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 은
감독은 끝없는 황무지를
나아간다
멕시코 땅이었던 미국의 황야를
그 황량하기 그지 없는 벌판에
회전초가 구르고 있다
저 멀리 개척마을 이 보인다
한때는 붐볐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는 버려진 폐허
오래전에 이곳에 잠시 들린
만들어진 기억을 들춰보다 할까
접어 두었다
마을이 있으니 근처에 무덤들도 있겠군
저멀리 무덤들이 보인다
감독은 묘지 주위를 살피며 걸었다
무덤들을 무덤덤하게 지나치며
특별히 주의를 끌거나
인상적인 건 없었다
서쪽을 향해 계속 걷는 감독
무덤가가 끝나가는데 저 멀리
하얀 무언가가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니
2미터 나 되는 입방체 형태의
대리석 함이다
저 정도 규모의
묘비를 세울 정도면
개척마을의
지도자나 법의 주관자 일까
감독은 거대한 묘비를 보았다.
앞면은 그럴싸한
묻힌 이의 위업을 칭송하는 새김이 있었지만
그런 문자 배치들은 오밀조밀하여서
바람과 모래에 쉽사리
깍여나가 버렸다.
그런지라 상당수는 의미를 알수없는
판독불가 상태
그 밑 나이와 수명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오래 살기는 했지만은 죽은 인간
H
감독은 묘비의
뒤로 가봤다
뒷면에는 조악하지 만
확고한 의지로
새겨넣은 문자
¡Qué locura! ¡Juez! ¡Bien hecho!
제일나은 솜씨는 사라지고
제일서툰 솜씨가 마지막까지 남다니
우스운 역설이지않은가
감독은 살며시 웃었다.
묘비와 대지가 맞닿아 있는
곳에 에피타프가 보인다
Nullus homo est qui non moriatur
감독은 그걸 말없이
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서
마을을 돌아보았다
산이를 위한 마을은 허물어져가고
죽은이를 위한 묘비는.
멀쩡하다니 씁쓸하군
감독은 아주 느리게 묘비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는 다리를 들어 올렸다
발끝에 힘을 모았다
티탄 보다 거대했던 원시거인
이 지상에 도래하듯이
감독이 거인인가 거인이 감독이었나
그들은 바다에 빠져도 무사했고
머리에 기왓장을 맞아도
꿈쩍없다
그런
태고적
거대한 힘으로
헤라클레스라도 일격에 차버려
사과를 가지고 놀듯이
날려버릴 힘이 충만해졌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힘으로서
묘비를 걷어찼다
엄청난 소음과 함께
대리석 파편들이 비산했다
암석 조각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돌조각들이 에피타프를 가린다
그로 인해서 종래에는 달라진
에피타프
문자
homo moriatur.
감독은 만족 스럽다는 듯이 살며시 웃고는
떠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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