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俠)', 2천 년의 딜레마: '정의(義)'와 '법(法)'의 충돌과 합의

서론: 딜레마로서의 '협(俠)' - 국가의 '좀벌레'인가, 시대의 '의인'인가

'협(俠)' 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인물 유형이나 도덕적 가치에 대한 정의(定義)의 대상이기 이전에, 그 자체로 동아시아 사상사 2천 년을 관통하는 거대한 '딜레마'의 역사이다. 이 딜레마는 '국가'라는 시스템이 탄생한 이래 지속되어 온 근본적인 긴장, 즉 '공동체의 법(法)'과 '개인의 정의(義)'가 충돌하는 순간에 대한 물음과 맞닿아 있다.

이 딜레마의 원형은 고대 중국에서 극명하게 제시되었다. 법가(法家)를 대표하는 한비(韓非)는 '협'을 "사사로운 무력으로 국법을 무력화하는"  존재이자 나라를 좀먹는 '오두(五蠹, 다섯 종류의 좀벌레)' 의 하나로 규정하며 국가 질서의 적으로 간주했다. 반면,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유협열전(游俠列傳)」을 통해, 이들을 '의(義)'를 실천하기 위해 사욕을 버리고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포의지협(布衣之俠)'(평민 협객) 으로 격상시키며 역사의 전면에 내세웠다.

놀라운 점은, 2천여 년 전의 이 고전적 딜레마가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거의 동일한 형태로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소위 '참교육' 유튜버  등으로 대표되는 '사적 제재(私的 制裁)' 현상 이 그 증거이다. 이들은 공권력과 형사사법체계에 대한 만연한 '사법 불신' 을 자양분으로 삼아 대중의 지지를 받으며 '정의 실현의 주체' 로 추앙받는 동시에,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명백한 불법' 이자 '또 다른 범죄'라는 맹렬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는 '협'이라는 개념이 특정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이 제공하는 공적 정의(法)'와 '사회 구성원이 기대하는 실질적 정의(義)' 사이에 견딜 수 없는 균열이 발생할 때, 그 틈을 메우기 위해 필연적으로 출현하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임을 시사한다. '협'은 인물이 아니라, '정의의 공백'에 대한 시대의 반응 그 자체이다.

따라서 본 보고서는 '협'이 제기하는 근본적인 질문, 즉 '법은 과연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을 축으로 하여 이 딜레마의 역사를 추적한다. 제1부에서는 사마천과 한비자로 대표되는 '협'의 원형과 고전적 딜레마를 분석한다. 제2부에서는 '무협(武俠)'과 '선협(仙俠)'이라는 문화적 변용을 통해 '협'의 가치가 어떻게 진화하고 혹은 해체되었는지를 탐구한다. 마지막으로 제3부에서는 현대의 '사적 제재' 현상을 통해 이 딜레마가 우리 시대의 법치주의에 가하는 위협을 진단하고, 파괴적인 충돌을 넘어선 진정한 '합의'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제1부: '협'의 원형과 고전적 딜레마: 의(義)는 법(法)의 적인가

'협' 개념을 둘러싼 최초의 사상적 격전은 국가의 통제력이 비약적으로 강화되던 한(漢)나라 초기에 발생했다. 이 논쟁의 중심에는 역사가 사마천과 법가 사상가 한비자가 있으며, 유가(儒家)가 이 긴장 관계 속에서 독특한 입장을 취했다.

1.1. '유협(游俠)'의 탄생: 사마천이 정의한 '협'의 조건

사마천이 『사기』라는 정사(正史)에 「유협열전」이라는 편목을 포함시킨 것 자체가 하나의 혁명적 행위였다. 당시 '유협'은 국가의 법을 따르지 않는 무뢰배로 치부되기 쉬웠다. 그럼에도 사마천이 이들을 '열전'의 반열에 올린 동기는 "발분저서(發憤著書)"(분노를 터뜨려 책을 씀)와 "천도시비(天道是非)"(하늘의 도는 과연 옳은가)라는 깊은 문제의식에 기인한다.

