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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탄 리뷰 - 무협의 내면에 대한 안티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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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리뷰할것은 좌백의 ‘혈기린외전’과 무협단편 ‘협객행’이야
혈기린외전은 다 알겠다만 협객행은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거같으니 설명하자면, ‘좌백 무협 단편집’에 수록된 단편중하나야.
예전에 네이버 캐스트에도 올라온적이 있는 단편인데
(주소: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30&contents_id=749)
단편집에는 이것을 다듬고 뒷내용을 추가해서 단편집에 추가했어.
안본사람들은 대략적인 내용이라도 알려면 위의 주소로 들어가서 봐봐,
근데 나는 꼭 단편집을 사서 보는걸 추천해. 단편집에는 웹 버젼을 수정도 많이하고 무엇보다 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할수있는 뒷내용을 추가했거든. 이북도 있으니까 구매해도 후회안할거야.
0.
좌백은 그의 작품활동 동안 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해왔지. 작품내적으로도 그렇고 작품외적으로도 블로그 등지에서 협에 대해 논해왔어. (참고: 사마령의 무도연지겁 추천사)
나는 그 좌백의 협객관을 볼수있는 대표작 두가지가 바로 ‘혈기린 외전’과 ’협객행’이라고 생각해. 혈기린 외전이 협객의 빛(낭만)을 보여줬다면 협객행은 협객의 어둠(비생산성,실존)을 보여주지.
오늘 내가 집중적으로 조명할것은 이 중 협객행이야.
0.
본격적으로 협객행을 리뷰하기 전에 혈기린외전을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 어둠을 알기위해선 빛도 알아야하니.
혈기린외전은 총 3부작인데 각각 하나씩 협객의 정신을 부제로 삼고있지.
‘협객불망원','협객불상신','협객불기의'가 그것들이야. 이 협객의 정신들은 각부에서 핵심적인 주제로 다뤄지지.
등장인물들도 주목할 필요가 있어.
혈기린외전에 대해 좌백이 이런말을 한적이있지. 원래는 등장인물 모두를 협객으로 하려고 했는데 역시 그건 무리였다,라고.
과연 좌백말마따나 모든 등장인물이 협객은 아니지만 혈기린외전은 실로 다양한 협객들의 모습을 보여주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복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악산삼귀와 창주무사들, 충성의 황보장군, 속는 줄 알면서도 신의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혈기린, 제자를 위해 목숨바친 독개 서문정, 그리고 가족의 복수를 한 왕일까지. 다들 모두 다른 협객의 모습들이고 이 틈바구니에서 왕일이 자아를 확립해가는것이 혈기린외전의 내용이지.
작중에서 보여지는 협객의 모습들은 분명 낭만적이고 그들의 행적은 협객의 미담이 되기에 충분해.
뜻하는 바를 관철하기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 비록 죽었을지라도 자신의 삶을 완성시키는 그들의 모습은 뭇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기에 족하니…
하지만 협객행에서 협객의 모습은 조금 달라
좌백은 협객행에서 협행의 비생산성과 무의미함, 현실의 무게앞에서 무사의 검이 얼마나 비루하기 그지 없는지 말하지.
1.
서론이 길었네.
좌백의 단편 협객행은 이백의 시 협객행의 한구절로 글을 시작해.
银鞍照白马,飒沓如流星
十步杀一人,千里不留行
은빛 안장은 백마를 비추고 바람소리 가르며 유성처럼 달린다
열 걸음에 한 사람을 죽여 천리를 가도 흔적 조차 없구나
서두에 이 시를 접한 독자들은 말을 내달리며 악인을 죽이는 협객의 호쾌한 인상을 받았을거야. 여기엔 나중에 약간의 반전이 있는데… 그건 차차 설명하지.
2.
