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은 1416년으로 잡았음.
이때 서문숭 35세인데 제갈휘는 나이 명시가 없어서 걍 26세로 잡음.
아 부제는 비밀임. 별건 아닌데 그래도 마지막에 쓰려고함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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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겨울 밤의 바람은 매서웠다. 지금은 이월 중순. 바람이 차다 하여 동장군(冬將軍)이 한창 맹위를 떨치던 한겨울의 입김보다 쌀쌀맞지는 못해야 할 텐데, 곧 맞이할 봄을 기대하는 나약한 생명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주위의 공기는 매정함을 뽐내고 있었다. 찬바람은 맨손과 맨얼굴을 에어 들어오고, 얼어붙은 땅은 두꺼운 털가죽을 덧댄 신발 안에 숨어있는 맨발을 도모한다.
동장군의 성화를 견디다 못한 태양이 서둘러 몸을 감춘 지도 세 시진이 다 되어 갔다. 겨울만 되면 담당해야 할 시간이 늘어나는 달은 몇 개월의 과로에 피로했는지, 태양이 달아난 지도 한참 뒤인 조금 전에야 핼쑥한 얼굴을 들이밀었다. 시각은 바야흐로 해시(亥時) 말, 자시(子時)가 얼마 남지 않은 참이었다. 늑장을 부린 것이 미안하기라도 했던 듯, 달은 찬바람에 시달리는 산천을 은은하게 비춰 주었다. 오늘따라 달을 올려보는 눈이 더욱 시리는 것은 눈두덩에 몰아치는 찬 공기가 매서워서일까, 달이 밝아서일까. 창백하지만 아름다운 하현의 반월이었다. 그 아래서, 잠시 달을 쳐다보느라 걸음을 멈췄던 젊은이 하나가 산 속을 걷고 있었다.
“낭패로구나.” 제갈휘(諸葛輝)는 어두컴컴한 주위를 둘러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은 남직례(南直隷)의 황산(黃山), 그 일흔두 봉우리 중 어딘가에서 울창하게 자라 있는 숲이었다. 그가 남직례에 도착한 것은 이레 전이었다. 작년 가을 서악(西岳)을 떠난 그는 원래 목적지인 복건(福建)을 향해 똑바로 움직일 작정이었다. 그러나 젊은이가 길을 떠난 이상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천하의 이치인지라, 제갈휘는 당초의 굳은 작정을 잠시 접어 두고 행로를 약간 틀었다. 열 살이 되지 않은 나이에 화산에 입산하여 너덧 해를 정신없이 무공수련에만 매진했던 그였다. 천하에 퍼진 명망만큼이나 엄격한 사부인 복마대협(伏魔大俠)의 가르침을 소화하기도 벅찬 나날이었다. 제갈휘는 어릴 때부터 총명했다. 그 또래의 총명이란 대개 발칙함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도, 천성이 온후하고 충직한 그는 가끔씩 사부가 구경시켜 주는 화산의 산세에 감동했고, 사부가 들려주는 중원과 새외의 흥미로운 이야기에 눈을 빛내는 것으로 호기심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 강직하기가 대쪽 같다던 복마대협 주동민(朱東閔)도, 어린 장제자의 그런 모습에 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제갈휘가 열다섯이 되던 영락(永樂) 사 년 초가을, 사부는 싸움 구경을 다녀온다며 산을 내려갔다. 사춘기 소년의 마음은 호기심과 호승심으로 들끓었다. 그러나 사부는 그를 데려가 주지 않았다. 이번 구경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소년은 다시 한 번 호기심을 삼켜 사부를 배웅했고, 사부는 어색한 표정으로 이번 일이 끝나면 함께 갈 곳이 있다고 그를 향해 말했다. 영특한 소년은 살가운 마음을 드러내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사부의 진심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는 사부를 기다렸다. 달포쯤 뒤에 돌아온 사부는 문파의 대문과 화산 입구에 붉은 봉인을 걸었다. 소년은 슬펐다. 약속을 어긴 사부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사숙들은 바닥에 엎드려 엉엉 울기도 했고, 애꿎은 나무와 돌을 후려치면서 욕을 내뱉기도 했다. 소년은 화산파에 어떤 일이 생겼는지 금세 알아차렸다. 그리고 천하 강호에 어떤 일이 생겼는지도 흘러가는 얘기들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소년은 자신의 세상 구경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겼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십 년 동안 무공에 미친 듯 매달렸다. 십 년이 지나면 반드시 천하를 두루 구경하리라 마음먹었고, 그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그가 대성한 스물네 동작의 매화검법(梅花劍法)은 소년과 사부와 문파와 천하가 짓씹고 있는 원한을 풀어 줄 열쇠였다.