사마천은 "덕이 있는 자라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 라는 냉철한 현실 인식 속에서, 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폄훼당하고 역사 속에서 잊힐 위기에 처한 이들의 가치를 재평가하고자 했다. 그가 정의한 '유협'의 핵심 조건은 다음과 같다.

 * 의(義)의 실천: "의리를 중요시하고"  사사로운 이익(利)이나 사욕을 버린다.

 * 반(反)권력 및 약자 보호: "사회의 저변에서 권력과 악의 세계에 대한 견제 세력"이 된다.

 * 신(信)과 겸손: "시작한 일은 반드시 해내며"(言必信, 行必果), "자기의 능력과 덕행을 자랑하거나 과시하지 않는다".

사마천은 이러한 덕목을 갖춘 이들을 '포의지협(布衣之俠)', 즉 벼슬 없는 평민 신분의 협객이라 칭하며 ,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선비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평가했다.

사마천의 이러한 평가는 단순한 인물평이 아니다. 이는 황제의 노여움을 사 궁형(宮刑)이라는 치욕을 당하고 , 자신(이릉 장군)을 변호해주는 이 하나 없었던 지식인들의 비겁함을 목도한  사마천 자신의 비극적 경험이 투영된 것이다. 그가 공식 역사서에 국가가 범죄자로 낙인찍은 '협'을 편입시킨 행위는, 국가 권력에 순응하는 '유(儒)'나 기득권층이 아닌, 오히려 법의 바깥에 선 '협(俠)'이야말로 진정한 '의(義)'를 실천한다는 도발적인 선언이었다. 이는 기존의 가치 체계에 도전하고 역사의 정통성을 재규정하려 한 '기록 투쟁'이었으며, 당대의 "알량한 지식인들을 조롱하기 위한"  강력한 비판이었다.

1.2. 국가의 위협: 법가(法家) 한비자의 '오두(五蠹)' 비판

사마천의 '협' 옹호론에 정면으로 맞서는 논리가 바로 법가(法家) 한비자의 '오두(五蠹)'론이다. 한비자는 국가의 부국강병을 해치는 다섯 종류의 좀벌레(蠹)를 지목했는데, '유협(游俠)'이 그중 하나로 당당히 포함된다. 한비자가 꼽은 '오두'는 다음과 같다.

 * 낡은 이상을 말하는 학자 (유가)

 * 거짓을 늘어놓는 세객 (외교가)

 * 사사로운 무력으로 법을 어기는 유협

 * 병역과 세금을 피하는 권문귀족

 * 농민의 이익을 앗아가는 상공인

한비자가 '협'을 비판하는 핵심 논리는 '협'의 "사사로운 무력으로 나라 질서를 해친다" 는 데 있다. 그는 "유(儒)는 문장으로 법을 어지럽히고, 협(俠)은 무력으로 금령을 범한다" 고 보았다.

이는 '협'의 행위가 선한가 악한가의 도덕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한비자에게 '인(仁)'이나 '의(義)'와 같은 사적 도덕 이 국가라는 공적 영역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그는 만약 '인의'가 신하의 손에 의해 시행되면 신하의 세력이 강해져 군주의 권위를 해치고,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공적 세계가 훼손되어 사회적 신뢰가 무너진다고 보았다.

결국 한비자의 비판은 '협'이 '주권(Sovereignty)'의 핵심, 즉 '국가의 폭력 및 정의 독점권'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는 인식에 기반한다. '협'이 활동한다는 것, 즉 개인이 사적 정의를 실현한다는 것 자체가 "국가의 법은 불완전하거나 틀렸다"는 선언과도 같다. 이는 법치(法治) 시스템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위이며, 따라서 '협'의 선악과 무관하게 그 존재 자체가 국가에 대한 위협이다. 2천 년 전 한비자의 이 엄격한 법치주의적 논리는, "개인에 의한 사적 제재는 명백히 법과 법률에 위반되는 행위" 라는 현대 법률가들의 비판과 정확히 동일한 논리적 구조를 갖는다.

