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풍개의 몸은 중상은 아니었지만 옷자락이 걸레가 되고 이곳저곳에서 피가 배어나와 낭패를 당한 모습이었다.


노해광의 수하들과 종남파의 문인들은 모두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를 못하고 있었다.


"사숙... 아직 검단현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은 힘들다고 봅니다.."


노해광이 어렵사리 전풍개에게 말을 꺼내자 전풍개 또한 다시 눈을 부라렸다. 


"그러면 본파의 모든 제자들이 그놈이 나설때마다 꽁무니를 빼야한단 말이냐?"


"사숙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은.."


"네놈이 흑도무리와 어울리더니 당당한 본파의 제자로서의 자존심은 가져다버린 모양이로구나"


전풍개의 성난 안광을 응시하고도 노해광은 담담한 눈빛으로 단지 전풍개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렇다면 사숙은 현재 검단현을 상처없이 물리칠 자신이 있으십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전풍개의 관심이 돌려지자 노해광은 차분히 다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지금 본파가 당면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검단현을 처치하는 것이 아니라 화산파와의 대결입니다"


"...."


"만일 사숙께서 검단현을 처치하신다해도 화산파는 다른 장로를 내려보내면 될 뿐입니다


하지만 현재 많은 고수가 비무행에서 돌아오지 않은 본파는 사숙이 자칫 큰 부상이라도 당하신다면 


화산파의 역공을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은 비단 사숙의 안위 뿐만 아니라 본파에 있어서 큰 전력의 손실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무당산 집회가 파하는 것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가까운 시일내로 장문인과 제자들이 돌아오겠지요


우리는 그때까지만 방어에 주력하면 됩니다 화산파가 아무리 본파와의 전면전을 각오했다고 하지만


명문정파의 신분으로 대놓고 총공세를 펼치기는 힘듭니다" 


"결국 너의 말은 장문인과 제자들이 돌아올때까지 숨어있으란 말이로구나"


전풍개는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노해광의 의견은 논리적이기 그지없어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검단현 그 죽일놈이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제가 따로 방도를 생각해보겠습니다"



노해광 또한 속으로는 침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전풍개는 누가 뭐래도 종남파의 가장 웃어른이며 비무행을 떠나기전의 본산에서는 


장문인 다음가는 뛰어난 검객이었다. 수십년간 검을 갈고닦은 그를 감당할 인물은 


아마 화산파에서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검단현이 아무리 수십년전 일대의 기재였다고 해도 


전풍개는 그가 화산파에 입문하기도 전부터 강호에 명성을 떨친 검객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랜세월 닦아온 전풍개의 검으로도


정면승부로는 검단현에 미치지 못함을 그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차마 사숙에게 그런 소리를 하지는 못했지만 현재 전풍개가 무리하게 나서봐야


잘해봐야 동귀어진하는 것이 한계라는 것을 알고있는 노해광으로서는 어떻게든 


전풍개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방안으로 설득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전풍개 또한 속으로는 그런 점을 인정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문인이 없는 지금 


본산에서 그런 말을 감히 전풍개에게 던질 수 있는 인물이 없는 것이다. 



노해광이 안도의 한숨을 쉬자 갑자기 처소로 헐레벌떡 뛰어들어오는 인영이 있었다.


"노대형! 놀라운 소식이 있소!!" 


그는 노해광의 가장 아끼는 수하중 하나인 천면묘객 하응이었다. 


하응은 경박한 구석이 있었지만 중요한 일이 있을때는 결코 당황하거나 실수가 없었기에 


그가 이렇게 놀라는 모습은 노해광으로서도 그리 본적이 없었다. 


"대체 무슨일이냐?" 


"비무행을 간 종남파의 고수들에 대한 소식이오!"


그 말에 노해광은 물론 장내의 모든 사람들의 눈이 하응에게로 고정되었다.


하응은 잠시 쉼호흡을 하더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무당산에서 형산파와 종남파가 구대문파의 자리를 걸고 비무를 했다하오"


노해광은 자기도 모르게 급한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서 어떻게되었다고 했느냐?"


하응은 기쁨에 찬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꺼냈다.


"비무의 결과는 종남파의 승리로 끝났다고 하더군요 근래 강호에서 보기드문 엄청난 격전이었다고 합니다


강호의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벌써 이것이 비무가 아니라 대전이라는 말이 퍼지고 있소!" 


그 순간 장내는 소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모두는 비무의 결과와 자세한 내용에 대해 하응에게 물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전풍개 또한 벅찬 감동이 가슴에 차오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나 성락중이 사공표를 꺾었단 말을 들었을 때의 그의 표정은 형언할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차있었다.


누구도 그의 가슴속에 치미는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짐작도 하지 못하리라... 



장내의 모든 사람은 오늘 있었던 화산파와의 충돌도 잊고 연회준비를 하느라 법석이었다.


하지만 전풍개만은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처음에 벅찬 감동으로 몸을 떨던 그는 이내 점점 차분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겉으로는 그다지 드러내지 않았으나 그의 눈빛에 점점 어떠한 결의가 차오르고 있었다. 



연회가 파하고 모두가 처소로 돌아가자 노해광은 은밀히 소지산을 불렀다.


"아무래도 사숙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구나.."


"저도 사조님에게 약간 그러한 점을 느꼈는데 노사숙께서도 그렇게 느끼셨군요."


"그분이 움직이고자 하시면 본산의 누구도 저지하지 못하겠지.. 사숙을 부탁한다."


