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람대연 전야.


산에 부는 바람은 밤이 되자 칼처럼 날을 세우고 맹렬히 휘몰아쳤다.

종남파가 자리한 이 곳 어느 방 안은 찬바람이 위력을 잃고 말았다.

놀랍게도 용광로처럼 뜨겁기만한 열풍이 가득차 있었으니...


"오라버니, 드디어 내일... 하악... 이군요"

"끄으응! 그래, 드디어 내일.... 허억!.... 이로군."


방취아, 그리고 소지산.

두 남녀는 기묘한 자세로 뒤엉켜있었다.

소지산은 문득 사부님이 생각났다.


"지산아, 내 너에게 긴히 할 말이 있구나."

"예 사부님. 말씀하십시오."

"내가 죽거든 이 가방을 함께 묻어다오. 가방 속에 작은 가방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만 꺼내서 따로 보관하되 절대 열어보아서는 아니된다.

절대루. 너와 나만이 아는 비밀이다. 알겠느냐?"

"예 사부님. 하지만 돌아가시다니요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허허허 녀석. 때가 되면 알리라."


이후 종남이 멸문 직전까지 몰리자 소지산은 그 가방이 생각났다.

왜 열어서는 안된다고 하셨을까? 혹시 훗날 반드시 열어보라는 뜻이 아닐까?

어차피 이대로 가면 사부의 유언대로 군림천하하는 대신 폭망천하하게 생겼는데?

그는 큰 맘 먹고 가방을 열었다.


<천마묘무환희대법(天魔妙舞歡喜大法)>


가방 안엔 낡은 책자 한 권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로 운명이었다.

서역 마계 차녀파(侘女派)의 절세비급이 왜 사부님 수중에 있었는지는 아마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을 것이다. 희대의 마공서를 두고 소지산은 망설였지만 끝내 손을 대고 말았다.

유일한 법도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그것은 합환으로 공력을 올리는 여타 환희지도(歡喜之道)와 궤를 달리했다.

하나에서 둘이 나고 태극에서 음양이 나는 법. 남자에게도 음기가 있고 여자에게도 양기가 있다.

남자의 양기 속에 감추어진 한 방울 음기, 진음(眞陰).

여자의 음기 속에 감추어진 한 방울 양기, 진양(眞陽).


진음, 진양을 훔쳐 공력을 쌓는 방법은 상대를 죽이는 잔악한 짓이었고 하수들의 수법에 불과했다.

진정 상승지도는 진음과 진양을 서로 지키는 가운데 마치 생사결투를 하듯 수련하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상부상생 대통합의 새 시대로 나아가 천지가 생긴 이후로 누구도 이룩하지 못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나 익힐 수는 없었다. 종남파 재건을 꿈 꾸는 임스카우터에게 소지산은

그래서 꿈처럼 다가온 행운이자 운명이었다. 거지 발싸개처럼 생긴 소년을 처음 보자마자

그는 그토록 찾아해매던 그릇이 눈 앞으로 다가온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천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다는 그 눈부신 신체! 구라일 가능성이 훨씬 높아보이던 바로 그 육체!

태태양신맥을 지닌 소년을 발견한 것이다. 이제 태태음신맥만 있으면!


하지만 또 안타깝게도 황보는 태음신맥이었다. 그 정도로는 대법을 익히지 못하는 슬픈 현실 앞에

그는 또다시 운명에 도박을 걸어보기로 했고 마침내 임스카우터는 그리고 종남파는

태태음신맥을 지닌 여체를 제자로 맞이했다. 아아 이거슨 정녕 운명의 장난인가 축복인가?


뜨거운 폭풍이 가라앉았다.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법이 이제 겨우 오층에 다다랐군요. 구십 팔층까지 가려면 얼마나 더 있어야하죠?"


"걱정할 것 없어. 오층만해도 충분해. 사람들은 진산월을 주목하고 있지만 후후후!

진정한 군림천하는 이제부터 시작이야. 더는 힘을 숨길 필요도 없다구."


대해무적신검의 신화는 오늘 화산파를 짓밟고 써질 것이다. 아직 아무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하루에 달이 두 번 뜨고 괴물 원숭이가 하늘에서 내려올 때까지는.

군림천하를 넘어 군림우주의 시대가 오리라고는 계왕신 빼고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재미없을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