1.3. 유가(儒家)의 양가적 수용: '인(仁)'과 '용(勇)'의 실천

법가와 사마천의 극단적인 대립 사이에서, 당대 주류 사상이었던 유가(儒家)는 '협'에 대해 양가적인 태도를 취했다. 한편으로 사마천이 지적했듯, '협'이 추구하는 '의(義)'는 유가의 선비정신과 분명히 맞닿아 있었다. 유가 역시 '인(仁)' 과 '예(禮)' 를 근간으로 하는 도덕적 인간의 완성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가적 '협'의 기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이다. 자로는 성정이 굳세고 때로는 거칠었으나, 정의를 사랑하고 신의를 위해서는 타협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부당함에 대해서는 스승인 공자에게조차 불같이 화를 내며 대들 수 있는 유일한 제자였으며, 거침없는 '용(勇)'을 지녔다.

공자는 이러한 자로의 기개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한계를 명확히 했다. 공자는 자로를 가리켜 "당(堂)에는 올랐으나 아직 실(室, 안방)에는 들지 못했다" 고 평가했다. 이는 자로의 '용기'와 '정의감'('협'의 정신)이 일정 수준(堂)에는 도달했으나, 유가적 완성태인 '인(仁)' 과 '예(禮)' 라는 내면적 성숙과 사회적 규범(室)으로까지 승화되지는 못했음을 의미한다.

'협'을 둘러싼 고전적 딜레마는 단순한 '법가 vs 반(反)법가'의 이분법이 아니라, 이 세 가지 시각이 교차하는 삼각 구도 속에 존재한다.

 * 법가 (한비자): '협'을 국가 주권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제거하려 했다.

 * 유가 (공자/맹자): '협'의 긍정적 기질(義, 勇)을 '예(禮)'라는 사회적 규범 안으로 흡수하여 순화시키려 했다.

 * 사가 (사마천): '협'을 부조리한 법과 위선적인 예의 억압에서 해방시켜, 부당한 천도(天道)에 맞서는 독립적 가치로 옹호하려 했다.

이 세 가지 시각의 충돌과 긴장이야말로 '협'이라는 개념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본질적인 딜레마이며, 이후 2천 년간 이어지는 모든 '협' 담론의 원형이 되었다.

제2부: 문화적 진화와 '협'의 변용: '강호(江湖)'에서 '선계(仙界)'까지

현실 세계에서 '법(法)'과 '의(義)'의 충돌이라는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한 '협'의 정신은, 문학이라는 상상의 영역으로 무대를 옮겨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협'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극적인 변모를 거듭하며 대중적 '합의'를 형성하기도 하고, 끝내 그 본질이 해체되기도 한다.

2.1. '무협(武俠)'과 '합의'의 형성: 김용의 '협지대자(俠之大者)'

선진(先秦) 시기 '반(反)사회적' 특성이 강했던 '협' 은, 오랜 시간을 거쳐 만청(晩淸)의 협의소설과 김용(金庸)으로 대표되는 현대 무협소설에 이르러 '친(親)사회적' 개념으로 극적인 변모를 겪는다.

이러한 변모는 '강호(江湖)'라는 "상상의 공간" 이 창조되었기에 가능했다. '강호'는 국가의 법질서가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지만, 그 자체의 규율(道義)이 작동하는 가상의 세계이다. '협'은 현실의 법(法)을 위반하는 범죄자가 되는 대신, '강호'라는 대안적 질서 속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강호'라는 무대 위에서, 김용은 '협'의 딜레마를 봉합하고 새로운 대중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위대한 이념을 창조했다. 바로 『사조영웅전』 에서 제시된 "협지대자 위국위민(俠之大者 爲國爲民)", 즉 "진정으로 큰 협객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한다" 는 명제이다. 이는 사마천이 주목했던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차원의 '의리(義)' 를, 국가와 민족 공동체를 위한 '공적 정의(公義)'의 차원으로 비약적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무협' 장르의 등장은 한비자의 '법'과 사마천의 '의'가 충돌하는 고전적 딜레마에 대한 '문화적 안전밸브' 역할을 수행했다. 현실에서 '협객'은 한비자의 말대로 법을 어기는 범죄자이거나, 사마천의 말대로 부당한 권력에 희생되는 비극적 영웅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용이 창조한 '강호' 라는 환상의 공간 안에서, 주인공(郭靖, 곽정)은 부패한 관리를 처단하며 국가의 법을 (필요에 따라) 무시하면서도(사마천의 '義'), 동시에 외적의 침입에 맞서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한비자와 유가가 요구한 '公義') 존재가 될 수 있다. 이 환상적 양립이야말로 '협'에 대한 대중적 '합의'의 실체이며, 이는 역설적으로 '협'이 현실이 아닌 허구(虛構) 속에서만 완벽하게 공존 가능한 딜레마임을 증명한다.