"...."


소지산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지만


노해광은 그런 그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등을 두드려주었다.







전풍개는 새벽에 조용히 처소를 나와 어떤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십년간 절치부심해 오던 종남파는 과거의 치욕을 씻고 마침내 형산파를 꺾었다.


이제 당면한 또 하나의 커다란 벽인 화산파만 물리친다면 욱일승천하는 종남파의 기세는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본파는.. 종남은 강하다!'


그가 없더라도 비무행에 나선 고수들이 돌아온다면 능히 화산파를 상대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제 그가 할일은 생사를 도외시하고 본파를 위해 모든 능력과 힘을 발휘하는 것 뿐이다.


종남파의 부활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다면 그의 늙은 목숨따위는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중략)



검단현은 수정같이 차가운 눈동자로 전풍개를 응시하고 있었다.


"죽으려고 제발로 찾아오셨군... 오늘은 그리 운이 좋지 않을 것이오" 


"흐흐... 그 말을 내뱉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해주겠다."


검단현의 조롱섞인 도발에도 전풍개는 그저 냉혹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뽑을 뿐이었다.


그 태도에 검단현 또한 잠시 의외라는 표정으로 전풍개를 바라보았다.


'이 늙은이가 작정을 하고 온 모양이구나'


하지만 그는 이내 코웃음을 쳤다. 


"보기와는 다르게 말이 많군... 하지만 강호에서는 검으로 말하는 것이오"


맑은 음향이 울리며 그의 손에도 어느새 매화문양이 새겨진 장검이 쥐어져있었다. 



(중략)



검단현의 몸에는 몇줄기의 상처가 있었지만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매화송이에 파묻혔던 전풍개의 용태는 실로 위중하기 그지없었다.


당장이라도 처치가 없다면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부상이었다.


검단현은 마무리를 하기 위해 검을 들어올린 순간 그의 시선이 갑자기 전풍개의 뒤쪽으로 향했다.


그의 시선은 못 박힌듯이 천천히 이 쪽으로 걸어오는 한 젊은 남자에게 고정되어있었다.




청년은 전풍개에게 다가간 뒤 지혈을 하고 응급처치를 한 후 뒤따라온 청년에게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방화 너는 사조님을 모시고 서둘러 제갈노인을 찾아가 보거라"


"하지만 사부님께선.."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방화와 수신대가 전풍개를 들쳐업고 멀어지기까지 검단현은 말 없이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검단현을 아는 이라면 누구나 그의 이러한 태도에 의문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구파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화산파에서도 세 손가락안에 꼽힐 정도의 놀라운 검객이었다.


따라서 그 자존심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았고 아무리 대단한 명성높은 고수라 할지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실제로 검단현은 자신보다 훨씬 전에 강호에 명성을 떨친 전풍개를 두차례나 격파했으며


한번은 동귀어진까지 각오한 그를 쓰러뜨리는데에도 그렇게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는 내심 종남파의 장문인인 신검무적이 나오더라도 상대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그가 한 젊은 청년의 등장을 보고 긴장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천천히 소지산을 마주본 그가 의외라는 듯이 첫 마디를 꺼냈다.


"종남파의 고수들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지 장문인인 신검무적에게는 뛰어난 사제들이 많은데


그 중 그가 가장 신뢰하는 한 사제에게 자리를 비울때마다 본파를 맡긴다고 하더군 네가 현재 종남파를 맡고 있는 대해검이냐?"


"제가 현재 미력하나마 본산을 책임지고 있는 소지산입니다 검대협."


소지산의 어조는 의외로 공손하기 그지없었다.  


"과연 두기춘의 말대로군..."


이번엔 소지산이 눈에 이채를 띄었다.


"두기춘이 저에 대해 뭐라고 말했습니까?"


"아군으로 두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지"


검단현은 다시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하지만 네가 종남파에 적을 둔 이상 우리에겐 더 이상 말은 필요없을 것 같군


내 생각보다 네 검이 날카롭다는 것은 분명히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결코 나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중략)




소지산의 몸이 피어오르는 수백송이의 매화더미에 파묻히려는 순간 


매화더미 속에서 찬란한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무지갯빛 검광은 매화더미를 순식간에 가로지르더니 이내 검단현마저 갈라버렸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소지산을 잠시 응시하던 검단현은 힘겹게 말을 꺼냈다.


"이 검법도 종남의 무공이냐?"


소지산은 담담하게 검을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본파의 낙하구구검 중 최절초인 자하천래입니다"


검단현은 씁쓸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더니 이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종남에 장문인을 제외하고는 날 상대할 고수가 없을 줄 알았거늘... 나 또한 우물안 개구리였나 보군"


그와 동시에 상반신이 갈라지면서 그는 숨을 거두었다.



소지산은 경악의 표정으로 장내를 지켜보던 두기춘을 비롯한 화산파의 제자들에게 말을 걸었다.


"시신을 모셔가도록 하게"


두기춘이 제일 먼저 뛰어나와 떨리는 손으로 검단현의 시신을 수습했다.


그는 무언가 바라는 표정으로 소지산을 바라보았지만 소지산은 한숨을 흘리더니 한 마디를 남겼다.


"자네는 매사형의 몫이라 하더군...여기서는 보내주겠네"


두기춘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전에 서안파트 나올때 써놓은건데 하도 서안을 안 쓰길래 묵혀둔거 지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