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책에서 


꼰대 교장이 바이런과 세익스피어를 비교하는 문구가 나온다.

(영화로 유명한데 영화에선 나오는지 모르겠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칠판위에 가로선을 그리고, 세로선을 그린다.

가로선이 작품의 볼륨이고, 세로선이 작가의 개성.


세익스피어는 가로선이 훨씬 길고 세로선은 바이런보다 조금 짧다.

바이런은 가로선이 매우 짧고, 세로선은 바이런 보다 좀 길다.



이걸 가로곱하기 세로, 사각형으로 산출하면 바이런보다는 세익스피어가 면적이 더 넓으므로 더욱 훌륭한 작가다. 뭐 이런소리였던것 같다.


그러다 캡틴이와서 교장 머리통을 산탄총으로 날려버리고, 저런건 개소리니 믿지 마라. 뭐 이런 내용이었음.



작가를 비교할 때 총량을 산출해서 누가 더 낫다 이런거 말하지 말고, 자기 마음에 가는 부분 있으면 그냥 좋아하라는 뜻인데.



표류공주같은 경우엔 그런식의 매력은 있는 작품이다. 작가만의 매력이라고 볼만한 부분이 확실히 있음.


하지만 총평을 내려보자면 솔직히 '망한 작품' 이라고 생각된다.




이 글 쓰기 전에도 몇줄 쓰다지우고 몇줄 쓰다지우고 반복한게


무슨말을 써야할지 모르겠더라. 그리고 표류공주라는 글을 평하는데 무슨 말이 적당할런지도 알수 없었고.



그러다 인터넷에 표류공주 치고 남들이 적은 감평을 봤다. 금강과 진산 두 작가가 이 글을 읽고 평을 적었고


결과적으로 두 작가 모두 좋은 평을 적진 않았더라. 이런말 하면 우습지만 내 입장에선 안심이 되었다 ㅋㅋ



금강의 경우엔 처음부터 실패한 글이라고 못박았고, 진산의 경우엔 혹평하기 미안스러웠는지 에둘러서 실패한 글이라고 적어놨으니.




이게 단순히 암이 걸리는 것 같은 전개 때문은 아닐거다. 무협지라고 주인공 잘되라는 법 있나.




나는 작가가 하고싶은 말이 있는 글, 메시지가 있는 글을 좋아하는데


표류공주의 경우엔 작가가 하고싶은 말이 있고, 그걸 써내려고 노력도 했다. 좋은 점이고, 제대로된 작가의 소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거에 작가가 지나치게 집착했다는 점이다. 


주인공 모진위가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외부의 물결에 의해 이리저리 흔들리고 마는 느낌을 살리기위해


독자를 납득케하는 글의 개연성 자체가 희생되어버렸다.




모진위의 고난자체에는 별다른 설득력이 없다.


처절하기 그지 없는 모진위의 인생역정은, 불행이 넘실대는 바다의 일엽편주는 기연, 오직 우연과 기연을 모멘텀으로 전개되버린다. 주인공의 의지나 선택이 전무하다 보니, 모진위는 우연히 불행해지고 재수가 없어 불행해진다.


잘못된 선택이 아닌 '우연'과 '기연'만으로 불행해지는 구조는 이 이야기의 가장 큰 결점이다. 따지고 보면 이게 테마고 주제인데, 결론적으로 작가가 테마를 극복하지 못했다.


(흑수노계가 카프카였으면 해결되었을 문제였겠다만... 그런데 카프카의 K도 모르는 대상이랑 싸우지 모진위 처럼 가만히 정지해 있진 않잖아. )




사실 무협지만큼 기연이 허용되는 장르는 없다. 무협에서 기연은 밥먹고 똥싸는것 처럼 자연스럽고 허용되는 클리셰다. 하지만, 유독 표류공주에 이 기연의 잣대가 엄격히 적용되는 이유는 기존 무협의 기연처럼 '작가와 독자'간의 사회적 합의가 된 기연이 아니라서다.


'이봐 독자님. 당신은 주인공이 수련하고 고난 겪는거 보기 싫지? 나도 쓰기 귀찮아. 단축시켜 줄게.'


이게 보통 무협지의 기연이다. 요즘 유행하는 전생물을 생각해보자. 어떻게 전생을 하는지 무슨 원리인지 작가는 쓰지 않고 독자도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못된 신이, 초월적 존재가 재미를 위해 인간을 전생시킨다. 는 빈약한 한두장의 서술에 독자는 아무런 의구심을 품지 않는다.


 사회적 합의. 장르소설계의 암묵적 합의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표류공주는 다르다. 고난이 내용이고, 고난이 줄거리다. 작가의 의도가 그렇고 전개가 그렇다. 남들이 생략하거나 단축하는 이야기가 표류공주의 테마고 알갱이다. 이 대범한 작가가 기존 클리셰와 정면으로 대결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 경우엔 기연이라도 개연성을 충분히 제공해야한다.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는걸 독자가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훨씬 난이도 높은 글쓰기 방식이고, 성공하는 사람도 나오기 어려운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그치만 표류공주의 이야기 전개 방식은 이런식이다.


