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한무 삼대 연중작으로 꼽히던 쟁선계. 여쟁선까지 다 읽었다.
면면부절 우주의 노잼 기운이 흐르는 탓에 다 읽기까지 한 달이 넘었다.
노잼인데 왜 읽냐? 라고 우문을 던지는 중생에게는 똑같은 우문을 던져
그 속에서 우문이 말하고자하는 현답을 눈치채길 바란다.
그렇게 욕 하면서 왜 군림천하 보냐?


재미 없는 것을 읽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재미 없는 것이 재미 없는 이유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단순 호불호? 아니지. 그건 일부분일 뿐이고 취향이다.
쟁선계가 가지는 작가의 취향과 독자의 호불호에 해당하는 것이 몇가지 있지.


일단은 문체인데 처음에는 문장을 꾸미는데에 상당히 노력을 많이 한 느낌이었다면
뒤로 갈수록 힘을 좀 빼고 좀 더 읽기 편하게 썼다. 그리고 후반에 무게 좀 줬다가
여쟁선에서는 개그 코드를....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무협 소설의 문체를 쟁선계 앞 부분처럼
그렇게 멋져 보이게 쓰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싶다. 무식한 탓에 별로 멋있는 줄도 모르겠고.

과하게 멋 부리지도 힘 주지도 않은 평이하고 담백한 문체가 무협에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필요에따라 이런저런 개성을 드러내면 좋고.
일개 독자로서 쟁선계의 문체에 대한 호불호에서 호는 없었던 것 같군.
일개 독자 주제에 계속해서 까보자.


자꾸-정말 자꾸- 이걸 왜 자꾸 쓰는 걸까? 가독성에 안좋다. 그 안에 문장이 길다면 더욱.
문장을 자연스럽게 나누는 것이 더 보기에 좋고 읽기에도 좋다.
중복된 내용이나 불필요한 부분을 대구로써 나열하는 방법도 자주 나오는데 역시 불호.
가끔 적절한 경우에 나와야 효과가 좋다. 다른 장면엔 다른 묘사로. 희소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챕터를 새로 시작할 때마다 거의 매번 풍경, 풍습, 역사 등을 읊어대지만 그게 전부 소설 진행의

필요 때문만은 아니다. 생략해도 무방하거나 군더더기로 붙어 있는 경우라면 소설의 재미를 위해서라도

쓰지 않는 게 좋은데 작가의 취향이 그러니 별 수 없다.


이미 등장한 인물의 생김새나 성격을 반복적으로 묘사하고 낯선 인물이 등장한 것처럼
모르쇠로 진행하는 방식은 구무협의 구태다. 누군지 작가나 독자나 뻔히 아는데
왜 그런 구태가 생기고 유행했을까? 아마도 분량 때우기에 편해서 아니었을까?
쟁선계는 그 구태를 내가 본 어떤 구무협보다도 더 많이, 더 자주, 더 길게 반복하고 있다.

분량은 구무협보다 훨씬 긴데 빈도수조차 그것보다 훨씬 많다.
그 남자는 컸다. 졸라 컸다. 다시 봐도 진짜 컸다. 저렇게 큰 사람은 처음 봤다.
컸다, 컸다, 컸다, 컸다........ 이런 구태의연한 묘사들도 분량을 상당히 차지한다.
그만큼 소설 내에서 많이 써먹었으니까.


쟁선계가 오래된 소설이라그런지 구무협의 향기-혹은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요소는
스토리다. 그 내용을 보면 서너권짜리 구무협의 흔한 스토리를 아주 길게 늘여쓴 모습이다.
마지막에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고 끝나지는 않지만 전대 기인들로부터 시작되는
배경과 음모, 평화와 분쟁, 그 가운데서 폭풍의 눈으로 떠오르는, 금수저이거나
초엘리트 코스를 밟거나 초천재이고 좋은 기연은 혼자 다 처먹고 결국 강호를 어지럽히는
신비 세력을 아작내고야마는, 훌륭하지만 뻔한 우리의 영웅 이야기.
쟁선계가 구무협의 그 기본 틀 안에서 좀 더 소설답게, 좀 더 성의를 담아 썼다는 사실은

칭찬 받기에 충분하다. 마지막에 초능력을 쓰는 게 내용상 좀 쌩뚱맞은 느낌이 있긴한데

옛날에도 초능력은 많이 있었으니까 뭐.... 그래도 그냥 주인공이라 무공이 졸라  세다

정도로 해도 괜찮았지 않을까 싶다.


