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해옥궁연(승천문)에 대한 평가는 별개로 여승남은 내 무협 인생에서 가장 인상 깊은 여자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에게 헌신하는 건 진청운의 혈방에서 혈수서생 백운향이 이미 보여준 바가 있지만, 여승남은 그보다 몇 발 더 나갔다. 여승남은 골짜기 속 한떨기 꽃 곡지화처럼 사랑하는 남자 금세유에게 상냥하게 대하지 못한다. 그에 대한 애정은 언제나 거칠고 공격적으로 드러내고 금세유는 그런 여승남을 꺼려한다. 완전히 쳐내지 못하는 건 마음의 빚 때문이다. 여승남은 금세유가 자신을 돌아보게 하기위해 곡지화에게 독을 쓴다.

여승남은 남자에게만 매달리는 여자가 아니다. 개인적인 원한은 반드시 피로 돌려주며, 격세 사부인 교북명의 숙원도 충실히 실행한다. 장단풍과 곽천도에게 분패한 교북명의 치욕을 씻기 위해 그 둘의 전인인 천하제일인 당효란에게 도전한다. 실제 여승남과 당효란의 격차는 두 수 이상이었고 그 간극을 메꾸기 위해 여승남은 생명을 깎아 공력을 배증하는 천마해체대법을 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효란을 넘어서지 못하자 다시 한 번 혀 끝에 피를 뿜어내 천마해체대법을 사용해 승리를 거둔다.

이때 금세유가 찾아오고, 여승남은 금세유에게 자신과 결혼식을 치를 것을 조건으로 곡지화의 해독약을 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첫날밤, 해약과 함께 교북명의 비급을 금세유에게 건네주며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고 하고 천마해체대법의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한다.

미키 루크가 주연을 맡았던 더 레슬러라는 영화가 있다. 거기서 미키 루크는 누가 봐도 실패한 인생에서 정답인 듯한 길로 간다. 사랑하는 여인과 썸도 타고 딸과 화해하는. 그러나 끝내 그 길로 가지 않고, 자신을 사랑한다며 레슬러를 그만두라는 여인의 말을 뒤로 하고 링 위에서 죽음을 맞이 한다. 왜냐하면, 그게 그의 삶이었으니까. 아무리 망신창이의 삶이었다고 해도 미키 루크는 자신의, 레슬러로서의 삶을 부정할 수 없었던 거다.

여승남 역시 곡지화 같은 정답의 길을 걷지 않았다. 그건 여승남의 삶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자기 방식대로 금세유에게 애정을 쏟아붓고 떠나갔다. 겉보기엔 비극이나 여승남은 짧은 삶 동안 자신의 모든 걸 태워 자신의 소망, 자신의 사랑을 완성하였다.

남겨진 금세유는 그제서야 곡지화에 대한 사랑이 막연한 동경이며, 자신이 진정 사랑한 건 여승남임을 깨달았지만 추억으로 남길 수 밖에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