천성탈두의 일식이


지닌 역도에 내심 놀란 끝에 굳은 마음을 먹고 냉염신검을 휘둘러


세 개의 초식을 연거푸 펼쳤다. 현음노도에서 현음파황으로


이어지는 이 세 초식들의 연계는 실로 절묘해서 형산검법의


최고 절학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았다. 성난 빙하와 같은


검기를 일으키는 현음노도(玄陰怒濤), 노도같은 검기로 소용돌이를


일으켜 상대방을 가두어버리는 현음일선(玄陰一旋), 소용돌이치는


검기를 상대방에게 단숨에 퍼부어버리는 현음파황(玄陰破荒)의


연환은 형산파 내에서는 따로 현음삼절(玄陰三絶)이라는 이름이


붙은 수법으로, 이전까지의 초식과는 사뭇 다른 위력을 보여주나


이갑자(二甲子) 이상의 내공을 지니지 않은 자가 익힐 시에는


기혈이 뒤틀려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지는 등 비참한 사고를


당하게 되고 마는데, 이 때문에 놀라운 위력에도 불구하고 익힐 수


있는 사람이 적어 현음십이식 같은 절학이 있음에도 원공검법이


형산파를 대표하는 검법이 된 것이었다. 고진 또한 현음십이식을


사사받을 자질을 인정받아 문파에서 제공하는 영약을 섭취하고


추궁과혈을 받은 후 형산파의 비전신공을 두루 섭렵해 내공력을


키운 끝에야 현음십이식을 익혔는데, 현음십이식의 깊은 수준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된 끝에 형산의 축융봉에서 물경


수십 년동안 다른 모든 것을 잊은 채 검에 매진하는 삶을 살아왔다.


이러한 삼초식이 중인에게 남기는 인상은 몹시 강렬한 것이었다.



"앗?"


 이 광경을 보던 손풍의 입에서 경호성(驚號聲)이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장내에서는 눈보라처럼 휘몰아치던 차가운 검기가


놀라운 속도로 진산월의 몸으로 쇄도하고 있어 마치 날카로운 서릿발에


진산월의 전신이 꿰뚫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비무가 치열해지고 있어서인지 종남파의 사람들은, 특히 전흠마저도


손풍의 이러한 실태(失態)를 꾸짖는 것을 잊은 채 비무에 집중했다.


진산월은 고적한 눈빛으로 이러한 현음삼절초를 바라보더니 검을


위에서 아래로 매섭게 내리쳐 서릿발같은 검기의 소용돌이를


찢어발겨버린 후에 담담한 눈빛으로 고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고진은 자신의 수법이 낚시꾼이 낚시대를 드리우듯이 내리치는


단순하기 짝이 없어보이는 칼질 한 번에 어이없이 파훼당하자


망연한 눈빛으로 진산월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 일식(一式)이 천하삼십육검의 초반 십이초 중 하나인 천하수조


(天河垂釣)에 장괘장권구식에서 가장 수비적인 초식인 금강서벽


(金剛舒壁)과 변화가 복잡한 조운육환(彫雲六環)의 묘용을 담아


현음삼절초의 변화를 해소하고 쏟아지는 검기를 막아낸 것임을


그가 어찌 알겠는가?


이렇게 십일 초가 지나갔지만 고진은 아무런 이득을 보지 못했다.


자신은 현음십이식의 절초를 대부분 쏟아붓느라 적지 않은 내력을


소모하여 호흡이 가빠오고 옷을 묶은 끈이 풀려 가슴자락이 드러날


정도로 낭패한 모습이 되었는데 눈 앞의 신검무적은 아직까지도


호흡도 흐트러지지 않고 옷자락 하나 상하지 않은 채 마치 산악과도


같이 견고한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마침내 고진은 비장한 눈으로 진산월을 쏘아보더니 엄청난 속도로


냉염신검을 휘둘렀다. 이 광경을 본 중인(衆人)들은 경악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싸늘한 검기가 엄청나게 쏟아져 하늘을 뒤덮어 우적지


일대를 그늘지게 만들어버리더니 이내 진산월에게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이는 마치 서리로 만들어진 무지개가 하늘을 뒤덮는 것과 같았다.


이 초식이 현음십이식의 최절초임을 아는 사람은 장내에서 몇 되지 않았다.


이 무지개에 맞서게 된 진산월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고진은 이 일초(一招)로 건곤참(乾坤斬)을 격파한 것이구나!'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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