바둑에 대해서는 전에 썼고, 언급할 게 더 있을텐데 기억은 안나니까 넘어간다.
이제 단순히 취향 문제로만 볼 수는 없고 소설의 재미라는 측면에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짚고 싶다. 까고 싶다라는 말이 정확하군.

내용이 뻔하든말든 취향에 맞든말든 소설이 재미있다면 문제가 괜찮다.
'재미'에는 정답이 없고 매우 주관적인 요소지만 일반화시킬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쟁선계가 재미 없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 이유는-이제는 본인을 포함해서-
그냥 호불호, 취향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이 무언가에 재미를 느끼려면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그 대상에 몰입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
몰입을 하는 결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반응이 동일시이다. 자기가 고급진 드라마 좀
봤다하는 사람은 도깨비란 드라마를 폄하하기도하던데 거기에 울고 불고 열광하는 이유는
몰입하고 동일시할 수 있는 강력한 요소가 있기때문이다. 나는 안봐서 모르지만.
공유가 너무 멋있어서라는 것도 얼마든지 이유가 될 수는 있는데 내가 지금 뭔 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그러니까 이 뻔한 소리가 당연히 소설에도 적용된다는 말이고 몰입을 방해하여 결국 노잼을
만드는 요소가 쟁선계에 있다는 소리다.


가장 큰 요소는 무덤이다. 사연 없는 무덤이 어디 있다더냐. 쟁선계는 그런 점에서 공동묘지다.
중무 한무를 통해 기괴하고 신비롭고 아름답고 끔찍하고 재밌고 웃기고 슬프고 한스럽고
더럽고 깨끗하고 놀랍고 무섭고 묘기백출하는 숱한 사연들을 접한-아씨발 시간이 아깝다 공부나 할걸-
내가 보기에는 쟁선계 속 그 많은 사연들은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킬 것이 아쉽게도 없었다.
주인공에 관련한 사연에 대해서는 약간의 호기심이 생기는 것이 당연한 거니까 논외로 하고.   
무덤을 많이 봤으며 감정이 메마르고 피폐한 아재 감성이 아니더라도 무덤이 너무 많다는 것은
재미면에서 좋지 않다. 웬만한 조연들뿐만 아니라 한번 스쳐가는 알바생들 사연까지 만들어주는건
정말이지 성의가 과하다.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충분히 작용하기때문에.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당연히 주인공이다. 그 다음으로 주인공과의 주요 인물 관계나
주된 사건을 통해 주인공과 강력하게 연결되는 조연들이 중요하다. 소설은 그래서 그 인물들 위주로,
다시 말해 결국은 주인공 위주로-다른 인물을 말하고 있는 중에도 불구하고 직간접적으로 주인공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기때문에- 흘러갈 때 독자는 가장 쉽고 빠르면서도 강하게 몰입하게 되고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기에 이른다. 꿀잼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쟁선계는 비중이 약한 인물들까지도 다 챙기다보니 게 중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연들이 많고 지나치게 부풀려지고 길어진 사연들도 있다. 가장 크고 쓸데 없는 무덤은
동쪽 바다 어느 섬에 만들어졌다. 개인적으로 별로 재미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은 섬 무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소설을 써도 좋을만큼 분량은 존나 길다.


작가가 소설과 인물들에 애정을 갖는걸 뭐라 하겠느냐만은 소설의 완성도나 재미를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안타깝게도 이 공동묘지 소설은 주인공을 다이어트시켜 버렸다.

