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연상은 생의 격류 속에서 단 한 번도 명운(命運)의 절대성을 맹신한 적이 없었다. 허나 누산산이라는 거대한 존재와 조우한 이 순간, 그녀는 혈관을 타고 흐르는 전율 속에서 자신을 향해 엄습하는 천외(天外)의 대재앙과 험난한 인과(因果)의 굴레를 처절하게 직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간을 파괴할 듯 치열하게 대립하는 두 화신(化身)의 멸절(滅絕)적 기싸움을 목도하던 왕옥지는, 폐부 깊숙이 차오르는 만고(萬古)의 참담함과 무력감에 영혼이 분쇄되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아버님께서 그토록 목숨을 바쳐 귀환하고자 갈망했던 신성한 문파(門派)의 종착지가, 고작 계집년들의 사소하고 유치한 유희장에 불과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