구 년이 지났다. 아직도 굳게 걸려 있는 산문(山門)의 시뻘건 봉인은 바래지도 않고 이따금씩 화산을 드나드는 자들의 가슴에 참괴함을 안겨 주고 있었다. 이제 소년은 청년이 되었고, 사부보다 강한 검객이 되었다. 청년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사부는 청년을 불러 관외(關外)에 다녀오라는 명을 내렸다. 청년은 언제나 그랬듯이 사부의 말에 순종했다. 스물넷의 나이에 처음으로 화산을 떠난 청년은 옥문관(玉門關)에서 어떤 도객(刀客)과 비무를 벌였다. 비무를 마치고 돌아온 청년은 이미 백도의 대들보 같은 인물이 되어 있었다. 세상은 청년이 그 전 해에 화산을 찾은 어떤 거지 손님의 제자 거지와 벌였던 비무까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십 년이 지난 가을, 스물다섯의 청년은 두 번째로 화산을 떠났다. 처음으로 스스로의 의지로 시작한 여정이었다. 사부는 수십 리를 더 따라와 이제는 훌쩍 커버린 청년을 배웅했다. 이번에는 청년이 사부에게 약속했다. 이 일이 끝나면 돌아와 사부를 모시고 갈 곳이 있노라고.
그렇게 떠난 길이었다. 제갈휘는 두 번 다시 화산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번 여행길을 조금이나마 즐겁게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당초 계획한 진로는 접어둔 채 서도(西都-장안)과 동도(東都-낙양) 등의 큰 도시 몇 군데를 구경했고, 장강을 건너 남경을 지나 남직례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가 장강을 건너기 전까지 만난 강북의 명숙들은 하나같이 천하의 대적(大賊)에 대한 분노로 들끓었다. 대부분 대적이 명령한 십 년 봉문을 얌전히 받아들였던 자들이었다. 십 년은 너무 긴 시간이었을까. 그 명망 높고 협의 넘치는 영웅 협객들은 사악한 마귀를 홀로 상대하러 가는 그의 행로에 아름다운 찬사와 조금 더 아름다운 금전적인 보탬을 주었을 뿐, 막상 그와 함께 장강을 건너지는 않았다. 백도의 영웅들이 보여주는 헌신적인 모습에 감동한 제갈휘는 몇몇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강을 건넜다. 이유인즉슨 날이 너무 춥고 바람이 거세 강을 건너기 위험하다는 것이었는데, 제갈휘는 날씨 따위가 추워 봤자 대적이 천하에 지은 죄보다 차갑지는 않을 것이라 외치며 강을 건넜다. 감탄한 영웅들은 탄식을 내뱉었고, 고개를 돌린 제갈휘는 욕지기를 삼켜냈다. 그때가 정월 중순이었다.
스물여섯이 된 제갈휘는 강남에 도착했다. 강남은 과연 대적의 영향력이 큰 곳이라, 젊은 검객을 신주단지 모시듯 떠받드는 무리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그가 명문 화산파의 제자라는 사실 자체를 함부로 발설할 수도 없었다. 백도의 대들보이자 주춧돌은 스물여섯이 되어서야 겨우 강 한 번 건너 본 어리숙한 촌놈이 되었다. 남직례의 태평호(太平湖) 부근의 객잔에서 하루를 묵은 제갈휘는, 다음 날 길을 나서서야 자신이 다섯 배 이상의 바가지를 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조차 친절한 과객(過客)이 안쓰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넌지시 귀띔해주지 않았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터였다. 여기서 교훈을 얻은 제갈휘는, 황산 기슭에 있는 수많은 주막들과 객잔들이 손님을 모으는 소리를 모두 무시하고 당당하게 산 위를 향해 발을 내딛었다. 비록 이방인이자 촌놈일지는 몰라도, 산에서만 십수 년 넘게 살아 온 그였다. 한두 밤을 산에서 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다. 또 ‘황산을 보면 오악(五嶽)이 눈에 차지 않는다’라는 세인들의 말을 듣고, 바로 그 오악 중 서악 출신으로서의 결연한 호승심이 발동한 탓이기도 했다.
절대 다른 산의 경치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에도 불구하고, 제갈휘는 깎아지른 듯한 바위산에 둘러싸여 내려치는 구룡폭포에서의 일몰을 보고 말았다. 흥이 난 나머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대주천(大周天)까지 두어 차례 마친 제갈휘는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그리고는 길을 잃었고, 지금 늦겨울 밤의 찬바람에 물어뜯기며 헤매고 있었다.
호오
ㅋㅋ왠지 장편 스멜이 난다
분위기 좋다.
부제를 뒤로 미루는건 개세마두의 영향이려나 ㅋㅋ
ㄴ 솔직히 말하면 아직 못정함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