선택과 집중 전략의 가장 큰 실패를 무려 주인공에게 부여했다. 독자가 누구를 통해 몰입하겠냐?
일단은 주인공이다. 그래도 주인공이다. 결국은 주인공이다. 군림천하가 아직도 제일 인기 있는

무협인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완성도가 높아서도 아니요 글빨이 좋아서도 아니다.
용노괴는 선택 했고 집중 했다. 바로 주인공 진산월. 그와 그 떨거...초엘리트 사기캐 집단을
선택해 1부 전체를 다 바치다시피하여 지나치게 물고 늘어지면서 독자들이 그들에게 몰입하고
친숙함을 느끼도록 강요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사족이 많노라고 계속 지적했던 바였다.
비록 인터넷 연재 전에는 무시 받는 소수 의견에 불과했지만.


군림이나 쟁선계나 사족이 줄줄 달려있다는 사실은 똑같지만 후자의 그것은 온 중원 천하에
만천화우로 흩뿌려 약빨마저 시원찮게 했다면, 전자의 그것은 종남파에 집중함으로써
누구나 군림 천하의 하이라이트로 뽑는 진굇수의 등장과 이후 몇 번의 활약에 독자들이 강하게
몰입하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 결과 개쪽이 난 지금까지도 군림은 잘 팔리고 여전히 빨리고 있다.
쟁선계보다 훨씬 더. 그래도 쟁선계가 더 좋은 소설이긴 하다.
둘 다 재미 없고 쟁선계가 좀 더 재미 없다 느끼지만.


선택과 집중의 실패가 부른 보다 구체적인 참상을 주인공 석대원을 통해 짚어-까-본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까야할까. 석대원에게 아주 비극적인 과거가 있음을 계속 암시를 하지만
간만 보고 다른 무덤들을 만드는 통에 주인공에게 익숙해질 시간과 주인공을 향한 몰입을 방해하고
주인공이 느끼고 느껴야 할 감정선, 고뇌, 심경 변화 등을 충분히 그리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충분치 않다. 끝까지 피상적으로 건드리기만 할 뿐. 작가는 주인공 자체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주인공의 무덤, 그리고 다른 무덤들 즉 숱한 사연들을 만들어내는 데에 더 집중한다. 내면이 아닌
외면을 보는 것이다. 주인공과 내면의 아이에 대한 묘사들마저 사건을 진행시키기 위한 수단에
가깝지 사건을 만들고 진행하고 변화시키는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석대원이 말하듯
선택을 한 적이 없고 그저 끌려다니기만 한다. 그 와중에 숱한 무덤들이 병렬 연결만 하고 있고.
도움이 되는 무덤이 있었나?


자, 그런 상태-주인공의 내면에 대한 묘사와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곡리 혈사 장면으로 가보자.
그 곳에서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제갈뭐 였냐 벌써 까먹었네 ㄷㄷㄷ 붕어 대갈? 아하 고검 제갈휘!
그래 그 놈. 역시 사연만 있지 내면은 없는 놈. 어차피 다 그런 놈 밖에 없는 소설인 것을.
고검이 배신자가 되면서까지 무양문에 들어가 강호의 평화를 위해 힘썼다고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
구체적인 사례와 그를 통한 고검의 고뇌와 희생은 마땅히 그려지지 않았다. 아주 추상적이기만 한
'희생 했다'라는 문구와 '서문숭의 패기를 열심히 억제했겠지'하는 아주 추상적이기만 한 추측을
독자 혼자 했을 뿐이다. 고검의 그런 추상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백도에서는 여전히 고검을
욕하기만하는 추상적인 상황의 이유를 적절히 제시하지 못한 채 곡리 혈사가 벌어진다.


추상적인 건 그 뿐이 아니다. 백도의 명분, 고검의 명분, 석대원의 명분. 명분이란 단어만 나왔지
실제 그들의 명분에 대한 충분한 분량의 납득 가능한 묘사 내지 설명이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곡리 혈사 장면 자체가 몰입이 어렵고 유치원생 인형놀이 같은 작위적이며 어색한 분위기만 느껴진다.
정의를 세운다는 백도의 명분, 고독하게 평화를 지킨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더 이상은 못참겠다는
고검의 분노, 나의 명분은 무었이었나 고민하다 뭔가 깨달은 척-하지만 그 당시에도 그 이후에도
실체는 없는 깨닮음- 폭발하는 주인공 석대원.


