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붉게 물든 선상 위로 쇳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서인걸의 검은 벼락처럼 매서웠다. 전광십사검(電光十四劍)의 묘리가 내공 없이 순수한 초식만으로 펼쳐지고 있었음에도, 그 검 끝에는 잃어버린 종남의 낙전칠검(落電七劍) 
특유의 섬뜩한 쾌(快)가 온전히 맺혀 있었다. 번쩍이는 은빛 섬광이 시야를 어지럽히며 전흠의 전신을 옭아맸다.

"합!"

전흠은 묵묵히 검을 내질렀다. 해남파의 독랄함과 종남의 별빛이 융합된 성라검법(星羅劍法). 
낙성빈분(落星繽分)의 촘촘한 검막으로 상대의 쾌속한 검로를 간신히 튕겨내며, 전흠은 점차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이십 초를 넘어가며 전흠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압도적인 속도로 공간을 찢는 서인걸의 검광 앞에서 자신의 초식들은 어딘가 둔탁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곁눈질로 훔쳐본 누산산의 시선이 신경 쓰일수록 검 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십팔 초째.

서인걸의 검이 허공에 은빛 잔상을 남기며 전흠의 미간을 향해 쇄도해 들어왔다. 피할 수 없는 극강의 쾌.

그 벼락같은 속도 앞에서 전흠은 절초인 잔성희소(殘星稀少)를 펼쳐 반격하려 했다.

하지만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본디 고삐를 쥐는 이치와 검을 쥐는 이치가 크게 다르지 않지.

지난밤, 차가운 달빛 아래서 장문사형이 남겼던 서늘한 음성이 뇌리를 스쳤다. 지난 한 달간 험난한 진흙탕속에서 제멋대로 날뛰는 말들의 고삐를 억세게 낚아채던
그 끈질긴 근육의 기억이, 무의식중에 검을 쥔 손목에 고스란히 실렸다.

투웅~!

전흠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기괴하고도 억센 궤적을 그렸다. 그것은 쾌(快)를 베어내는 화려한 기교가 아니라, 거친 야생마의 목덜미를 짓누르는 우직한 고삐질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둔탁하고도 거친 힘의 흐름에, 서인걸의 정교했던 쾌검이 속수무책으로 허물어졌다.

서인걸이 낭패한 기색으로 두걸음 뒤로 물러섰을 때, 전흠의 차가운 검 끝이 서인걸의 목전 반 촌(寸) 앞에 서 멈춰 섰다. 정확히 삼십 초였다.

"제가 졌습니다, 전 소협."

선상에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서인걸이 조용히 검을 내리며 포권을 취했다. 한 치의 번명도 없는 맑고 담담한 패배 인정이었다.
석양빛을 받아 붉게 빛나는 서인걸의 얼굴은 패배의 수치심 대신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무인의 고결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번개 같은 쾌를 좇던 제 검이, 전 소협의 그 흔들림 없는 묵직함 앞에 여지없이 부서졌습니다. 깊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전흠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승리했다.
누산산 앞에서도, 장문사형 앞에서도 체면을 세웠다. 그는 짐짓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려 했다.

"훌륭했다."

그 떄 진산월이 천천히 걸어 나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떠냐 지난 밤 내가 했던 말의 뜻을 이제 조금 알겠느냐?"

진산월은 굳어있는 전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방금 네가 서 사제의 쾌검을 억누른 일격에는 어설픈 기교가 없었다. 그저 사납게 날뛰는 말의 고삐를 틀어쥐듯 억세고 끈질겼지.
마부석에서 묵묵히 견뎌낸 고단함이 마침내 너의 검에 진짜 무게를 실어준 셈이다."

어설픈 기교가 없는 억센 고삐질. 마부석의 고단함이 실어준 무게. 무인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성취에 대한 극찬이었으나, 한 명의 사내로서 
여인의 마음을 얻기엔 한없이 거리가 먼 단어들의 향연이었다.

전흠이 조심스레 시선을 돌렸다.
마차 곁에 서 있던 누산산의 눈동자가 별빛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맑은 눈길은 투박한 '고삐질'로 승리한 마부 전흠이 아니라,
패배조차 한 마리 학처럼 우아하게 받아들이는 서인걸의 미소에 온전히 꽂혀 있었다.

전흠은 조용히 검을거두었다. 
아침 일찍 앞머리에 정성껏 발랐던 동백기름이 땀에 뒤엉켜 얼굴로 흘러내렸다.

눈이 시리도록 붉은 하남의 노을이 유독 처연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