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같은 설정은
어느 시점부터 틀이 잡힌것?
의천도룡기에선 구파일방 나오는데
사조영웅전에선 전진교나 철장방은 나와도
아직 화산이니 종남, 곤륜같은건 안나오네
모용이나 제갈같은 성씨 가진 사람도 안나오고
그 중간쯤 되는 신조협려부터 나오나?
어느 시점부터 틀이 잡힌것?
의천도룡기에선 구파일방 나오는데
사조영웅전에선 전진교나 철장방은 나와도
아직 화산이니 종남, 곤륜같은건 안나오네
모용이나 제갈같은 성씨 가진 사람도 안나오고
그 중간쯤 되는 신조협려부터 나오나?
김용이 작품을 쓰던 시절에는 아직 무협소설에서 구파일방 같은 문파가 정형적인 설정이 아니었음... 여러 무협작가들이 하나씩 설정을 새롭게 만들고, 그걸 차용하고, 그렇게 틀이 만들어지게 된 거라고 알고 있음... 그래서 김용의 무협 초기에 나오는 문파와 후기에 나오는 문파가 서로 다름... [의천도룡기]에 나오는 문파도 오대문파라고 불렸음... [사조영웅전]에는 개방의 방주 홍칠공이 나오고, 정의파와 오의파의 갈등 같은 게 나오지만, 스토리 자체가 개방 위주가 아니라서 잠깐 나왔다가 사라짐. [신조협려]에서 또 한 번 등장하지만, [의천도룡기]에서는 또 존재감이 사라짐.
아 사조삼부극에서는 언급만 살짝 하는정도지 틀은 아직 안잡혀있었고, 후대에서 그거 참고하면서 자리잡은 설정인거네?
작가마다 작품마다 무림의 구성원 설정이 다름... 서로 차용하다 보니, 있다가 없다가 그런 식이 됨.. 한국 무협소설은 이 중국무협소설(정확히는 대만과 홍콩의 무협소설)의 설정을 또 차용함. 이렇게 작가들이 서로 차용하다가 국내에서는 어느새 구파일방이 정형적인 설정이 되어 버렸음...무림을 좌우하는 10개의 문파 대명사로...
구파일방 개념 정립은 단연 <와룡생>의 설정.. 와룡생의 가장 큰 업적은 북파 4개 정도의 다양한 형태의 무협지 전통이 있었는데 이걸 한데 모와서 60년대 김용/고룡식 현대 무협틀로 종합한 형태..선협의 기점이라는 환주루주 기협도.. 진법이니 부적이니 하는 형태로 통합된 형태..
구파일방의 개념이 첫 등장한 작품은 윗 갤럼 말대로 대만작가 와룡생의 1959년 작 '비연경룡'임. 그런데 와룡생 본인도 재사용한 적이 없는데, 김용 작에 구파일방이 나올 리가... 대신 육대문파, 오악검파 등의 비슷한 개념은 나옴. 사마령 작품엔 팔대문파란 게 있었던 것 같고.
국내에선 누가 먼저 썼는지 모르겠지만 - 와룡생 걸 먼저 베꼈는지 - 국내 구무협 4대 작가라고 하는 금강, 사마달, 야설록, 서효원 등의 1980년 초반 작에 이미 구파일방이 나왔으니 일찌감치 쓰긴 했을 것임. 대본소 만화가 이재학 작품에서도 진작에 등장했기도 하고. 다만, 현재 웹소설에서 쓰는 구파일방, 오대세가의 표준 설정을 만든 건 작고하신 백상 선생임. 백상 선생도 김용, 와룡생, 동방옥 등의 설정을 차용하긴 했는데, 종남의 천하삼십육검, 남궁세가의 창천무애검법, 화산의 매화검법(이건 용대운이 먼저 쓴 것 같긴 함) 등 각 문파의 시그니쳐 무공은 백상 선생의 구파일방 시리즈에서 제일 먼저 나왔음.
와룡생이 연배가, 김용선생 보다 조금 앞서요.. 김용 본인이 인터뷰서 인정했듯, 유명한 <신조협려> 소용녀 고묘파 라는 게. 그유명한 와룡생 군협지에 나오는 고묘 에서 서원평이 자의소녀 만나는 설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할 정도 로 유명함. 5대 세가 까지는 모르겠지만, 9파 1방// 8대문파는 와룡생의 최초로 종합한 설정으로 젤 유명함.. 바이두 백과에 나오는 얘기
《군협지》(群俠誌)는 중국무협소설가 와룡생이 쓴 무협소설이다. 원제는 옥차맹(玉釵盟)이다. 옥차맹은 와룡생이 1960년에 다섯번 째로 발표한 소설로서 대만의 일간지 중앙일보(中央日報)에 연재되었는데 옥차맹이 연재되는 동안 큰 인기를 누려 옥차맹증후군(玉釵盟症候群)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59년에 발표한 비연경룡의 성공과 이어 옥차맹의 성공은 와룡생을 중국무림의 태두(泰斗)로 자리매김하게 하였다. 옥차맹은 1966년 한국내에서 군협지라는 제목으로 처음 번역 출판된 후 2008년 현재까지 최소한 18번 이상 재간이 이루어져 중국무협지 중에서 가장 많이 출판된 유명한 무협소설이다. 군협지라는 이름 외에도 비호지(飛虎誌), 군웅지(群雄誌) 등으로 출간되었다. <위키>
출처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작품연도를 다시 확인해보시길 바람. 신조협려의 연재가 옥차맹보다 1년 더 빠름. 또 김용이 와룡생보다 6살 연상이고 작품 활동도 2년 더 먼저 했음.
