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는 죽은 듯 고요했다. 방 안을 짓누르는 침묵은 마치 거대한 바위처럼 진산월의 어깨를 압박해 왔다. 침상에 누운 임영옥의 안색은 이미 산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핏기 없는 창백한 낯빛은 마치 투명한 얼음을 깎아 만든 듯 위태로웠다.

체내의 진원진기(眞元眞氣)마저 소진되어가는 절체절명의 순간. 그녀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구음향의 지독한 음기를 제어하기 위해, 진산월은 가늘게 떨리는 숨을 들이켰다. 그는 단전 깊은 곳에서 정순한 진기를 끌어올려, 칠음진기(七音眞氣) 후반부의 구결에 따라 조심스럽게 운용하기 시작했다.

진산월의 두 손바닥이 임영옥의 등 뒤 대추혈(大椎穴)에 부드럽게 밀착되었다. 서늘하면서도 지극히 정화된 기운이 그녀의 마른 혈도를 타고 스며들었다.

'칠음(七音)의 근원은 가두어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흐르게 하여 순응함에 있다.'

진산월이 펼쳐내는 칠음진기의 정화가 임영옥의 전신 경락을 훑고 지나가자, 구음향의 독기에 미친 듯 날뛰던 음기들이 서서히 그 기세를 죽이며 길을 찾기 시작했다. 얼음장처럼 차갑던 피부에 희미하게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것은 죽음의 그림자를 밀어내고 피어난 미약한 생명의 불씨였다.

그로부터 세 시진.

진산월의 전신은 폭포수 같은 땀으로 젖어 들었고, 침상에서 차갑게 식어가던 임영옥의 단전으로는 갈무리된 칠음진기의 기운이 잦아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아주 희미하게나마 핏기가 도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진산월은 팽팽하게 조여졌던 마음의 끈을 간신히 늦출 수 있었다.

그러나 안도의 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아...!"

임영옥의 미간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평온을 되찾는 듯하던 그녀의 몸이 갑자기 발작하듯 떨리기 시작했다. 진산월이 급히 그녀의 가녀린 손목을 낚아챘다.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맥박은 마치 거센 풍랑 속에서 끊어지기 직전의 거미줄처럼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사태는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 구음향의 독기를 억누르기 위해 익혔던 천양신공(天陽神功)의 기운이, 외부에서 유입된 칠음진기와 충돌하며 역천(逆天)의 기지개를 켠 것이다. 극양의 기운은 독이 되어 그녀의 오장육부를 태웠고, 그 반동으로 폭주한 음기는 골수까지 얼려버릴 기세로 생명줄을 조여 왔다.

"사매... 정신 차리시오! 나를 보시오, 제발!"

진산월의 목소리가 처절하게 갈라졌다. 쾌의당주와 사효심, 그리고 위지립과 섭소천이라는 천하의 강자들을 마주했을 때도 추호의 흔들림 없던 그의 눈동자가 세차게 일렁였다. 천하를 오시(傲視)하는 종남파의 장문인이라 한들, 눈앞에서 사그라지는 정인(情人)의 목숨 앞에서는 그저 무력한 사내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절망에 잠길 여유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진산월은 뇌리를 스치는 종남의 실전 절학, 그 최후의 보루를 떠올렸다. 바로 **육합귀진신공(六合歸眞神功)**이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임영옥의 몸속 깊숙이 잠복해 있던 천양신공의 기운이 외부에서 밀려든 칠음진기의 자극에 반응하여 스스로 고개를 들었다.

극음(極陰)과 극양(極陽).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두 거대한 힘이 그녀의 단전에서 격돌했다. 진산월은 찰나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정순한 진기를 쏟아부어 그 맹렬한 기세 사이를 중재했다. 위태로운 균형이 이루어지자, 멎어가던 임영옥의 호흡이 거칠게 터져 나왔다.

진산월은 그녀의 귓가에 대고 나직이, 그러나 천둥소리보다 엄중하게 종남파 최고의 금과옥조를 읊조렸다.

"사매, 의식을 붙잡으시오. 이제부터 내가 전하는 구결을 따라야 하오. 이것이 바로 종남의 천 년 숙원, 육합귀진신공이오!"