2.2. '선협(仙俠)'의 등장과 '협'의 해체

'무협'이 이룬 '합의'는 21세기 인터넷 소설 시대에 이르러 '선협(仙俠)'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등장과 함께 급격히 해체된다. '선협'은 전통적인 '무협'에 '기환(奇幻)'(판타지) 요소가 융합된 하위 장르로, 주로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대규모로 생산-소비된다.

'선협' 소설(예: <범인수선전(凡人修仙傳)>) 에서 나타나는 주인공의 모습은 '협'의 가치를 정면으로 배신한다. '협지대자'의 공적 가치 와는 정반대로, 이들은 "철저하게 반사회적인 행동양식"을 보이며, "오직 신선이 된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실리적인 목표"만을 위해 행동한다.

이 세계관에서 '협'의 핵심 가치였던 '의(義)'는 완전히 소거된다. '선협'은 "탈-도덕적 세계의 생존 지침서이자 성공 신화" 로 기능하며, 이는 최근 중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개인주의, 실리주의의 팽배를 반영하는 문화적 창구이다.

'유협'에서 '선협'으로 이어지는 '협' 개념의 변천사는 '정의'라는 가치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질되고 상품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 유협(游俠) (사마천 시대): 정의는 '도덕적 부채'이다. 사욕(利)을 버리고  목숨을 거는 비극적 실천이다.

 * 무협(武俠) (김용 시대): 정의는 '공적 의무'이다. '위국위민' 이라는 명예로운 대의이다.

 * 선협(仙俠) (현대): '정의'는 '개인의 이익(利)'과 '성공'을 위한 수단 혹은 장애물일 뿐이다. '협(俠)'이라는 글자만 남았을 뿐, 그 본질(義)은 완전히 소멸하고 '성공'이라는 자본주의적 신화만 남았다. 이는 '협'이 한때 가졌던 사회적, 도덕적 가치가 완전히 '사유화'되었음을 의미한다.

테이블: '협(俠)' 개념의 시대별 변천과 핵심 특징

'협'이라는 개념이 2천 년간 '사회와의 관계' 및 '핵심 가치' 측면에서 어떻게 극적으로 변화했는지를 요약하면 다음 표와 같다. 이 표는 고전적 원형이 문학적 변용을 거쳐 현대의 사회적 현상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 구분 (Category) | 시대 (Era) | 핵심 개념 (Core Concept) | 대표 문헌/사례 (Exemplar) | 사회와의 관계 (Relation to Society) | 핵심 가치 (Core Value) |

|---|---|---|---|---|---|

| 원형 (Archetype) | 선진/한 (Pre-Qin/Han) | 유협(游俠) (Youxia) | 『사기』 유협열전 | 반(反)국가적: 법질서(法)와 대립 | 사적 의리(義), 약자 보호 |

| 문학적 승화 (Literary Sublimation) | 근대 (Modern Lit.) | 무협(武俠) (Wuxia) | 김용 『사조영웅전』 | 친(親)사회적/국가적: (가상 공간 내) | 공적 정의 (爲國爲民) |

| 문학적 변질 (Literary Degeneration) | 현대 (Contemporary Lit.) | 선협(仙俠) (Xianxia) | 『범인수선전』 | 탈(脫)사회적/반(反)사회적 | 개인의 실리/성공 |

| 사회적 발현 (Social Manifestation) | 현대 (Contemporary) | 사적 제재 (Vigilantism) | '참교육' 유튜버  | 대(代)사회적: 사법 불신 기반 | 즉각적 응징, 대안적 정의 |