주인공은 두사람, ‘대형’이라 불리는 강호의 대협객과 그를 보필하는 부하인 ‘청년’이야. 그 두사람이 대형이 어릴적 살았던 동네, 석가구에 오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협객행은 총 3개의 주요사건들로 이루어져 있어
1) 도적에게서 여인을 구하려다, 사실 도적과 한패였던 여인에게 암습을 당한 ‘청년’
2) 복수를 하려고 ‘도련님’의 집에 잠입했다 되려 옛여인의 원망을 받고 도망치듯 떠나는 ‘대형’
3) 마을을 습격하는 화적떼를 토벌하려고 보니 그 화적떼의 습격이 세금을 피하기 위한 마을주인의 자작극이었던 일
(저 세번째 화적떼 사건은 웹연재판에는 없어. 웹연재판은 두번째에서 끝나거든.)
이 사건들을 거치며 좌백은 협객이란 존재가 얼마나 나이브한것인지, 비생산적인지 보여줘.
2.1
첫번째 사건에서 청년과 대형은 도적에게 습격당하는 여인을 발견해.
전형적인 사악한 악당, 도적에게서 연약한 여인을 구한다는건 그야말로 협객 미담의 스트레오타입 이라 할만한 일이지.
때문에 협객을 동경하는 청년은 여인을 구하러 가지만 되려 위기에 빠지고 대형에게 구원을 받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야 현실의 문제는 이야기에 나오는것같이 선악이 분명한 전형적인 일은 드무니까.
이 일화를 통해서 앞으로 그려질것은 이야기속의 협객이 아닌 협객의 실존이라는 사실을 짐작할수있어.
2.2
두번째 사건은 그 말로 이 단편작의 핵심갈등이라고 할만한 일이야.
십수년전, 대형은 마을의 권력자인 ‘도련님’에게 자신의 여자인 ‘연홍이’가 강간/구타 당하는것을 발견하고 도련님을 두들겨 팬후 도망치듯 마을을 떠났어.
그리고 연홍이는이제는 그 집의 마님이 되어서 애를 셋씩이나 낳았지.
이제 강호의 대협객이 되어 돌아온 대형은 밤중에 도련님의 집에 잠입하고 그곳에서 여전히 도련님에게 구타당하는 연홍이를 발견하지.
대형은 당장에 쳐들어가서 도련님을 때려눕히고 죽이려 하지만 연홍이가 그를 붙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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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놔! 이제라도 이놈을 죽이고야 말겠어. 말리지마!”
여자는 그의 우악스런 힘을 당하지 못하고 질질끌려 가다가 작은손을 꼭쥐어 주먹을 만들고 사내를 때렸다.
여자의 입에서 온갖 말들이 튀어 나왔다.
“이 도적놈아! 난 널 모른다, 이놈아! 이 극악무도한 도적놈아! 아무도 없느냐! 여기 도적놈이 주인 나리를 죽이려든다! 누구라도 와서 이 도적놈을 죽여라! 이 도적놈아! 왜 또 나타나서 날 괴롭히느냐! 차라리 날 죽여라, 이 나쁜놈아! 천벌을 받아 죽을 도적놈아!”
아이들이 울며 욕했다, 욕하고 빌었다.
“도적놈! 나쁜 놈! 용서하세요! 제발 아버지를 살려주세요. 도적어르신. 도적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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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홍이가 대형이 도련님을 죽이려는걸 막고 욕하며 때린건 어째서 였을까? 그를 증오해서? 도련님을 사랑해서?
이제와서 도련님(악인)을 죽인다고 모든것이 해결되기에 현실은 그리 간단히 않아.
연홍이는 이미 오랜시간을 도련님의 부인으로 지냈고 삶의 터전은 도련님의 집이었으며 무엇보다 아이들이있었지.
이런 상황에서 남편을 죽이고 뭐하다 온지도 모를 옛사랑을 쫒을수는 없었어.
차라리 이처럼 필사적으로 대형과의 관계를 부인하며 지금의 생활을 지키려했지.
여기에서 예전의 일이 오버랩돼.
시간이 흘러 하인노릇하던 대형은 강호의 협객이 되었고 여인은 마님이 되었지만 여인은 여전히 맞고있고 그는 여전히 무력하기 그지없었지.
결국 그는 또다시 그날 밤처럼 도망치듯 마을을 떠나.
무(武)로서 협을 행하는게 협객의 일이라지만, 협객의 문제해결 방식은 현실의 문제에 대응하기엔 너무나도 단순하고 무능하지.
