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무갤의 높으신 협사분들에게 무협 내력을 자랑할 계제가 안 되지만 졸렬한 평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내려보고자 한다.

대중문학, 그러니까 판타지나 무협같은 소위 '양판소'의 것들엔 그들만의 가치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순문학과 장르문학은 그 갈래가 다르고, 굳이 하나로 억눌러서 생각할 필요가 없어. 더군다나 장르문학은 최근에 탄생한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추구하는 가치라던지 평가의 기준이 확고하게 정립되어있지 않다고 생각해. 여기서 (그리고 나도) 희대의 마공서로 평가하는 달빛조각사니 비뢰도니 하는 책들이 시중에서 잘 나가는 것을 보면 그것의 증명이 확실하게 되지. 본질적으로 이 두 작가의 작품은 그 소위 말하는 '대중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재 조아라나 문피아에 연재되는 숱한 마공서의 기초를 쌓은 작품이 초기형 대리만족 소설이야. 문단이나 문장, 묘사의 수려함은 때려치고 오로지 강한 주인공과 약하고 비열한 악당 - 원초적인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플롯과 장면 하나하나의 폭발성에 주목하는 연출로 점철한 장르지.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비뢰도>나 <묵향>따위가 있어. 기존의 무거운 문제와 심도 깊은 (적어도 깊어 보이려고 노력은 하는) 고찰에서 기반한 깨달음 위주의 무협에서 탈피하여, 좌백 및 신세대 작가들이 제시한 '재미' 자체에 집중하는 무협을 조금 더 극단화시킨 물건이야. 내공은 갑자 단위로 일종의 드래곤볼식 전투력이 되어버렸고, 깨달음의 경지는 도를 담지 않고 그냥 레벨 올라가듯 올라가는 물건이 되어버렸지. 묘사도 없는, 거의 대본에 가까울 정도로 심플하게 상황만을 전달하는게 목적인 문체로 한없이 가벼운 얘기를 전달해.


우각/태규와 기존의 무협 '협사'들의 차이가 여기서 갈린다고 생각해. 구무협 작가는 거의 죽어버린 지금, 그나마 최근에 뜨는 오채지같은 작가와 비교하자면 저 둘의 묘사력은 말 그대로 형편이 없어. 문단을 비평하기는 고사하고 문단 그 자체조차 글에서 찾기 힘들어. 대부분 문장 하나마다 강제개행을 해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예전부터 저 두명의 글을 꽤 읽을만하다고 생각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거야. (내가 공신력이 없다면, 좌백은 이미 태규를 칭찬한 바 있어.) 왜냐하면 내가 저 둘의 글에서 찾는 포인트는 다른 글과 상이하기 때문이야. 라이트노벨이나 양판소 - 아까 내가 언급했던 대리만족형 소설 - 에서 중요시하는게 캐릭터성인데, 정작 저걸 실제로 '올바르게' 구현하는 작가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찾기 힘들어. 몇몇 선구자들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이미 성공이 검증된 왕도를 따라가는, 다시말해 클리셰와 속성을 떡칠해놓고 장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지. 전자의 케이스가 <페이트>의 나스 키노코나 <이야기 시리즈>의 니시오 이신이라면, 후자의 경우는... 뭐, 가서 아무 안 팔리는 책이나 집어들고 그 작가를 보면 돼. 저건 요즘 나오는 무협에서도 벗어나지 않아. 무슨 얘기냐면, 글의 주요 인물을 묘사할 때 글에서 나오는 그런 기세가 다르다는 얘기야. 예를 들어볼게.


쟁선계에서 '남자의 손에서 번개가 울었다.' 하는 부분이 있지. 소름끼치게 전율이 강타하는 문장이야. 비슷하게 보면 군림천하에서 '나는 백동일, 장성의 절명검이다!' 이라고 하는 부분이 있어. 마찬가지로 카타르시스로 가득해. 왜냐하면 저 문장으로 캐릭터가 쌓아온 캐릭터성을 한순간에 폭발시키기 때문이야. 이건 플롯의 개연성이나 문체와는 관련이 없고, 순전히 이전에 깔린 복선이나 암시 - 그리고 작가의 '필력' 에 전적으로 달린 문제지. 양판소의 천하제일검과 군림천하의 천하제일검은 별호에서 오는 무게감부터가 틀려. 바로 그 차이가 태규/우각과 다른 마공서 작가들이 가진 차이야. 그리고 그게 계속해서 태규나 우각에 대한 호평이 무갤에서 나오는 이유기도 하고.


태규의 <천마재생>은 개연성이나 문장의 심미성으로 가면 속어를 섞어서 지랄맞게 못 쓴 글이 맞아. 복선회수도 제대로 안 되었고 심지어 내가 곧 칭찬할 캐릭터성도 너무 뻔하게 낭비된 게 많지. 할애한 분량도 적절했는데 이딴 꼴이 난 걸 보면 그건 작가의 책임이라고 볼 수 밖에 없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반부 천마재생이 보여준 캐릭터성 정립은 그 수두룩한 단점을 가진 작가라고는 믿기지 못할 완성도였다. 권무영이나 남장후가 글 안에서 풍기는 무게감이 제대로 느껴졌어. 조금 더 쳐주면 잔악마령도 그 무게감은 확실히 있었지. 심지어 일회성 캐릭터인 암야도 제대로 포커스 잡아주고 죽였어. 까자면 끝도 없이 까겠지만 저 부분은 확실히 칭찬해야 해. 우각도 마찬가지야. <십전제>에서 천우진이 뽑아내는 무게감은 그게 몇년 전 소설인데 아직도 회자된다는 팩트 하나만 가지고도 알 수 있지. 이게 두 작가의 글이 가지는 포인트야. 저 둘은 양판소 작가들이 맞춰야 할 포커스를 누구보다 탁월하게 맞추는 재능이 있어. 소위 말해 양판소의 완성형이라고 보면 돼. 우리가 그동안 계속 읽어왔던 정공서가 아닌 마공서의 정점이지. 그래서 우리가 싫어하는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호평떡밥이 던져지는거야. 굳이 무림에 비교하자면 뭐 어디 무당파 도사들이 강호에서 비무할때 낭인 고수들의 얘기를 계속해서 듣는 것이라고 비유할 수 있겠지. 낭인의 검에는 도가 없어. 아름답지도 않아. 그렇다고 그 검법이 약한 건 아냐. 우각이나 태규도 그렇다고 보면 돼. 낭인들의 검법처럼 포커스가 실전성, 즉 책이 많이 팔리는 '대중성'에 가 있을 뿐이니까. 그걸로 까자면 수도 없이 까겠지만 글 자체에 강점이 아예 없는건 아니란 거지.


신작중에 하도 읽을 게 없어서 천마재생 완독하고 주화입마 직전까지 갔다가, 촌부의 화공도담을 읽고 씻은듯이 나아서 한번 적어본다. 너네도 화공도담 꼭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