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교는 최초의 이원론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배화교)와 가장 다원론적이었던 마니교(영지주의) 신도들이 유대교 계통의 박해를 피해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동아시아식 불교와 도교색도 띄게 된 종교이다.

여기서 이원론은 첫째로 짜라투스트라식 선과 악의 대립이고, 둘째로 영과 육의 플라톤식 구분인데, 이렇게 악을 뚜렷하게 인식하면 악의 문제에, 육체의 고통을 뚜렷하게 인식하면 영혼해방론에 다다르게 된다. 이것은 각지의 고대 지성인들이 로마 치하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진리를 추구한 끝에 성립했던 영지주의의 골자이기도 하다.

영지는 지식 또는 깨달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다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을 의미하고, 그 방법은 초기 불교의 열반과도 통한다. 초기 불교는 엄격한 금욕 성향이 있었다. 즉, 대를 이으면 대대손손 나의 지옥이 유전되는 것이고, 대를 끊어야 비로소 나의 지옥이 끝난다는 것이다. 동으로는 불교와 경쟁했던 인도 게통이, 서로는 영지주의 계통이 도태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고, 거의 모든 종교의 수도자들이 금욕(도 닦음)하는 이유도 이것과 관게가 깊다.

다시 백련교로 돌아와서, 백련교는 항시 "무생노모 진공가향"이라는 진언을 외웠다. 여기서 무생노모는 태어난 적도 없고 낳은 적도 없는 채로 늙은(=현명한) 어미를 표상한 것이며, 진공가향은 완전한 무로 돌아가 다시는 태어나지 않게 되는 가상적 고향(=평안함)을 표상한 것이다. 이는 주류 종교에서 번식과 서열 욕구를 표상한 것이 창조주, 영생과 향락 욕구를 표상한 것이 천국 또는 극락, 보복과 증오 욕구를 표상한 것이 지옥이라는 것과 대비된다.

물론 어떤 종교든 기반에서 지탱하는 대다수 평신도들은 그저 토속적이고 관성적인 기복신앙, 내세신앙으로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영지주의 계통에서는 그러한 맹목적 믿음이 아니라 이치에 대한 깨달음, 각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로서 부흥하기 위해서는 현실과 타협해야만 하므로, 어떤 종교든 단절 또는 변질의 양자택일을 피할 수가 없다.

백련교는 한때 백련교도를 황제로 옹립할 정도로 힘이 있었지만, 세속 명리에 눈이 멀어버린 주원장에게 철저히 배신당하고 토사구팽으로 끝을 맺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