2.3
그렇게 마을을 떠난 청년과 대형은 마을의 변두리를 지나다 솟아오르는 불길과 함께 화적떼가 나타났다는 외침을 들어.
당장에 달려가서 눈에 보이는 화적을 때려눕히지만, 사실 그 화적은 변장한 마을사람이었어.
관리의 수탈에서 벗어나 세금을 줄이고 곡식을 비축하려고 화적떼의 습격을 가장한거지.
또다시 두사람은 허탈함을 느끼고 마을을 떠나.
협객이란 참 비생산적인 존재지. 굶주리다 못해 악인을 가장하는 마을사람을 위해 그들은 해줄수 있는게 없었어. 차라리 검이 아닌 곡괭이를 들었으면 농사라도 지었을것을.
3.
협객의 나이브함, 협객의 부족한 문제해결능력, 협객의 비생산성….
마을을 떠난후 그들의 대화를 통해 좌백은 협객을 ‘바람’같다고 표현하지.
========
“돌아오는게 아니었어.”
사내가 나직하게 말했다.
“개처럼 쫒겨난 몸, 들개처럼 죽을 때까지 떠돌아 사는게 옳았어.”
그 목소리가 너무 비감하게 들려 청년은 감히 사내를 위로하려 했다.
“떠도는건 같더라도 이왕이면 ‘바람처럼’이라는 쪽이 좋겠습니다, 대형”
(중략)
“바람이라. 그래 바람일 수도 있지. 비도 아니고, 눈도아니고. 곡식의 생장이나 사람들의 생활에 아무런 도움도 안되는 그런 존재가 우리니 바람이라고 해도 되겠다. 그냥 우리가 한번 쓸고 가면 남은 사람들은 다시 고개를 들고 무슨 일이 있었나 하며 사는거지. 그게 그들과 우리의 차이였던거지.”
청년은 사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되지 않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사내 역시 대답을 기다린것 같지 않았다. 그저 한마디 한탄처럼 내뱉을 뿐이었다.
“할 줄 아는건 그저 싸우고 죽이고 파괴하는 것뿐, 만고에 쓸모없는 존재가 우리 협객이라 부르는 부류들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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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그 호쾌함으로 협객의 대명사로 쓰이지. 하지만 좌백은 그 바람의 다른 일면을 통해 협객의 그림자를 표현해.
4.
그렇다면 우리 무협독자는 무엇일까? 이런 협객들을 우리는 왜 동경하고 열광하는 것일까?
청년의 입을 통해 그 답을 들을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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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와서는 입 다물고 있는게 다가 아니었다. 청년은 입을 열었다.
“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생각하는데? 넌 내게 어떤 가치가 있는 것 같으냐?”
“대,대형은…..”
청년은 말을 골랐다. 사실은 필사적으로 대답을 생각했다. 그냥 울컥해서 한 말에 이런 질문이 돌아오니 머리가 멍해져서 아무 대답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쥐어짜 마침내 한 대답을 끌어냈다.
“대, 대형은 멋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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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유치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핵심을 짚었다 할수있어.
별다른 이유있나, 멋있어서 좋아하는거지. 현실의 틈바구니에 가치는 이름뿐이고 살기에 급급한 우리들에게, 한줄기 의기에 목숨을 초개처럼 던지는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들의 동경심을 자극하는건 당연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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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살 가치가 없는 우리에게도 지키는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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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대답은 사실 얼마든지 부정적으로 비춰질수있지만, 작중에서 좌백은 청년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내.
좌백 역시 작가이기 이전에 우리와 같은 무협이라는 장르의 팬이기 때문에, 치기어린 청년의 대답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거야.
저 장면에서 청년은 우리 무협팬들은 대변한다고 할수있어.
5.
끝으로 서두에 나왓던 이백의 시 협객행의 한구절로 수미상관을 이루며 글은 마무리가 됨.
银鞍照白马,飒沓如流星
十步杀一人,千里不留行
은빛 안장은 백마를 비추고 바람소리 가르며 유성처럼 달린다
열 걸음에 한 사람을 죽여 천리를 가도 흔적 조차 없구나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좌백의 천재성에 감탄하며 무릎을 쳤어.
