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협사 - 걸작을 찾아서 3 - 무명씨의 단혈보검 


   


  무명씨의 <단혈보검> 


1. 

이 책은 70년대 말, 혹은 80년대 초에 나온 것이고, 1995년 박애사에서 와룡생 

저, 이덕옥 번역이라고 달아서 재간되었다. 그런데 무명씨의 것이라고 하고 한국

무협으로 소개하는 것은 일단 이게 와룡생이 쓴 것은 절대 아니고, 둘째로 중국

무협이 아닐 가능성도 90%는 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게 중국무협인지 한국무협인지 모른다. 그러나 와룡생 이

름을 달고 화교, 혹은 여타의 창작자들이 만들어낸 초기 한국무협의 99%는 이 책

과 마찬가지로 중국무협인지 한국무협인지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시의 작품들은 다수가 편저 방식이었다. 편저(編著)는 번안이나 번역과는 다른 

것인데, 한 마디로 짜깁기 한 것을 가리킨다. 즉, 기존의 책들 중에서 마음에 드

는 부분들을 골라 한 편으로 묶고 일부는 새로 써넣기도 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말하자면 시작은 사조영웅전이고 1권 중반부터는 소오강호고, 1권 끝은 녹정기며 

2권에서는 신조협려의 에피소드가 들어가 있는데 주인공은 장무기고, 제목은 <단

혈보검>이라고 붙이면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작가가 새로 제목을 붙인대로 <

단혈보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누군가. 이렇게 만들어놓은 그 사람을 저자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그 모

모씨가 이러이러한 작품들을 짜깁기해서 만들어놓은 작품이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고, 그건 즉 중국무협이 아니라 한국무협이라는 것이다. 형편 없는 작품일지는 

모르지만.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동일한 요소들을 재배치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새로운 작

품이 만들어지고, 그것도 가끔은 재미있는 작품이 만들어지곤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도덕적인 판단은 하지 말기로 하자. 몇 번이나 말하지만 이건 옛

날 일이다. 이런 일이 아직도 그치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하여간 옛날에는 이런 일이 많았다. 


2. 

그런데 <단혈보검>이 짜깁기한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게 중국무협인

지 한국무협인지 확신할 수 없는 것처럼,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부분이 짜

깁기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확신도 없다. 



단지 나는 이렇게 모호한 시대 속에서 만들어진 이 <단혈보검>이 그 시대의 한 

면을 훌륭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중국무협의 과장과는 궤가 다른 

과장법, 그리고 지극히 낙천적이고 순진한, 혹은 순박한 이야기 전개와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간혹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무협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해볼 때가 있다. 



70년대에서 80년대로 넘어가는 어느 한 시점에서 무협은 변화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무협은 변화의 폭을 넓게 허용하지 않는 장르다. 역사가 길고, 

쌓인 작품도 많다보니 행보가 느리다고나 할까. 자생 장르가 아니다보니 수입된 

소설들의 원형에 집착하게 되었다는 면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무협의 변화는 혁신적인 변화라기보다 변주에 가까운 조심스러운 형태로 

행해진다. 가끔 혁신적인 변화를 보인 것이 없지는 않지만 장르의 범주를 아래로

든 위로든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사소설이 된다거나, 판타지가 된

다거나, 혹은 쓰레기로 취급되어 잊혀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간혹은 혁신적이라고 할 정도의 변화인데도 틀 안에 남아있는 경우가 있

다. 그 한 번이 성공하면 그 다음에는 이게 주류가 되거나 혹은 적어도 한 전형

으로 인정이 되어 이와 유사한 변주들이 탄생하기도 한다. 



좀 더 생각해 보면 결국엔 이것도 혁신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이전 형태에서 장

점은 그대로 받아들여 유지하고, 단점, 혹은 명백히 입맛에 안 맞는 부분을 제

거, 수정해서 만들어내는 것이니 결국엔 또 하나의 변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결과는 대개 혁신적인 것이었다. 



중국무협에서 한국무협으로 넘어오는 길목에 이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변화한 부분, 바로 그 부분이 어떤 것이냐를 알아내는 것으로 중

국무협으로부터 한국무협으로의 이전이 가능했던 이유,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사

람에 의해 중국을 배경으로 중국인이 활동하는 중국무협의 아종이 창작되고있는 

이유의 한 부분을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일차적으로는 앞에 든 두 가지, 즉 중국과는 다른 과장법과 순진하

고 쉬운 전개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한 두 마디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니 앞으로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같이 이야기해 

나가도록 하자. 


