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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탐라에 무협 플로우가 또 있길래... 기억을 더듬어 보는 라떼 이야기. 신무협의 산실은 뫼 출판사의 작가 단체 집필실이었다고 보고, 용대운 - 좌백을 그 기점으로 보는 편. 정확히 말하자면 용대운은 이전 구무협의 총화이자 다음 웨이브의 물꼬를 튼 존재와 같다. 당시 뫼
— 진산 (@Ladyjinsan) January 24, 2023
진산
@Ladyjinsan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탐라에 무협 플로우가 또 있길래... 기억을 더듬어 보는 라떼 이야기. 신무협의 산실은 뫼 출판사의 작가 단체 집필실이었다고 보고, 용대운 - 좌백을 그 기점으로 보는 편. 정확히 말하자면 용대운은 이전 구무협의 총화이자 다음 웨이브의 물꼬를 튼 존재와 같다.
당시 뫼 집필실에 들어간 초반에 작가들이 레퍼런스로 삼던 자료집이 있는데, 대충 꽤 후대까지도 그 자료집을 기반으로 새로 무협집필하는 작가들이 썼던 것 같다. 그 뭐 구파일방 설정이라든가 각종 초식명이라든가 나온.. 일종의 80년대 무협 족보집. 그걸 만든 사람이 용대운님이었다. 많은 습작생들이 그 족보집을 기반으로 세계관의 기둥을 만들고, 변주를 시도했다.
수동타자기로 친 부분과 손글씨가 뒤섞인, 얇은 자료집 두권 분량의 그 제목도 없는 족보집이 말하자면 한국 구무협의 '집대성'이었던 거다. 대본소 무협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덕질하듯 기록해나간. 이 '선대의 유산'에서 벗어난 새로운 방식을 집필실에 가지고 들어온 건 좌백인데, 그의 데뷔작 대도오는 생전 무협에 등장이나 했나 싶은 감서성 무림을 배경으로 삼았다. 80년대 무협의 족보가 아니라 진순신의 중국사가 집필실의 책상에 꽂히고 집필 재료로 본격 활용되고.
예를 들어 기존 무협의 등장인물과 다른 이름들을 만들기 위해 신작 구상할때 벽돌 사이즈 중국사 책을 아무데나 열어 거기 몇번째로 등장하는 이름을 뽑는다거나 하는 네이밍 방식도 유행(?) 했다. 작가별로, 작품별로 중국의 요리역사를 , 중국 고문의 역사, 괴력난신의 역사, 폭력조직의 역사 등등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기존 무협의 서사에서 네이밍 조연이었던 구파일방에 대한 집착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소림'은 언제나 우리 머리속의 '이상적 소림'이었지만 실제 소림의 경내 구조 자료를 보고 거기에 소설적 상상력을 덧붙여가며 좀 더 ... 뭐 요즘 표현으로 치면 해상도 높은 '소림'을 구현하려고 하기도 했다.
좌백이 신무협의 기수인건 저러한 방면의 모든 '새로운 시도'를 한 경향에 머무르지 않고 작품마다 다 다르게 해왔고, 그게 다른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대도오가 짚은 '변방' (감서성)과 '하급무사의 문화'가 지금은 고인이 된 장경의 무협에서 더욱 집중된 변방 무림의 서사로 뻗어나가고 확장된 것처럼. 생사박은 대전 격투 게임에서 영향을 받아 소위 '실전무협'이라는 것에 영감을 주었고, 야광충은 흡혈귀라는 판타지스러운 설정과 그 실전무협의 세계를 연결해버렸다. 그것이 석송이나 정진인 같은 작가에게, 혹은 내가 사천당문이나 대사형을 쓰는데 영향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이건 아류나 표절과는 다른 이야긴데, 당시 집필실은 거의 공동 생활 장소였으며 식사하거나 휴식할때 작가들은 자신의 머리속에 떠오른 다음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서로 평가도 해줬다.
