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한국장르작가 이상균.

가장 잘쓴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 하얀 로냐프강 2부 이백년의 약속.

네이버북스에 올라와있는 것을 확인하고, 오랜만에 재탕하다가 알고보는 내용인데도 내도록 소름이 끼쳐서 예전에 썼던 감상문 긁어온다.


1. 문체

순우리말부터 한자어까지 어휘를 구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퀄리티가 높은 문장이라는 것은 일견 딱딱해보이기 마련이지만 저자는 믿을수 없을 정도로 유려한 문체로 그런 부분을 상쇄시켰다. 이미 문장부터 탈장르급.

2. 구성

인물과 사건, 그리고 배경이 한데 묶여 어우러지는 판. 플롯.
플롯의 정석은 이미 2500년전 고대그리스시대에 총정리되었고
오늘날의 모든 스토리구성은 이때 정리된 개념의 복사품이 지나지않는다.
그렇다면 그렇게 정리한 사람의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표작은 시학이고 시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 플롯이다.
시학에 나오는 플롯의 기본구성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요즘도 그렇게 틀에박힌 플롯으로 글을 쓰냐고?
위의 5막구조를 무시할수 있는 구성은 없고 능가할 구성도 없다.

그런 점에서 하얀로냐프강2부는 철저하게 기본에 충실한 구성이라 볼수 있다.
하얀로냐프강2부는 놀랍게도 주연급 인물 4명에게 이 구성을 적용시킬 뿐만 아니라 몇몇 조연들마저도 이 구성에 따르고 있다.

발단. 

무슨 일이든 시작이 중요하다. 소설도 발단이 중요하다. 발단은 무엇인가?
히치콕이 이런 말을 했다. 인생에서 재미없는 것을 잘라내고 남은 것이 드라마다.
그렇다.
평범한 일상. 변함없는 일과가 이야기의 발단은 아닐 것이다.
어떤 평온함을 깨는 사건의 발생.
그것이 발단이다.
예를들어 20년동안 헤어져 지내던 친동생이 어느날 갑자기 찾아왔다. 어떤 사연을 가지고...
이런 것이 발단인 것이다.
발단은 평온함을 깨야 한다.

200년간 강대국 이나바뉴의 식민지로 핍박을 받아온 루우젤. 수우판은 평범한 역사학자를 꿈꾸며, 엘리미언은 도시의 수비대장으로 늙기를 원한다. 하지만 엑세레온은 역사에 이름을 올리는 위대한 기사가 꿈이기에 조국을 배반하고 이나바뉴로 떠난다. 
한편 이나바뉴의 명문 라벨가의 젤라하는 이나바뉴가 대륙을 통일한 시점에서, 기사대장의 가문이라는 중압감이 시달린다. 조용한 시인, 학자가 꿈이지만 여건이 허락치 않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사대장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벨 수 있는 적이 없다.
그때. 왕녀의 남자로 내정된 기사가 루우젤로 시찰을 떠난다.
그리고 왕녀의 기사는 루우젤에서 암살을 당한다.
수우판은 루우젤의 군사가 되고 엘리미언은 기사대장이 되며 젤라하는 루우젤을 진압하는 파견대의 기사가 되고 엑세레온은 젤라하의 수습기사가 되어 조국인 루우젤을 치러 간다.

전개.
사건이 전개됨에 따라 주연들의 입장이 시시각각 뒤집힌다.
뛰어난 지략으로 승승장구하던 수우판은 젤라하의 속임수에 무너지고, 엘리미언은 그 막강한 힘을 휘둘러보지도 못한채 수도를 점령당한다. 젤라하는 루우젤의 반군을 진압한 일등공신으로 복귀하며 엑세레온은 보다 유명한 기사가 되기 위해 왕녀에게 접근한다.
이와같은 사건의 전개는 완급조절이 그야말로 완벽하여 몰입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주연이 다수라는 패널티를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킨 예라고 하겠다.


위기.
뜻하지 않았던 변수로 파멸을 맞아 제기의 가능성이 사라진 젤라하. 엑세레온은 이나바뉴 최고의 기사중 한명과의 공식적인 대결을 승리함으로써 이름을 드높이게 되고, 패퇴하여 잠적했던 수우판과 엘리미언은 신무기와 뛰어난 인재들을 확보하여 다시금 이나바뉴의 심장부로 진군한다.

절정. 

그 계곡에 달을 묻고..
루우젤 원정대장에 오른 엑세레온은 수우판의 지략을 꺽으려면 반드시 젤라하가 필요하다 여겨, 수를 써서 복귀시킨다. 젤라하는 가문의 명예를 위해 기꺼이 엑세레온의 제안에 수긍한다. 수우판은 젤라하의 계략에 의해 병력을 샤안의계곡으로 이끌수밖에 없게되고, 무적의 네프슈네나이트의 지휘자 엘리미언은 루우젤의 승리를 위해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되는데..

결말. 

살아서 전설이 될 수 없다면, 죽어서 신화가 되겠다.
루우젤의 회군.
그리고 독립.

장편의 소설을 집약시키니 정리하는데 무리가 따르는데 중요한 것은, 주연급 인물 4명 모두가 앞서 언급한 5막 구조를 너무나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한 명의 인물조차 최초의 플롯을 지켜나가는건 힘든 법인데, 4명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런 5막구조를 지켜나가려면 얼마나 치밀한 설정과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하는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그야말로 대서사시의 효시라 할수있겠다.

3. 주제
독립. 그리고 삶.
이 소설의 특이한 점은 각 차트가 시작되기 전에, 소설의 사건이 있었던 백여년 후의 어떤 역사학자가 당시의 상황을 역사적으로 회고하며 서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이 적혀있다. 역사는 삶을 기록한 것이라고.
수우판과 다른 주연들, 그리고 모든 조연을 통해 작가는 각양각색 인간군상들의 삶을 그리고 표현하였으며, 역사서의 말미는 역설적으로 진실과는 다른 역사가 기록된다. 작품 전반적으로 곳곳에 배치되어있는 작가의 삶에 대한 철학이 드러나는 셈이다.
역사가 우리를 부르는가? 우리가 역사를 만드는가? 
일독을 권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