그의 목소리는 도도한 내공에 실려 임영옥의 혼미한 의식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늘과 땅이 만나 건곤(乾坤)을 이루고, 강함과 부드러움이 만나 조화를 이루나니... 현청건곤강기(玄淸乾坤罡氣)의 구결로 음과 양을 하나로 묶으시오!"


그녀의 체내에서 사투를 벌이던 칠음진기와 천양신공이 현청건곤강기의 오묘한 흐름에 휘말렸다. 날카롭던 두 기운은 마치 태극의 형상을 그리며 서로의 꼬리를 물고 융합하기 시작했다.

"태을신공(太乙神功)으로 심맥을 호위하고, 태청강기(太淸罡氣)의 강맹함으로 막힌 혈도를 뚫어내시오! 그 끝에 천단신공(天丹神功)의 유연함을 실어 온몸을 갈무리해야 하오!"


순간, 임영옥의 전신에서 눈부신 금빛과 은빛의 광채가 교차하며 뿜어져 나왔다. 종남파가 자랑하는 여섯 가지 절학이 진산월의 목소리를 이정표 삼아 그녀의 몸 안에서 마침내 하나로 합일(合一)되고 있었다.

태을은 그녀의 근본을 수호했고,

천양칠음은 거대한 음양의 바다를 이루었으며,

현청건곤은 그 바다에 질서를 부여했다.

여기에 태청의 강직한 힘과 천단의 유수(流水) 같은 유연함이 갈무리되자, 전설 속에서나 존재하던 육합귀진의 경지가 한 여인의 몸 안에서 찬란하게 완성되었다.

한 시진 같은 일각이 지났다.

전신을 광풍처럼 휘감던 기운이 서서히 단전으로 수렴되었다. 임영옥의 안색은 이제 더 이상 창백하지 않았다. 오히려 옥을 닦아낸 듯 맑고 은은한 광채가 피어올랐다.

"음..."

가느다란 신음과 함께 임영옥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이전보다 훨씬 깊고 정순한 정기가 서려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품에 안고 있는 진산월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그의 얼굴에는 안도와 기쁨, 그리고 필설로 다하기 힘든 애절함이 교차하고 있었다.

"사형..."

임영옥이 떨리는 손을 들어 진산월의 뺨을 어루만졌다. 육합귀진신공으로 다시 태어난 그녀의 손길은 더없이 따스했다. 그녀를 괴롭히던 구음향의 저주도, 태음신맥의 고통도 이제는 거대한 신공의 밑거름이 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진산월은 그녀의 손을 부서질 듯 맞잡았다.

"사매... 당신이, 당신이 결국 해냈소."

창밖으로 새벽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어둠을 헤치고 솟아오르는 태양의 찬란한 빛이 두 사람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종남파 재건의 험난한 길 위에서, 진산월은 비로소 혼자가 아님을 사무치게 깨달았다. 육합의 진리가 두 사람의 기운을 하나로 묶었듯, 그들의 운명 또한 결코 끊어지지 않을 인연으로 단단히 매듭지어진 것이다.


임영옥의 체내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천변만화(千變萬化) 그 자체였다. 진산월은 그녀의 등 뒤에서 진기를 갈무리하며, 자신의 내력을 한계까지 쥐어짜 육합귀진의 묘리를 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진산월은 기이한 위질감(違疾感)을 느꼈다.

'이상하다. 본래 극양(極陽)의 성질인 구양신공(九陽神功)은 태음신맥의 극음(極陰)과 마주하면 서로를 밀어내어 파멸에 이르는 것이 순리거늘...'

지금 임영옥의 몸 안에서는 전혀 다른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익혔던 **천양신공(天陽神功)**의 기운이, 폭주하던 음기를 밀어내는 대신 마치 부드러운 비단실처럼 음기를 감싸 안으며 육합귀진의 틀 안으로 녹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찰나, 진산월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깨달음이 스쳤다. 그것은 종남파의 전설적인 기재, 매종도(梅宗道)에 관한 전설의 조각들이었다.