제3부: 현대의 딜레마: 사적 제재(私的 制裁)와 법치주의의 위기

허구의 영역에 머물던 '협'의 딜레마는,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틈을 타 21세기 현실 세계로 다시 소환되었다. '사적 제재'라는 이름으로 귀환한 현대판 '협'은 2천 년 전 한비자가 경고했던 법치주의의 위기를 현실화하고 있다.

3.1. '협'의 현대적 귀환: '참교육' 유튜버와 '사법 불신'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사적 제재'가 높은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형사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에 있다.

불법촬영 제재 유튜버의 영상 댓글 9,577개를 텍스트 마이닝 기법으로 분석한 연구 결과 는 이러한 현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댓글 작성자들은 "형사사법기관에 대해서는 강한 불신"을 드러내는 반면, 사적 제재를 실행하는 유튜버를 "정의 실현의 주체로 인식"하며 이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단순히 자극적인 콘텐츠에 대한 열광이 아니라, "대안적 정의 실현에 대한 사회적 열망" 이 반영된 결과이다. 대중의 지지는 맹목적이지 않으며, "제도에 대한 불신"의 깊이, "제재 주체의 동기와 진정성"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 복합적이고 맥락 의존적으로 형성된다.

현대판 '협'(사적 제재 유튜버)의 등장은 영웅적 개인의 출현이 아니라, 공적 시스템의 명백한 실패가 낳은 '필연적 결과'이다. 대중은 한비자가 경고한 '사적 무력'의 위험성과 '또 다른 범죄'가 될 수 있다는 법적 문제를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지지하는 행위는, '법치주의의 훼손'이라는 비용보다 '정의의 방치'라는 현재의 고통이 더 크다고 판단하는 사회적 합의의 반증이다. 즉, 이 현상은 '협'의 문제가 아니라 '법'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3.2. 현대판 '유협'의 법적 한계: '정의 실현'인가 '또 다른 범죄'인가

'정의 실현'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사적 제재는 고대 한비자의 비판과 동일한 법적 한계에 부딪힌다. 법률 전문가들은 사적 제재가 "명백한 불법"이라고 지적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제1항은 "누구든지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고 명시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개인에 의한 사적 제재는 그 자체로 "또 다른 범죄를 구성할 여지가" 크다.

여기에 21세기의 기술적, 상업적 요소가 결합되면서 딜레마는 더욱 복잡해진다.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은 방송법상의 심의 대상이 아니며 '자율규제'가 기본 원칙이어서 사실상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로 인해 '참교육' 유튜버가 저격 대상의 신원을 무분별하게 노출하거나 , 더 많은 조회수와 후원금을 얻기 위해  사적 제재 행위를 자극적인 '게임'처럼 수행하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이는 21세기 '협'이 처한 새로운 딜레마를 보여준다. 고대의 '유협'이 '의(義)' 를 위해 '리(利)'(이익) 를 버렸다면, 현대의 '사적 제재' 유튜버는 '의(義)의 실현'이라는 대중의 열망 과 '법(法)의 한계' 라는 틈새에서 '조회수와 후원금' 이라는 '리(利)'를 창출한다.

고전적 '유협'의 딜레마(법 vs 의)가 현대에 이르러 '비즈니스 모델'로 활용되는 것이다. '선협' 소설 이 '협'의 가치를 '개인의 성공'으로 변질시켰다면, '사적 제재' 유튜버는 '협'의 행위를 '경제적 수익'으로 상품화한다. 이는 '협'의 딜레마가 철학적 차원을 넘어 경제적 차원으로까지 확장되었음을 의미하며, 사마천이 정의한 '명예를 탐내지 않는'  고전적 '협'의 이상과는 완전히 결별한 모습이다.