처음에 이 시를 읽을때는 협객의 호쾌한 기상을 떠올렸지. 하지만 글을 다읽은 지금에는 되려 그 씁쓸함과 허무한 여운을 느낄수 잇어.
시에 나오는 ‘바람’은 작중에서 설명되었던 아무것도 낳지 못하는 ‘바람’의 비유를 떠올리게 하고,
‘천리를 가도 흔적 조차 없구나’라는 말은 처음엔 죽여야할 악인이 많아 이 정도로는 협을 행했다 할수 없다는 호쾌한 기상을 떠올리게 했었는데,
이제는 협행의 허무함을 떠올리게 하지.
6.
좌백의 협객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볼수 있엇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무협장르에 대한 좌백의 애정어린 시각을 볼수 있어서 참 만족스러운 독서였어.
무갤러들에겐 ‘좌백단편집’을 꼭 사보는걸 추천하고싶어. 개인적으로 좌백 최고작을 꼽으라면 이 단편집을 꼭 넣거든.
일반 연재나 출판보다 단편집이 더 좋은 글이 나올수 잇는 조건이니까. 좌백은 글을 써놓고 다듬는 스타일이라 일단 출판하면 수정못하는 출판이나 연재와는 다르게 시간을 들여 글을 쓰면 어떤 글이 나오는지 알수있지.
이북으로도 있으니까 꼭 사봐라 두번사라
7.
여태 장경의 빙하탄, 좌백의 혈기린외전/협객행 을 리뷰했지.
다음 리뷰는 아마도 설봉이 될거같아.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다음주일수도, 몇달 뒤일수도 있지, 암튼 언젠간 한번 날잡아 올리겠음.
개추
좌백 단편집은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안 읽었는데 읽기 욕구를 완전 자극
단편집을 아직도 안읽었단 말이냐. 그 재미난 걸
아는만큼 보인다고 혈기린외전을 보면서 저런 감상문을 쓸수 있다는건 독자가 어떻게 글을 보느냐에 따라서 해석도 갈리고 느낌도 다르겠네 나는 혈기린외전은 아직 안 봤지만 당장에라도 보고싶게 만드는 느낌있는 해석이구만
와 역시 좌백이다. 협이라는 것의 어두움이라니, 무협 팬으로써 몇번 쯔음은 생각해본 화두였는데 이렇게 심도깊은 고민을 하고 또 그걸 작품으로 써냈다니, 역시 대단하다. 또 대단한 것은, 그 작품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낸 글쓴이의 통찰력이다. 굳
ㅊㅊ... 갓백 시발 연중만 아니면...
이 감상도 존나 양질이다
무갤이라는 똥통에 피어난 연꽃같은 감상문이네 자기 소설을 이렇게 읽어주는 독자가 있다는 걸 좌백도 알았으면 좋겠군
야 근데 맞춤법은 조금 수정해라 몰입이 안된다 무협읽을 정도면 나이도 되는데 되랑 돼 같은 기초적인 거 틀려서야;
전에 빙하탄 리뷰때도 느꼈지만 정말 제대로된 '무협비평'을 읽은거 같아 상당히 만족스러워. 단순한 독후감수준이 아닌 작품내외적으로 읽을만한, 고려할만한 감상포인트들을 집어주고 나름 정리해주기 까지 햇으니 ㅎㅎ. 좌백의 글쓰는 스타일에 대한 언급등을 보면 장르판에 한다리 걸쳐있거나 상당히 코어한 팬인 느낌인데 멋진글 잘봤고 이후 시리즈물(?)도 많이 기대할게. 이왕 장경,좌백으로 시작했으니 용좌설장이를 우선 다뤄줬으면 하는 바램이 살짝 있네 ㅋ.
개인적으로 좌백단편무협집 잘 봤는데 아직 안본 횽들중에서 특히 비적유성탄 좋아했던 횽들이 있다면 거기에 수록된 '쿵푸마스터'만으로도 책산거 후회않할거라 생각하니 참조해 ㅎㅎ.
당연히 멋있지 사내새끼가 의와 협에 목을 매고 몸 던지는 건 그게 옳다고 믿기 때문만은 아니야 그게 존나 멋지니까 동경하니까 뜨겁게 불 사지르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