우리는 '무협'이라는 것에 대한 덕질모임과도 같았던 거다. 그런 치열함이 없었다면, 사실 무협을 많이 읽기만 했을 뿐 소설쓰기에
대한 교육을 특별히 받지 않았던 20대 작가들이 몇개월만에 장편 소설을 써내기는 힘들었을 거다. 혼자만 상상하던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의 집필 노하우와 그가 보여주는 세계에 영향 받아 발전시키고, 의견을 내고, 비판을 받고... 어떨 때는 김문희식 딜도 했다. '그 아이디어 안쓸거면 팔아랑'
그런 열기의 그룹 안에서 좌백의 신작들은 항상 영감을 줬다. 그래서 처음엔 그저 무협을 쓰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어떤 전문교육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그 안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각자의 서가에 다른 '자료'들이 꽂히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마교를 팠고, 누군가는 자객을, 도사를, 기타등등. 뭐 그걸 일종의 세밀화, 전문화라고 본다면... 그게 꼭 정답이었는진 모르겠다. 다만 그러한 '열기'의 의미는 소중했다. 우리는 '각자' 무협의 다른 부분을 조명해볼 수 있고, 그 안에서 각자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고, 그렇게 만드는 이야기가 더 가치 있다는 일종의 신념 같은?
그 신념은 언제 흩어지고 사라졌을까. 이것도 일종의 자연스러운 흐름인데, 그 '전문화' '세밀화' 하려던 노력. 일종의 수공예 장인 정신.. 같은 것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좋은 특성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일 거다.
냉혹하게 말하면 그 '전문화' '세밀화'라는 것 또한 '양산체제'가 될수있었다.
실제로 저러한 수공예(?)품과 유사한, 그러나 훨씬 빠른 속도로 나오는 창작물들이 시장 점유에는 더 유리했다. 압도적으로 퀄리티 차이가 나면 모를까. (어느 바닥이나 최상위권은 그렇게 살아남는다) 독자의 눈에도 차별성이 확 드러날 정도가 아니면 저런 열기 따위 그냥 시장에서는 그냥 묻힌다.
양산품이 아니라 수공품의 시스템을 만들고 그것을 업으로 삼았으나, 그 수공품의 시스템 안에서 '양산'의 공식을 찾아낸 이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시장에선 그것이 더 유리했다. 어떤 이는 그렇게 무협을 접었고, 어떤 이는 양산의 공식을 따라갔고, 어떤 이는 나름대로의 살길을 찾았다.
용대운을 나는 약간 장난섞어 최후의 유대인, 최초의 그리스도교인이라는 식으로 최후의 구무협인, 최초의 신무협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양반의 최근작(?) 군림천하는 여전히도 그 자신과 같아서, 구무협과 뫼 집필실 그룹의 이상을, 참으로 목에 가시 걸리는 느낌 없이 여전히 그려낸다.
20 30대를 불태웠던 좌백은 지금은 평범하게 집에서 밥하는 아저씨다. 요즘 화제인 웹소무협 화산이나 광마를 아직 읽지는 않았는데 (장편은 손에 잡으려면 기력이 필요하다...) 오가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시절 우리가 고민한 것들이 여전히 질문의 형태로 무협을 쓰는 사람들에게 남아있다는 막연한 공감을 느낀다. 그렇게 이어지고, 세대마다 다른 답을 찾아내고. 분명한 건 아무리 이 판이 아싸리처럼 보인다고 해도 항상 어떤 부분은 더 나아지고 있다는 거다. 웹소시장의 구조가 사람을 너무 갉아먹는다는 우려가 있지만, 그것 또한 남겨진 문제겠지. (라떼 끝)
라떼 수정사항 추가: 대도오의 배경은 감서성이 아니라 감숙성. 뇌에서 감만 기억하고 섬서성하고 짬뽕이 되었나봅니다 하하하 (머쓱하지만 이것이 바로 라떼의 진수가 아니겠는가... 기억력 노화의 증거)
그럼 세계관 복붙의 원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