세 가지 명분의 충돌과 분노와 비극. 크하! 작가는 여기서 멋짐을 폭발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폭발을 원했다면 충분한 사전 공작과 폭발 이후 세 집단의 유의미한 변화,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또 다른 사건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했지만 그저 무덤이 늘어날 뿐이었다.
작가가 꼭 보여주고 싶었던 장면이라고 했었던 것 같지만 미안하게도 폼 잡는 장면에 불과하다.
그건 마치 담배 피는 장면과 같다. 영화가 진행 되다가 아무런 개연성도 없이 뜬금 없는 타이밍에
주인공은 담배-당연히 ppl-를 꼬나물고 연기를 뿜어낸다. 멋짐이 폭발한다. 오빠 사랑해요.
형 멋있어요. 저도 피우고 싶어요. 방황하고 반항하는 청춘-애들 입장에선 어른- 사내처럼 그윽한
눈빛으로 하늘을 보고 담배는 45도 우하귀를 가리키며 몽골몽골한 연기를 뿜는다.
하지만 아재들에겐 끊고 싶어도 못 끊는 원수 같은 존재가 담배다. 안피는 놈이 승자.
비유가 이상한지는 몰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쟁선계가 그렇다는 말이다. 


이미 쓸데 없이 길어지긴 했지만 주인공 남녀도 얘길 안할 수가 없네. 남녀는 미리 준비된
'비극을 위한 비극'을 향해 나아간다. 물론 여기에도 충분한 분량-러브 스토리-을 확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수로 만나서, 섬에 들어가고 나오는 그 몇일 밤낮 뜨겁게 사랑하고-여기서도
무덤이 하나 생기는데 필요하긴 하다. 다만 급작스런 공감대 형성을 위한 작위적인 냄새가 짙다-
헤어지고 한참 만에 다시 만나서 준비된, 작위적인 비극을 맞이한다. 비극이 더 비극적이게
삼각 관계와 또 하나의 무덤은 양념이다. 비극이 충분히 비극이 될 수 있게해 줄 몰입이
부족하고 분량마저 짧다. 양과와 소용녀의 비극을 생각해봐라. 충분한 분량은 필수적이다.
역시 선택과 집중의 실패다.


몰입을 위한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 예로 작가는 선택했고 집중했다. 무양문에.
셋째 제자라고 했나? 걔는 무양문이 가장 정의로운 집단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말로만.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한 적도 없고 무양문의 행보 중에서 정의롭다 말할만한 장면들이
내 기억엔 없는 것 같소. 대신 작가는 독자가 무양문에 몰입하고 친근감을 느끼도록 많은
무덤을 만들고 에피소드를 계속-쓸데 없이 계속- 만들어냈다. 문주의 소탈함. 마석산의 무대뽀.
군사와 별수재.... 이게 무양문의 정의를 보여주진 않는다. 그들의 역할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사건을 진행하는 필수적인 요소도 물론 아니다. 분량은 많다. 엉뚱한 선택과 집중, 곧 사족이다.


아직도 깔 거는 있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느꼈던 까고 싶다는 욕망을 해소하는데는 부족하지 않는 것 같다.
너무 안좋은 소리만해서 작가와 쟁선계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길게 까거나 언급한 소설들이 몇 있는데 그 중에 제일 길게 깐 거 같다.
미안합니다, 작가님. 이 글을 보거나 말거나 어쨌든. 그냥 어디서 똥개가 짖는구나 하면 된다.
깔만한 가치도 없는 소설은 안깐다.

그래도 마지막 두 권 정도는 좀 볼만했다. 살 찐 곳은 빼고 마른 곳에 덧붙이고 포커스를 맞춰서
10권 정도로 썼다면 훨씬 재밌고 좋은 소설이 됐을텐데 아쉬운 마음에 하는 소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