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야설의 영원한 레전드이자 정통 복수극 당가풍운


본편부터 외전까지 모두가 볼 수 있게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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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견 황량하기까지 한 사천 지역은 지역 토착민들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생을 꾸려 나가고 있었다. 사방이 비적(匪賊)들로 민초들이 횡액을 당할 때에도 이 척박한 땅은 그나마 그러한 우환은 피할 수 있었다.

촉도(蜀道)를 굽이 흐르는 민강의 깊숙한 기슭에는 울랑망이라는 마을이 있다.

겉보기에는 한적한 벽촌에 불과한 마을이다.

그러나 강호인들은 울랑망을 지나는 것을 극히 꺼렸다. 그 주위로 사방 십 여리는 강호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자들이 행세하는 곳이었다. 해서 비적들도 감히 이곳은 출입을 꺼리고 있었다.

사천당문!

세가(勢家) 중의 세가로 구대문파와 유일하게 이름을 나란히 하는 문파다.

흙담과 기와마다 이끼가 끼어 우중충함을 더해 주는 곳!

울랑망을 벗어난 외곽 지역에 자리잡은 고색창연한 장원이 바로 당문이다. 일견 거대한 대문은 오늘도 굳게 잠기어 있었고 그 양쪽으로 높다란 담장이 끝이 보이지 않게 펼쳐져 있었다. 

당문은 우중충한 분위기만큼 외인(外人)들의 내방을 꺼렸고 그 높은 담장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세인들은 알 수가 없었다.


취의청(聚議聽).

대단히 넓은 대청은 조용하다 못해 귀기(鬼氣)가 흐를 정도였다. 인적이 없는 듯한 이곳. 

허나 넓고 길다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많은 인원들이 앉아 있었다. 상석에 한 인물이 앉아있고 그 좌우측으로 앉은 인원들은 상석의 인원을 주시하고 있었다.

"음, 절곡에는 광혼전 전주가 가봐야겠군."

상석에 앉은 가주(家主) 탈혼신군 당패(奪魂神君 唐覇)가 무겁게 입을 떼자 다시 한번 대청은 찬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가주(家主), 그것은 다시 한번 고려를... 고려를 청하나이다."

가주의 끝말을 물고 이어지는 청에 모두들 시선이 벌떡 일어선 세밀전주 당조경에게 쏠렸다. 허나 당조경은 다른 인원의 질책성 시선을 무시하고 재차 청을 올렸다.

"가주, 광혼전주는 절곡의 독진을 파해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차라리 독혼각이 그 임무에 더 절적...."

당조경의 말이 끝나기 전에 호통소리가 당조경의 말을 끊어놓았다.

"세밀전주, 이 무슨 망발이오? 가주님이 한번 내린 결정에 대해서 이러꿍 저러꿍 떠드는 것은 명령 불복이오."

당조경은 자신의 말을 막은 사람을 보고 안면 근육이 떨리었다. 일어나서 당조경의 말을 막은 사람은 이제 20대 초반으로 이목구비는 아주 수려했고, 눈빛 또한 침침한 실내에서도 훤히 보일 만큼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만큼 수련을 닦았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조카뻘인 당종(唐鐘)으로부터 일견 무례하기까지 한 면박을 당한 당조경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그러자 당종 옆에 앉아있던 중년의 여인이 당조경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머리를 위로 틀어올린 사십대 한창의 미부인은 눈가와 입가의 잔주름과 위로 치켜올라간, 다소 날카롭고 매서운 눈매를 제외하면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비록 화려한 궁장차림으로 가려졌음에도 중년 특유의 풍만하고 육감적 몸매를 과시하고 있었다. 

구숙정(邱淑貞)은 경솔히 행동한 당종을 말 없이 질책하면서도 당종의 손을 잡아주며 아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현 가주의 부인이자 당가의 가모로서 실로 능수능란한 대처였다.