천룡객 석동은 매종도가 남긴 천양신공을 두고 '구양신공의 위력을 단독으로 재현하여 육합귀진신공의 힘에 필적하게 만든 무공'이라 평해왔다. 진산월 역시 그리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임영옥의 단전에서 일어나는 음양의 조화는 전혀 다른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아니었다. 매조사께서 천양신공을 창안하신 것은 육합귀진신공을 대체하기 위함이 아니었어.'

진산월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매종도가 평생토록 연모했던 여인, 같은 종남오선 중 한 명인 조심향(趙心香). 그녀는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났으나 태음신맥이라는 체질 탓에 종남의 여섯가지 신공을 합할 수 없어, 극양의 성질인 구양신공으로는 그녀의 거대한 음기와 융합할 수도, 합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매종도는 깨달았던 것이다. 태음신맥의 음기는 억누를 대상이 아니라, 육합귀진이라는 거대한 그릇에 담아야 할 핵심적인 힘이라는 것을. 그러나 기존의 구양신공은 음기를 배척하는 성질이 강해 결코 태음신맥과 공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매종도는 고금제일의 기재다운 발상으로 천양신공을 창안했다. 그것은 음기를 배척하는 양(陽)이 아니라, 음기를 '수용하고 변화시켜' 육합(六合)의 길로 인도하는 특수한 양기였다.

천양신공은 구양신공의 변칙이자 태음신맥을 타고난 자를 위한 것이었다. 태음신맥을 가진 사람이 육합귀진신공을 완성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오직 단 한 사람을 위한 맞춤 무공이었던 것이다.

"그랬던 것이군... 매조사님의 그 애틋한 마음이, 지금 이곳에서 영옥 사매를 살리고 있구나."

진산월의 목소리에 깊은 떨림이 묻어났다.

천양신공의 5성 진기가 임영옥의 칠음진기와 만나자, 그것은 더 이상 충돌하는 두 힘이 아니었다. 천양신공이 다리가 되어 음기를 현청건곤강기로 인도했고, 태을신공이 그 흐름을 보호했다. 매종도가 꿈꿨으나 끝내 조심향에게 이루어주지 못했던 그 전설의 경지가, 지금 진산월의 손길 아래 임영옥의 몸에서 꽃을 피우고 있었다.

"현청건곤은 음양을 가리지 않고, 천양은 태음을 품어 진리로 돌아간다!"

진산월이 마지막 구결을 외쳤다. 임영옥의 단전에서 소용돌이치던 기운이 마침내 하나의 거대한 구(球)를 형성하며 안정을 찾았다. 육합귀진신공의 완성이었다.

임영옥이 맑은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자신의 몸을 가득 채운 정순하고도 따뜻한 기운에 경악했다. 그것은 단순히 무공이 높아진 수준이 아니었다. 마치 근원적인 저주가 축복으로 바뀐 듯한 생동감이었다.

진산월은 기력을 다해 침상 곁에 주저앉으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제 알 수 있었다. 매종도가 천양신공의 구결 구석구석에 새겨놓은 것은 무적의 위력이 아니라, 정인을 향한 간절한 염려와 사랑이었다는 것을.

"사매... 당신을 살린 건 나의 내공이 아니오. 과거, 당신과 같은 아픔을 가진 연인을 살리고자 했던 매조사님의 마음이었소."

임영옥은 진산월의 손을 잡으며 그 뜻을 가슴 깊이 새겼다. 종남파의 재건이라는 무거운 짐 뒤에 숨겨져 있던 따뜻한 인간애와 연심.

창밖으로 쏟아지는 새벽빛은 이제 두 사람을 축복하고 있었다. 고금제일의 기재가 남긴 마지막 조각이 마침내 제자리를 찾았고, 종남의 빛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진산월은 임영옥의 평온한 숨소리를 들으며 다짐했다. 매종도가 조심향에게 차마 다 전하지 못했던 그 마음까지 합쳐, 자신은 반드시 이 여인을 지켜내겠노라고. 그것이 육합귀진의 참뜻이자, 종남의 장문인으로서 걸어가야 할 진정한 도(道)임을 그는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