그리고 구파일방은 와룡생이 제일 먼저 쓴 거 맞고 내가 쓴 댓글에도 언급했음. 다만, 비연경룡 이후 와룡생이 구파일방이란 틀을 활용하지 않았다는 것임.
바이두 사조 3부곡 연재 시기 是作家金庸创作的长篇武侠小说,“射雕三部曲”系列的第二部。在1959—1961年连载于香港《明报》 바이두
第一部曲——《射雕英雄传》编辑 播报 著作简介 《射雕英雄传》又名《大漠英雄传》,是金庸的第三部武侠小说,“射雕三部曲”之第一部曲。《射雕英雄传》是金庸中期武侠小说创作的代表作品,也是金庸拥有读者最多的作品,它的发表确立了金庸“武林至尊”的地位。这部小说历史背景突出,场景纷繁,气势宏伟,具有鲜明的“英雄史诗”风格;在人物创造与情节安排上,它打破了传统武侠小说一味传奇,将人物作为情节附庸的模式,坚持以创造个性化的人物形象为中心,坚持人物统帅故事,按照人物性格的发展需要及其内在可能性、必然性来设置情节,从而使这部小说达到了事虽奇人却真的妙境。本书最初连载于1957年——1959年的《香港商报》。
《神雕侠侣》著于1959年,是金庸“射雕三部曲”之第二部曲
《玉钗盟》,是卧龙生创作的武侠小说,共22章,约110万言。1960年10月1日在《中央日报》上开始连载,星马海外也同时连载,1963年7月3日结束。连载同时,《中央日报》还请李灵伽(另人)绘制插图。而《玉钗盟》亦是在众多卧龙生的作品中为数不多,整部由卧龙生独自完成的作品。
신조협려는 갤럼이 옮겨온 글을 봐도 59~61년 연재고, 옥차맹은 60~63년 연재임. 신조협려가 옥차맹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엔 매우 어려움.
바이두에 나오는 <와룡생>의 인물 공적.
第三,他的“武林九大门派”的设定对金庸等作家影响深远;“争霸江湖”及武林排名的主题,虽然稍晚于金庸的《射雕英雄传》,却使它在武侠小说中普遍推行开来
이건 문파를 다발로 묶는 설정에 영향을 줬다는 뜻으로 봐야 함. 김용이 구대문파 설정을 썼다는 뜻이 아니라.
머리 허연 할아버지들이 만드신 <와룡생> 까페 자료. 중 중무협자들 활동 연대,31950 年代中 臥龍生(牛鶴亭)司馬翎(吳思明)諸葛?雲(張建新)孫玉?(孫樹榕)武林憔子伴霞樓主(童昌哲)1950 年代末 梁羽生金庸(?良鏞)古龍(熊耀華)
소스는 여기==> http://ohsite.com/joongmoo/
거기 활동은 2007년에 멎은 곳이라 잘못된 정보에 대한 갱신이 없음. 게다가 국내엔 와룡생 작품이 가장 먼저 들어왔던 터라 와룡생이 김용 선배로 잘못 아는 분들도 제법 있고. 신파 무협의 시조는 양우생과 김용임. 작품년도만 봐도 확인 가능함. 양우생의 용호투경화는 1954년 작이고, 김용의 서검은구록은 1955년 작임.
갠적으로 김용선생이 와룡생이 양우생 보다 훨씬 뛰어난 작가라고 생각함. 하지만, 무협지를 60년-70년대 와룡생 부터 읽기 시작한 사람들하고, 중국이 개방되서 대만 무협이 금서 취급을 안받고 소개되기 시작한 80년대 등소평이후에야 우리나라에 김용이 영웅문으로 소개됨.. 옛날 만화방 무협은 한때 모두 와룡생 저작으로 소개된 적이 오래동안 있었음..
김용이 탑인 건 인정. 사실 99.9%의 무협독자가 그렇게 생각할 것임. 판매량을 봐도 비교가 안 되고. 그건 그렇고 댓글 내용이 좀 이상한데? 대만 작가는 김용이 아니라 와룡생임 - 김용은 홍콩 작가 -. 그런데 대만 무협이 중국에서 금서 취급 받은 거랑 김용이 우리나라에 늦게 소개된 게 무슨 상관??
와... 너네 진짜 박식하구나, 진짜 많은거 배우고 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