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남파가 고난을 이겨내고 군림천하해야 하는데
고난이 없어.

요즘 행보를 보면 1부의 그 처절함은 뭐였는가 싶거든. 앞뒤 정합성이 안 맞는다는 거지.
이렇게 무공만으로 쉽게 이길 놈들이었으면 예전에는 왜 당하고 산 거지?


소지산이 요즘 개까이는 것도 사실 이런 부분이 크다.
무협 이야기니까 결국 무공으로 귀결되기는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무공으로 이긴다는 결과만이 아니야.

이번에도 이길수 있는가 하는 불안감.
수적 열세에서 오는 압박감.
화산파가 체면 다 버리고 암수까지 써올지 모른다는 잡생각.
텅빈 본산을 자기가 맡고 있다는 그런 중압감.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을 지지해준 이들과 사문의 정.
삼락검은 상승무공이라는 자부심.
사형이 돌아왔을 때 나는 결국 이겨내었노라고 말하겠다는 의지.


고난을 통해 실존이 나타난다.
적수를 통해 나를 알게 된다.
그리고 결국 한 발 넘어선 나를 발견하면서 벌거벗은 몸으로 소리치는 거지.


삶이란 실존을 걸고 부딛치는 모습이고 무공 대결은 그 표출에 지나지 않아.
용노괴가 정말 소지산이라는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었다면 그의 천재성이나 유불란이 아니라 끝없는 중압과 신념을 보여줬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종남파의 대해검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철혈의 독심 검단현을 보여줬어야 했다.
마치 그라데이션의 어두운 음영을 통해 전체 색조가 더 강렬하게 나타나는 것처럼
화산만을 위하고 화산에 죽고 살고 화산을 위해서라면 진짜 흑도들보다도 악랄해질 수 있는 검단현을 보여줬어야 했다.



근데 연재분의 소지산은 지가 뭔 내적갈등을 하는지 방취아 엉덩이 人자 라인을 생각하는지 독자가 알수가 없어.
고난이 없으니 신념이 드러날 수가 없다.
신념이 없는 캐릭터에 무슨 재미가 있나?  1분 생각하고 휘갈긴 캐릭터 시트만도 못하지.

소위 완성도 높은 입체적인 캐릭터라는 것은 결국 정보량의 차이다.
친절한 면, 엄혹한 면, 협사의 얼굴, 인간의 얼굴. 여러 모습을 보여줄수록 캐릭터는 풍부해지지.
그런데 이 풍부함이 풍부함으로서 기능하려면 그 모든 얼굴을 일기관통하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


'군림천하하겠다.'
'이제 없는 사부에게 가슴 펴고 말하고 싶다. 나는 해냈노라고. 사제들과 함께 종남파를 일으켰노라고.'


그리고 이 형태 없는 신념에 형태를 주는 것이 바로 고난이다.

탈주하는 호로새끼들.
빼앗긴 자기 여자.
안 풀리는 무공.
그나마 머리는 돌아갔는데 뒤통수도 맞고.
안으로나 밖으로나 약소하다는 무시와 냉대.


이게 있기 때문에 아직 진산월은 진산월인 것이다.


글쎄. 나는 용노괴가 서안에 품고 있는 감정을 아직 잘 모르겠다.
소지산에 대해 품고 있는 구상.. 이미지도 잘 모르겠고.
악산대전도 사실 별로 와닿지 않아.
다만 작금의 연재에서 고난이 사라졌다는 사실만은 잘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