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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남자의 압도적인 존재를 처음 본 순간, 제갈휘는 그가 자신이 찾던 사문과 강호의 대적, 마귀 소굴 무양문의 수괴임을 알아차렸다. 저렇게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인간은 그의 평생 처음이었다. 심지어는 그가 가장 은애하고 존경하는 사부 주동민조차도, 존재만으로도 주변의 모든 것을 찍어누르는 듯한 저 붉은 남자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제갈휘는 지금 그가 이토록 압도당한 것이 붉은 남자가 거물이라서인지, 자신의 강호 견문이 얄팍해서인지 잠시 고민했다. 쓸데없는 의문이라는 것은 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붉은 남자의 행동에 오감이 모두 붙박인 채 꼼짝 못하던 제갈휘였지만, 곧 심신을 정비할 수 있었다. 핏물이 고동치는 소리만이 울리던 귀에 조금씩 인간의 말 소리와 웃음 소리, 짐승들의 투레질 소리가 들려왔다.

공연히 힘을 뺄 필요는 없었군.’

마귀 대왕을 눈 앞에 두고, 제갈휘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조금 다행이었다. 자칫하면 마귀 대왕을 만나기도 전에 수많은 무양문 마귀들에게 둘러싸여 횡사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기까지 했다. 인상적인 만남의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는 데 성공한 제갈휘는, 붉은 남자 다음으로 존재감을 뽐내는 물건을 향해 눈길을 옮겼다. 술잔을 뒤집어 놓은 듯한 저 무지막지한 쇳덩어리는, 분명히 불문(佛門)에서 시각을 알리고 행사의 시작과 끝을 알린다는 종()이라는 물건 같았다.

소리라도 시험해 보려는 듯, 종 옆에 선 붉은 마왕(魔王)이 제갈휘를 쳐다보았다. 마왕은 우선 고개를 갸우뚱거렸고, 두 눈알을 한 바퀴 굴렸고, 한 쪽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이윽고 같은 쪽의 입술을 말아 올렸다. 눈 깜빡할 사이 그에게서 시선을 거둔 마왕은 올려 둔 오른손으로 종 표면의 용 대가리를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마왕이 풍기는 기운은 이를 데 없이 광폭하고 위험하고 격렬하게 변했고, 제갈휘는 또 한 번 얼어붙었다.

데엥..

데에엥...

...

뎅데에에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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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리는 마치..

사위를 뒤흔드는 천둥 같았다.

대지에 쏟아지는 폭우 같았다.

천둥과 비를 자식처럼 몰고 다니는 광풍 같았다.

퍼져나가는 울림은 보이지 않는 벼락 같았다.

자만에 찬 천둥벌거숭이에게 내려지는 사형 선고 같았다.

어떤 것도 제갈휘를 옭아매고 있지 않았지만, 종소리를 온 몸으로 듣는 그는 꼼짝할 수 없었다. 종소리는 마치 왜 목숨을 덧없이 버리느냐?’ 라며 혀를 차는 것 같았다. 제갈휘의 목숨은 이미 마왕의 손에 달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젊은 검객은 저 종소리에 휩쓸려 지옥으로 끌려들어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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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타종을 멈추고 울림의 여운을 즐기던 마왕이 이번에는 왼손을 들어 종의 반대편을 때려 갔다. 그리고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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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뎅뎅...

데에엥...

데에에에엥..

첫 타종이 천둥벌거숭이에게 내리는 경고 같았다면, 지금의 타종은 좀 더 빨랐고, 좀 더 격했다. 제갈휘는 이미 종소리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무생문 주위 그 누구도 살기를 드러내지 않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이미 죽어 가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어 갔다. 마왕은 어느 샌가 제갈휘를 다시 바라보고 있었다. 첫 종을 치는 동안 짓고 있던 염라전 판관과 같은 근엄한 표정이, 어느새 발랄한 악동의 짓궂은 웃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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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휘는 간신히 악동의 미소를 마주했다.

그의 호흡이 거칠어졌고, 그의 체온이 높아졌다.

종소리를 들은 무양문도들이 금방이라도 동서남북의 대문을 모두 열고 뛰쳐나올 것 같았다.

마왕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종이 한 차례 울릴 때마다 제갈휘에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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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는 화창한 하늘을 가르며 이어졌다.

여운은 그의 주위를 맴돌며 지옥으로 끌고 갈 틈만 노리는 것 같았다.

지옥의 종소리가 삼월 열사흘 정오에 울려퍼졌다.

마왕은 제갈휘를 지옥으로 초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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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종을 마친 마왕이 한 걸음 물러서 종을 바라보고,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용 대가리를 한 번 쓰다듬은 마왕은 똑바로 제갈휘에게 다가왔다. 세 명의 무인이 그의 뒤를 따르려 했지만, 마왕은 왼손을 뒤로 내밀어 그들의 접근을 막았다. 제갈휘 앞에 도착한 마왕이, 네모꼴 턱과 숱 많은 수염을 움직여, 마침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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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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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숭과 제갈휘의 첫만남 모티브는 AC/DC 형님들의 우주씹명곡 Hells Bells 가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음을 밝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