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더러운 노인이다.

 그가 소리친다. 갈라지다 못해 말라붙은 목소리로. 멀어버린게 분명한 하얀 동공은 허공을 더듬고 있다. 

 정말로 더러운 노인이다. 하얗게 샌 머리칼 사이론 이가 스물거리고 몸에서는 구역질이 나올만큼 역한 쉰내가 풍긴다. 

 대체 누가 짐작하겠는가. 이 볼품없는 노인이 형산파의 이름높은 검객 비성흔일줄을.


"비대협. 도망다니느라 고생이 많으셨소. 형산파 오결이상의 제자는 당신이 마지막이요. 내가 누군지 아시겠소?"

"진산월이 네놈이구나."


 노인의 하얀 동공이 진산월을 향한다. 퉤. 노인이 뱉은 침이 진산월의 발치에 떨어진다.


"내가 눈이야 멀었어도 악적의 음성까지 잊겠느냐? 죽여라. 이 늙은 몸이 살아서 무얼하는가. 더러운 꼴이나 더 보겠느냐. 죽이거라."


 진산월이 말한다.


"마지막으로 물을 것이 있소. 백대행의 위치를 아시오?"


 껄껄껄, 노인의 어깨가 가느다랗게 떨려온다. 껄껄껄. 작은 웃음소리가 노인의 입을 비집고 흘러나온다. 


"네놈들... 네놈들은 아직 대아를 찾지는 못했구나." 

"...백대행의 위치를 아시오?"


 진산월의 낮은 목소리에는 감정이 담겨져 있지 않다. 그와 대조적으로 노인의 웃음소리가 커져간다. 내장 속 가장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던 마른 소리는, 마침내 광기어린 광소가 된다.


"복수할 것이다! 하, 대아가 복수해줄 것이다! 종남의 버러지들을 잡아 죽일 것이다! 네놈들을 찢어죽여줄 것이다! 대아가... 대아가 해줄것이다!"

"중산."


 동중산이 머뭇거리며 진산월을 본다.


"쳐라."


 담담한 선고. 동중산은 반문하지 못한다. '꼭 이래야만 합니까.' 안타까운 눈으로 장문인의 얼굴을 바라볼 뿐.


"중산 쳐라:


 다시 진산월의 입술이 움직인다. 노인은 죽음을 짐작한다.

 칼이 떨어진다. 쿵. 잘려진 목이 데굴데굴 굴러가 노인의 꿇어앉은 무릎께에 닿는다.


"..이건 무슨 짓이냐?" 


 노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노인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아니다. 믿고 싶지 않을 뿐. 어쩌면 반쯤은 짐작했을지도 모르리라.

 진산월은 이제야 즐겁게 말한다.


"백대행은 당신의 무릎 맡에 있소. 그게 백대행이오."


 아 아 아. 밧줄로 옥죄인 몸을 비트는 노인의 눈가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흘러내린다. 아 아 아. 오열하는 노인의 목소리를 지으며 진산월이 미소짓는다. 무너져 내리고 있다. 형산 오결검객의 긍지가, 그 드높던 자부심이, 마지막 희망이...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는 순간을 천천히 음미한다.

 승리를.


"중산 쳐라."


동중산이 칼을 휘두른다. 비성흔의 목이 떨어져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