3. 

<단혈보검>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바닷가 어느 마을에 용씨 성을 가진 아홉 형제가 살았다. 위에 일곱은 장사를 해

서 큰 돈을 벌었고, 여덟째는 학문을 해서 지부대인 벼슬까지 했으며 막내는 태

산파 제자가 되어 무공까지 배우고 강호에 이름을 떨친 뒤 아홉 형제가 모두 고

향에 장원을 짓고 은거했으니 유복한 집안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형제들에게 단 하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들 자식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막내가 느지막하게 아들을 하나 낳아서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모았다. 이 놈이 크면 마누라에 첩까지 잔뜩 안겨서 자손을 뽑아내게 한 뒤 각 

형제가 나눠서 키울 기대에 부풀어 있는 참이었다. 



그런 기대주가 바로 주인공, 용연이었다. 



용연이 여덟 살 되는 해에 사고가 생긴다. 해적이 유괴했다가 바다에서 암초에 

부딪혀 침몰, 게다가 산더미처럼 큰 고래가 배까지 함께 삼켜 버리는 것이다. 정

신을 잃었다 일어나니 배에 살아남은 사람이라곤 용연 하나 뿐이다. 사방에는 붉

은 벽으로 된 동굴인데, 이건 고래 뱃속이다. 



이 고래는 구천년을 산 놈으로 뱃 속에는 경주(鯨珠)라고 부르는 내단까지 형성

된 녀석인데, 운도 없이 주인공을 삼켜버리는 바람에 주인공이 그 경주를 다 주

워 삼켜 버리고 배불러 못 먹는 것은 주머니에 챙기기까지 해서 도망가 버려 주

인공을 삼키기 위해 몇 년간 주인공이 숨은 섬 주변을 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어 

버린다. 



주인공은 피노키오처럼 고래 뱃속에서 간신히 탈출해서 바다 가운데의 섬으로 도

망치는데 여기서 금발에 파란 눈의 13살 소녀, 운혜를 만난다. 



포도아, 즉 포르투갈 출신의 이 소녀는 아버지가 영주의 뜻을 어겨 도망쳐 오다

가 해적을 만나 죽어버리고 그녀만 간신히 중원의 이인에게 구해지는데, 이 이인

이 얼마 전 중원에 나갔다가 죽어버리는 바람에 홀로 살고 있었다. 



그녀는 바다에서 구한 용연에게 호감을 갖고, 또 그에게서 경주도 얻어먹어 무공

수련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용연에게 자신이 배운 무공을 가르쳐 주는 것으로 

보답한다. 



용연의 기연은 끝이 나지 않아서 고래 뱃속에서 발견해 들고나온 상자가 있었는

데, 그 안에는 전국시대의 기인이 남긴 보검과 비급도 있었다. 기인은 단약과 주

술로 강철을 제련해서 단혈보검을 만들어 당시 세상에 해악을 끼치던 악룡 다섯 

마리를 잡고 그 용에게서 빼앗은 여의주와 내단들로 영약까지 만들었다. 그는 그

중 두 개를 먹고는 신선이 되어 날아가며 자신의 유물은 철상자에 넣어 바다에 

던진 것이다. 인연이 있는 자가 나중에 찾을 거라고 예상한 것이고, 물론 주인공

에게 인연이 닿은 셈이다. 



그렇게 소년 소녀가 섬에서 무공수련을 하고 정을 쌓으며 몇 년이 지났다. 



어느 해 섬에서 육지로 물품을 사러나간 배가 고래의 습격을 받는다. 마침 바닷

가에서 수련하던 용연이 쫓아나와 보니 예전의 그 고래였다. 용연과 운혜가 보검

과 고절한 무공으로 고래를 처치했지만 다시 한 번 삼켜졌다가 나와서 어느새 망

망대해였다. 어떻게 섬으로 돌아가나 걱정을 하고 있는데 바닷 속에서 금빛 거북

이가 나타났다. 발이 여섯 개요 눈은 네 개, 산해경에 나오는 주별이라는 놈이 

등장한 것이다. 