대청 안이 날카로운 대치 상태로 얼어붙고 있을 때, 광혼전주 당후는 일어나서 가주 당패를 향해, 허리를 숙이었다.

"가주, 제가 맡은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세밀전주, 이미 결정된 일 후사를 부탁하네."

당후는 다소 비장한 투로 말을 하고는 대청에 모인 인원들을 둘러보았다.

몇 명은 차마 그 시선을 받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으나, 대부분의 시선은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당후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렀다.

여인,

궁장머리를 구름처럼 틀어 올리어 그 밑의 작은 얼굴이 더욱 작아 보여 애처럽게 까지 보이는 여인이었다. 

두응향(斗鷹香)은 당후의 시선을 마주보았다. 두응향의 깊고 깊은 심처가 파르르 떨리는 듯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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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의 자수가 수놓아진 진홍색 비단 궁장을 차려입은 구숙정의 눈꼬리는 날카롭게 위로 올라가 있었다. 구름처럼 풍성하게 틀어올린 머리에는 각종 장신구가 꽂혀 사천당가의 가모다운 고귀한 기품과 위엄을 물씬 풍겼다.   

"너는 대체 무엇을 하는 것이냐?"

무림세가와 고관대작의 딸들 위주로 아들의 혼처를 알아보느라 바빴던 구숙정은 혼처 후보가 적힌 문서를 당종에게 집어 던졌다. 당종은 바닥에 떨어진 문서를 집어들 생각조차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 어미에게 허락도 구하지 않고 당후 조사대의 생사 확인 임무를 맡게 되다니! 아주 제멋대로구나!"

금칠한 의자에 앉아 있는 구숙정은 성난 눈길로 아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전(內殿)에 깔린 호화로운 붉은 융단 위에 무릎을 꿇고 있는 당종은 쭈뼛거리며 구숙정의 눈치를 살폈다. 매서운 눈매와 뾰족한 콧날 때문에 더욱 표독스럽고 사납게 느껴지는 어머니의 얼굴을 제대로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어머니! 어머니께서 소자에게 가르쳐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무엇이든 철저하게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고. 저는 그래서 마땅히..."

구숙정은 잔뜩 주눅이 든 채 더듬거리며 말을 잇는 당종을 내려다보며 싸늘하게 웃었다.

"훗, 그 말도 응당 옳구나. 허나 내 허락도 없이 멋대로 구는 건 용서할 수 없다! 너는 당가의 소가주 이전에 내 아들임을 명심해야만 한다."

모친의 냉랭한 음성에 당종은 감히 고개를 치켜들 수가 없었다. 긴장한 탓인지 당종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런 아들의 모습에 구숙정은 인상을 찌푸렸고 그녀의 얼굴에 새겨진 잔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나지막한 한숨을 내쉰 구숙정은 당종에게 조금은 부드럽게 말했다. 

"아들아, 너는 소가주로서 이 당가를 지켜야만 한다. 바깥으로 나도는 건 최대한 줄여야만 하느니라."

모친의 부드러워진 목소리에 용기를 얻은 당종은 마른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이미 아버님께도 보고가 올라가고 승인이 난 일인지라...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구숙정의 얼굴이 대번에 표독스럽게 일그러졌다. 오랫동안 내전(內殿)에 얼씬도 하지 않는 무정한 남편 당패의 얼굴을 떠올린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던 것이다. 

"오냐! 그렇다면 이 애미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가거라! 가서 네 마음대로 하거라!"

구숙정은 날카롭게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치고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머니! 소자는 그저..."

"누가 네 어미라더냐!"

격노한 어조로 쏘아붙인 구숙정은 거칠게 걸음을 떼어 녹색 휘장이 드리워진 자단목(紫檀木) 침대로 향했다. 

차가운 얼굴로 침대 위에 걸터앉은 구숙정의 뜻은 명명백백했다. 

무언의 축객령!

당종은 머리가 질끈질끈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