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는 이미 정리된 후였다. 싸늘하게 식어있는 네 구의 시신을 뒤로 하고 동방욱의 토로에 진산월은 담담히 대답했다.


"역시 그랬구려."


동방욱은 진산월의 침착한 태도에 다소 놀란듯 잠깐 멈칫했다. 하나 물릴 수 없는 흐름이었다. 동방욱의 고백은 이어졌다.


"나는 개인적으로 천무보록의 신공편을 복원한 후 신목령 오천왕의 신분으로 비밀리에 천무자의 무공의 기원을 파헤쳤소. 이 정도 초절정 수공(手功)의 원류가 도무지 불투명한 것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러다 우연히 맥이 닿아 모든 비밀을 알아냈소."


"그게 무엇이오?"


"비선 조심향과 옥시음을 아시오?"


뜻밖에도 신목령 오천왕의 무공기원을 토로하는 자리에서 종남오선의 일인인 조심향과 그 전대의 일대종사인 옥시음의 이름이 같이 흘러나왔다. 당금 무림의 누가 과연 이 이름들을 예상했을까? 같이 이야기를 듣던 한시몽은 대숙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조차 하지 못한 표정이었고, 진산월은 어느 정도 예측은 하고 있었다는 표정이었으나 막상 선대종사들의 존함을 직접 듣자 일순간 눈빛이 격동하듯 고적해졌다.


하나 격동의 순간은 그야말로 찰나였고 진산월은 다시금 침착한 눈빛으로 돌아왔다.


"물론이오. 본 파의 사조들을 어찌 본인이 모르겠소?"


'신검무적의 심계가 정말 무섭구나……. 저 나이에 이런 심계라니 대체 어떤 수라장을 거쳐왔단 말인가?'


동방욱은 진산월의 심계에 감탄하며 다시금 설명을 이었다.


동방욱의 설명은 이러했다. 비선 조심향의 독보적인 절학인 염화옥수(捻花玉手)는 당시 무림 최고의 수법이자 태인장에 맞먹는 종남의 최절정의 절학으로 명성이 높았다. 이는 조심향의 전대 고수인 당시 최고여고수 옥시음의 화영옥수공(花影玉手功)을 변화시켜 만든 수법이었는데, 문제는 염화옥수는 칠음진기의 보유자가 아니면 제대로 된 위력을 낼 수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태음신맥을 가진 여성만이 제대로 쓸 수 있다면 문파의 무공으로는 진전을 잇기가 무척 힘드니 단점 또한 명백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 종남오선의 실종이라는 일대의 사건이 발생하고, 그리고 종남파의 몰락으로 염화옥수가 실전 된 후 화영옥수공의 진전 또한 강호로 흘러갔고 천무자는 젊은 날 우연히 화영옥수공의 비급을 획득한 것이었다.

이 비급이 당시에도 명성이 자자한, 실전된 종남의 절정 수공이라는 것을 깨달은 천무자는 화영옥수공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염화옥수의 존재도 깨달은 천무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화영옥수공을 염화옥수에 비견되는 초절정의 수법으로 개조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이는 염화옥수가 태음신맥을 가진 여성만이 쓸 수 있다는 단점을 타파하기 위함이며, 동시에 화영옥수공의 무궁한 변화에 염화옥수와 같은 절륜한 위력을 더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허나 천무자의 대에 그 비원은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했고, 죽기 전에 자신의 연구의 결과를 천무보록으로 남긴 것이다.


동방욱의 스승 뻘인 번천객 탁무단은 천무자의 제자였고, 사제들과 함께 천무보록의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두 부분을 신공편과 절학편으로 나누어 무공의 완성에 힘을 쏟는 도중 사제들의 배신으로 치열한 쟁투가 있었고 그 와중에 비급서는 반으로 쪼개지며 탁무단도 큰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 절학편을 익힌 탁무단이 죽기 전에 동방욱을 가르쳤으니 그렇게 옥시음의 절학은 고쳐진 형태로 후대로 동방욱에게까지 전달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설명은 더 놀라운 것이었다.


"후우! 젊은 날 손상된 심맥을 령주에게 치료 받는 도중에 현음진기를 신체에 받아들이고 나서는 확신이 더 강해졌소. 부상을 치료한 뒤, 내공심법으로 진기를 일주천한 뒤 천무절학을 펼치니 한가닥 음기가 마치 빈 공간을 채우듯 천무절학의 수법에 깊이를 더하더구려. 진장문인이라면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실 것이오."


마도제일인 신목령주의 현음진기는 바로 종남의 실전된 내공심법인 칠음진기의 변형이 아니던가? 오랜 세월이 지나 그 무공에 변화가 있었을지언정 무공의 원류는 속일 수 없는 것이었다. 다시금 이어지는 동방욱의 설명은 더욱 더 충격적인 것이었다.