이놈과 또 싸우게 되는데 어디를 쳐도 먹히지 않는다. 하지만 거북이와 싸울 땐 

또 나름의 방법이 있다. 뒤집어 놓으면 되는 거다. 거북이는 내단을 몇 개씩이나 

뿜어서 공격했지만 그 내단까지 몽땅 용연에게 빼앗기자 눈물만 뚝뚝 흘린다. 

용연이 가련히 여겨 내단을 돌려줄테니 섬까지 태워달라고 제안한다. 영물 거북

이라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용연은 내단을 돌려주고 운혜와 함께 거북

이 등에 탔다. 



거북이가 한참을 가다가 바닷속으로 잠수를 하는데, 깊고 깊은 바닷속에 들어가

기까지 멈추지 않더니 용궁과도 같은 아름다운 풍경들을 지나 해저 동굴로 들어

간다. 신기하게도 거기에는 공기가 있다. 또 하나의 기연을 만난 것이다. 

이 안에서 삼 년을 보내고 거북이를 타고 나와서 섬으로 돌아온 뒤 용연은 운혜

와 일 년 후에 황산에서 만나기로 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집에서는 죽은줄 알았던 기대주가 살아서 돌아왔으니 경사가 난 것은 물론이고 

애초의 계획대로 얼른 장가를 보내려고 난리를 하는데, 고르고 골라 선을 뵌 여

자가 주인공을 무시한다. 그녀는 아미파 여승에게 무공을 배운 터라 나약한 서생 

타입의 남자는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부모 몰래 강호로 도망가 버리는데, 용연

은 물론 내심 코웃음을 치지만 어쩐지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서 그녀의 뒤를 따라 강호로 나가게 되고, 그 후엔 위기에 빠진 그녀를 구해

준 뒤 이제와서 사람을 못알아본 눈을 원망하는 그녀를 냉정하게 걷어찬 후 강호

를 행도하는 것이다. 



그 뒤는 중요하지 않다. 그다지 강호를 위협하는 무리도 없고, 주인공이 꼭 해결

해야 하는 일도 없다. 그저 주인공은 이런저런 악적들을 혼내주고 여자들을 구해

주며 다시 만난 운혜와 사랑 싸움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운혜를 포함한 다섯 여자

를 아내로 맞아들이면서 강호를 은퇴한다. 


이로부터 무림에는 태평세월이 이어졌다. -> 5권의 마지막 문장이다. 


4. 

지금 무협소설 소개를 한 것인지 옛날 이야기를 한 것인지 헷갈려 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70년대에는 이런 식의 무협소설이 꽤 많았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매우 황당할법한 이야기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걸 가지고 뭐

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만나보지 못한 것뿐일 수도 있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내가 읽어본 무협소설 중에서 이것은 황당한 점으로 말하자면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작품이다. 특히 피노키오에서 모티브를 받아온 것이 명

백한 고래 이야기며, 용궁 이야기의 변형임이 분명한 금거북 이야기가 그렇다. 

이래서 무협을 동양적인 환타지라고 해도 그리 어색하지 않게 들리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보다 성인을 위한 동화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건 앞에 든 고래니 금거북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작품 전체를 감싸고 있는 느

슨한 분위기, 갈등이라거나 긴장이 첨예하게 묘사되지 않는, 그래서 어딘가 맥 

빠진 듯하게도 보이는 이 순진하달까 쉽다고 할까 하는 전개 때문에 그러는 것이

다. 



이게 70년대의 분위기였을지도 모른다. 

<독보건곤>에서처럼 처절하게 당하는 모습을 구구절절 묘사하지 않고 그냥 산곡

을 헤매면서 도사를 찾는 소년이 있는데, 이 아이는 방금 혈겁을 뚫고 나온 처지

고, 반드시 복수를 해야한다고만 써놓으면 그냥 믿어주는 순박한 심성, 그런 독

자들을 대상으로 씌어진 글이다. 



어차피 독자가 좋아하는 부분은 기연이고, 복수지 애초에 원한을 지는, 지지리 

처절 궁상스런 장면이 아니었던 것이다. 



특히 선 본 여자가 무시하고 떠나는 부분에서 상처를 입는 여린 심성의 주인공, 

그리고 이게 강호출도의 중요한 원인이 되는 이야기는 동시대의 최고작가였던 이

연제가 <천무영웅전>에서 또 보여준 바 있다. 



다음 회에서는 <천무영웅전>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좌백(jwabk@sigongs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