'주인공은 고등학생이다. 특정학과를 진학하고 싶어한다. 어머니 아버지는 주인공에게 반대하고, 주인공은 나름대로 번뇌한다. 갈등이 고조된다. 그런데 8차선 도로에서 튀어나온 트럭이 횡단보도를 걸어가던 주인공을 깔아뭉갠다. 병원에 실려간다.

그시각 엄마 아빠는 횟집에서 생선을 먹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횟집 주인이 생선 손질을 게을리했고, 어머니는 가시가 목에 걸려 죽고 아버지는 간디스토마균에 감염되어 죽었다.'


 테마자체가 주체적이지 않은 외부의 영향을 받는 주인공이 타의에 의해 표류하는 인생이다 보니 이야기가 시종일관 이런식이다.


 어떻게 써야 이 이야기에 개연성을 주입할 수 있는지, 어떻게 써야 이런 이야기가 매혹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는지. 무슨 요소가 필요한지는 나로선 잘 모르겠다. 사실 이야기 자체보다는 작가가 어떻게 풀어가기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니 이런 내용을 가지고도 재미있게 풀어 나갈 수 있는 작가는 있을 것이다. 예측불허하게 독자의 간담을 들었다 놨다 한다면 이 구조도 충분히 재미난 한편의 소설이 될거라 믿는다.


 하지만 여러가지 장치를 써야 할 것이고, 여러가지 방향으로 설정을 잡아야 할 것이다. 


 흑수노계의 경우에도 이걸 위해 설정을 한다. 천하 정세가 어쩌고, 세력간의 역학관계가 어떻고 충실히 설정을 한다. 검법의 특성에서 부터 단역에 불과한 술집 점소이의 심정, 별 중요하지 않은 등장인물들의 내면묘사와 사문, 배경과 내력까지 충실히 적어둔다. 작가의 필력도 빼어난 편이기 때문에, 읽기가 괴롭진 않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다. 


 하지만 모진위는 우연히 불행해지고, 불행을 받아들여 삭힌다. 그게 다다. 아무런 선택도 갈등도 없고 원망도 없다. 운이 없어서, 그리고 모진위가 그냥 타고난 병신이기 때문에. 대체 뭘 어쩌란 말인가. 긴장감도 고저도 없이 쭉 불행해지기만 하는 이 내용을... 아무런 갈등이, 최소한의 갈등조차 없는 내용에 오직 우연이라는 바람만이 돛을 몰고가니...




 책을 다 읽고 나니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게 글을 쓰기 어려웠던 이유이기도 하다.


 "왜일까."


 대체 왜일까. 작가가 문장도 잘쓰고 설정도 잘 짰다. 그런데 왜 이야기가 이런식으로 표류하는 것일까. 테마 자체가 명징하지 않아서? 아니다. 충분히 쓸 수 있는 내용이고 테마다. 그런데 왜?


 내가 생각하기엔 엔딩 때문이다. 끝을 정해 놓고 이야기를 질주시키면 이야기는 굴러가기마련이다. 라지만


 까놓고 엔딩이 좋은 작품성 다 깎아 먹었다.



 작가는 마지막 장면을 존나 쓰고 싶었던게 틀림없다. 달과 해가 함께 뜨는 날, 아련한 그리움으로 서로를 그리워하는 주인공을 적고 싶어서, 그 한컷의 예쁜 사진을 찍고싶어서 몸살이 난게 틀림없다.


 그리고 이 한컷의 그윽함을 살리기 위해 이 작품의 가능성과 쌓을 수 있었던 개연성이 모두 희생되어버린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첫단추부터 꿰어나가는게 아니라, 마지막 단추에 맞춰 어거지로 단추구멍을 재단하는 식이 되어버렸다고.

 강렬한 한컷을 찍고 싶지 않은 작가는 없을테지만, 그것도 앞에서 떡밥 쌓아놨을 때 이야기지... 뜬금없이 강렬해지면 비약이 아닌가.


 자살을 하려거든 자살을 하든가, 왜 갑자기 다리를 벌리냐. 못다한 사랑을 나누기 위해? 알겠다. 그런데 왜? 그러려면 하다못해 목선민과의 갈등구조라도 드러났어야 하는게 아니었을까.


 아니면 점소이 이야기나 용병이야기 쓰기보다 채경령의 이야기, 채경령이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좀 더 서술했다면...


 모진위를 흔들리게 하고 침몰시켜버리는 비정한 사회상이나, 거기에 괴로워하는 주인공과 히로인을 보여주려거든 주변인의 설정 부분은 차라리 좀 더 생략되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작가는 자꾸 전체를 보여주려고 하는데... 독자입장에선 신경써야 할게 너무 많았다. 




 금강이 하고 싶었던 말은 대강 이런 소리가 아니었을까.


 "파격을 추구하지 말라는건 아니다, 대신 그만큼 잘써야 한다."




 그런데... 여기까지 쓰고나니 너무 혹평해서 미안스럽다.


 사실 시도 자체가 좋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욕먹을 작품은 아닌데...


 작가의 수준은 높았지만, 선택한 난이도가 더 높았다고 해야하나.


 한줄 요약하자면 '졌지만 잘 싸웠다.' 정도로 이야기하고 싶다.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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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차라리 분량 줄이고 두 주인공에 집중해서 두권정도로 썼으면 명작품 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