"나는 천무자의 절학을 수탐하며 동시에 몽아에게 천봉궁의 조사를 명령했소. 오욕백의 시신에 남은 흔적을 독자적으로 추적한 것이 유효했지. 다른 이들은 알아보지 못해도 나는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소. 짐작대로 천봉궁의 비전인 구련조화인(九蓮造化印)은 염화옥수를 기반으로 변형한 무공이오."


진산월은 동방욱의 말을 듣고 마지막 단서를 얻은 것을 깨달았다. 막강한 연꽃 모양의 장인을 남기는 구련조화인의 전설이 진산월의 귀에 들어간 뒤로 내내 염화옥수와의 관계를 의심하던 차였다. 그 정도의 상승무공이 수법 또한 비슷한 것은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는데, 이런 장소에서 우연히 확증을 얻은 것은 그야말로 선대의 안배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동방욱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결과적으로 신목령과 천봉궁의 수공은 모두 종남에서 기원한 것이 되겠구려. 것이 천봉궁과 신목령의 숨겨진 진실이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중인들은 모두 침묵에 들었다. 진산월은 눈을 감은 채로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고. 동방욱은 평소처럼 고고한 자세였으나, 그의 친인이라면 무언가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이 있는 것을 알아챌 수 있는 상태였다. 실제로도 한시몽은 계속 불안한 눈치로 동방욱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동방욱은 어색한 침묵을 깨려는 듯이 애도를 건넸다.


"그나저나 저 지독한 독공에 제자를 잃어서 애석하시겠소이다. 진장문인."


서장제일독 고준의 팔계지옥 중 최절초인 마하발특마지옥(摩訶鉢特摩地獄)은 정말로 무서운 독공이었다. 그것은 독성으로는 이미 죽은 오천왕 독중지존 갈황의 독공에 전혀 모자람이 없으며 범위는 훨씬 넓은 초절정의 독공으로 생사의 위기에 더욱 독기가 강해지며 주변으로 빠르게 퍼지는 무서운 수법이었다. 동방욱의 천당선엽수의 수강이 고준의 머리를 부수는 순간 마하발특마지옥의 독기가 장내를 뒤덮었고, 진산월과 동방욱, 그리고 한시몽은 모두 신법이 절정에 올라있어 독기에 직격하기 전에 몸을 피할 수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신법이 떨어지는 전흠은 그만 독공에 직격하여 손 쓸 틈도 없이 전신의 피부가 터져서 즉사하고 만 것이었다.


그러나 진산월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하며 동방욱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상관없소. 제자 하나는 피안으로 떠나보냈지만, 이제 새로운 제자를 맞이하게 될테니 말이오."


진산월의 안광이 자신을 비추는 바로 그 순간, 동방욱은 젊을 때의 사부의 복수행을 대신하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어차피 이렇게 될 일이었다.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에 숨을 거두던 사부의 원수들. 그들은 옥시음과 조심향, 그리고 천무자와 탁무단, 사제들의 배신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과정의 일부였던 것이다. 그리고 동방욱은 자신 또한 그 과정의 일부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이렇게 될 일이었다.'


동방욱은 진산월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한시몽이 놀라며 동방욱의 팔을 잡았지만 동방욱은 요지부동이었다.


"종남파 십일대 제자 옥시음의 후인인 동방욱이 장문인을 뵙습니다. 선대에서 졸자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죄업을 달게 받겠으니 장문인께서는 부디 하달해 주시옵소서."


진산월은 다시금 눈을 감았다. 경요궁 때와 같이 종남의 무공이 다시 돌아오는 것은 기뻐할 일이나, 천무보록은 그 계보가 너무나 꼬여버렸고 많은 피를 불러일으켰다. 더군다나 명문정파인 종남에 사파의 종자를 받아들여도 될 것인가? 진산월 본인은 상관이 없다한들 강호의 평판은 어찌 될 것인가?


진산월은 결단을 내렸다.


"종남파 십일대 제자 옥시음의 후인인 동방욱에게 종남파의 장문인이 명한다. 동방욱을 종남파의 이십이대 제자 항렬로 인정한다. 동중산을 사형으로 모시고 종남의 법도를 깨우치도록 하라. 그리고 동방촌은 종남파의 산하로 임명하여 보호하도록 한다."


이제 선대로부터 연원한 모든 꼬인 실타래가 풀렸다. 동방욱은 비록 숙인 자세였으나 후련한 기분을 느끼면서 외쳤다.


"존명!"


지켜보던 한시몽은 그만 정신을 잃고 기절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