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수명은 몇인가? 길어봐야 백, 보통은 육칠십에서 그 짦은 생을 마감한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라고 다르지 않다.

오히려 소설의 경우, 사건의 진행이나 전개에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나이가 제약이나 키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예컨대 동천의 경우, 주인공 '동천'의 어린 나이 자체가 그의 무림초출을 늦춘다.

반대의 경우도 많다. 힘과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적당한 나이가 필요하고, 이 적당한 나이는 고작해야 10년 내외면 지나간다.

무협소설을 많이 본 어떤 사람은 이리 말할 지도 모른다. "묵향은 나이 많은데도 잘만 다니던데요?"

이에 대해서는 등장인물의 수명이 아닌, 배경의 수명을 따져야 한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하고 백 년이면 왕조가 바뀐다.

묵향의 경우 묵향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무협의 탈을 쓴 한, 그가 이천 살이 될 때까지 사건이 전개될 리는 없다. 배경의 수명이 명확한 대표적인 예이다.

요컨대, 등장인물도 배경도 그 수명이 있기에 소설이 다룰 수 있는 '시간대'는 그리 많지 않다는 거다.

많아봐야 백 년, 그마저도 지루한 수련을 생략하고 쓰잘데기 없는 파트를 버리면 별로 남지 않는다. 이것이 기존의 소설들이 지니던 수명의 한계다.

결국 이러한 소설 시간대의 유한함이 분량의 압박에 휩쌓이면, 우리가 대충 눈대중으로 보고 넘기는, 심히 지루한 부분을 만들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나 전생검신을 필두로 한 "무한회귀" 소설은 위의 수명에서 거의 완전히 벗어난다.

등장인물의 수명? 무한한 회귀이니 수명은 무한하다. 소설의 삼 요소가 가지는 수명 중 하나는 벗어던진 셈이다.

배경의 수명? 이는 사건의 수명과도 연관되는데 일단 '모든 사건의 파헤쳐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 수명은 무한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등장인물의 생애가 누적될 수록 사건 역시 필연적으로 소모된다는 걸 생각하자면 분명 그 수명이 존재하긴 한다. 다만 이전과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소설 시간대 상의 수명을 거의 벗어던진 전생검신 류의 소설들은 분량의 압박 속에서도 과감한 전개가 가능하다.

보여줄 건 다 보여줬다? 죽으면 된다. 처음부터 시작하면 되는 거다. 지루한 수련파트를 넣을 이유가 없다. 알맹이만 투자하고 단물 다 빠지면 회귀하면 되니까.

필자는 전생검신이 가진 가장 큰 무기는 이러한 편의주의적인 전개가 거의 무한히, 그리고 재밌게 가능하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역할에는 사건이 거의 무한하다 할 수 있는 크툴루 신화의 차용이 크게 한 몫 했으리라.

뿐만 아니라 여러 잡다한 신화를 섞다보니 사건이 넘치면 넘치지 부족할리가 없다. 부러운 일이다.

구로수번의 전생검신은 필자가 아는 한 가장 그 수명이 긴 소설이다. 작가가 개빡대가리가 아닌 이상 이런 소재로 재미없게 쓰는 게 이상한 일이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