3.3. 미디어의 재현과 딜레마의 증폭: 『모범택시』의 사례

이러한 사회적 딜레마는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재현되고 증폭된다. "정의가 실종된 사회, 전화 한 통이면 OK" 라는 도발적인 슬로건을 내건 드라마 『모범택시』나 『비질란테』와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사적 복수 대행극' 은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가해자에게 통쾌한 복수를 완성함으로써 , 공적 사법 시스템에서 좌절을 맛본 대중에게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문제는 이러한 미디어가 단순한 현실의 '반영'을 넘어, 현실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이 순환 과정은 다음과 같다.

 * (현실) 대중이 공적 사법 시스템의 무능과 불공정에 분노하고 불신을 느낀다.

 * (미디어) 『모범택시』 와 같은 드라마가 이러한 불신을 극적으로 재현하며 "사적 제재가 유일하고 효과적인 해결책"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 (현실) 대중은 미디어를 통해 '사적 제재는 곧 정의'라는 인식을 강화하고, 현실의 '참교육' 유튜버 를 『모범택시』의 주인공과 동일시하며 이들을 '정의의 주체'로 더욱 강력하게 지지한다.

이러한 순환은 '협'의 딜레마를 사회적으로 해결하기 어렵게 만드는 동시에,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공적 제재에 대한 신뢰도" 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더욱더 어렵게 만든다. 미디어는 '사법 불신'을 정당화하고 사적 제재를 '정상화'하는 강력한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결론: '협'의 '합의'를 향한 제언: 법과 정의의 간극을 묻다

'협(俠)'은 특정 인물의 유형을 지칭하는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2천 년의 시공간을 넘어 '법(法)과 정의(義)가 괴리된 순간'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회적 현상 그 자체이다. 오늘날 '사적 제재'에 대한 대중적 열광은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공적 시스템이 실패하고 있음'을 알리는 고통스러운 경고(Symptom)이다.

'협'을 둘러싼 딜레마의 본질은 한비자가 경고한 '법치 파괴의 위험성' 과 사마천이 분노한 '정의의 부재'  모두가 각자의 시대에서 타당성을 지닌다는 데 있다. 한비자의 경고가 옳다고 해서 사마천의 분노가 틀린 것이 아니며, 사마천의 분노가 정당하다고 해서 한비자의 경고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이 딜레마에 대한 진정한 '합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첫째, '협'을 탄압하거나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협이 불필요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유일한 '합의'의 방향이어야 한다. '협'에 대한 열광은 '정의의 공백'에 대한 반응이다. 따라서 '협'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공백을 국가의 공적 시스템으로 메우는 것뿐이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사적 제재의 근절을 위해서는 "공적 제재에 대한 신뢰도를 먼저 끌어올리는 것" 이 가장 시급하고 본질적인 해법이다.

둘째, '협'의 정신을 '파괴'가 아닌 '상생'의 형태로 계승해야 한다. '협'의 본질적 정신인 '약자를 돕는 의로움(義)'이 반드시 법치를 파괴하는 '사적 제재' 의 형태로만 발현될 필요는 없다. 조선 시대 기근으로 죽어가는 제주도민을 구휼한 '의인 김만덕' 의 정신은 오늘날 '협'의 현대적 계승 방향을 제시한다. 그녀의 정신은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설립 으로 이어졌으며, 건입동 주민들이 "십시일반 출자금을 모아"  공동체를 이루고 취약계층 급식 지원 사업  등을 펼치는 '공동체적 상생'의 형태로 발현되고 있다. 이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협'의 정신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킨 사례이다.

'협'은 우리 사회를 향해 '법은 과연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국가가 이 질문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답을 제공하지 못할 때, '협'은 언제나 한비자가 우려한 '좀벌레'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면, 국가가 그 답을 충실히 이행할 때, '협'의 정신은 김만덕 의 사례처럼 시대를 밝히는 '의인(義人)'의 정신으로 승화될 것이다. 우리가 도달해야 할 '합의'는 '협'에 대한 합의가 아니라, '정의로운 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