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산월이 두 번째 강호행을 마치고 종남으로 돌아온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잠을 자는 것이었다.
무려 사흘 동안.
낙일방은 감동했다.
“장문사형께서 드디어 인간다운 생활을...!”
소지산은 혀를 찼다.
“저건 잠자는 게 아니라 기절한 거다.”
동중산은 진지하게 말했다.
“숨은 쉽니다.”
그 말에 모두 안심했다.
사실 진산월은 돌아오자마자 폐관에 들어가 육합귀진신공(六合歸眞神功)의 마지막 결락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천하의 어떤 절세신공도 혼자 깨달아서 완성하는 건 미친 짓에 가까웠다.
하지만 강호에는 늘 예외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예외의 이름이 진산월이었다.
폐관 칠일째.
종남 후산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암벽이 흔들리고, 숲이 요동쳤다.
낙일방은 질겁했다.
“사형이 산을 부수는 건 아니겠죠?”
소지산은 침착하게 말했다.
“부술 수도 있지.”
“왜 그렇게 태연하세요?”
“이젠 놀라는 것도 지친다.”
그때였다.
후산 깊숙한 곳에서 기이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지독한 악취.
마치 수십 년 묵은 시체를 삶아낸 듯한 냄새였다.
금교교가 얼굴을 찌푸렸다.
“우욱... 이게 무슨 냄새죠?”
누산산은 코를 막으며 투덜거렸다.
“종남은 왜 이렇게 더러워? 천봉궁 같았으면 청소 담당 제자를 반쯤 묻어버렸을 텐데.”
그 말에 종남 제자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특히 서문연상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누산산은 눈치가 없었다.
그녀는 원래부터 그랬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다.
장문인실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진산월의 마음은 흔들리는 강물 같았다. 그러나 그 흔들림 속에서 고금 제일의 천재성이 마침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종남의 절학들을 한데 아우르며, 스스로의 깨달음만으로 무림 역사상 그 누구도 완벽히 구현하지 못했던 육합귀진신공(六合歸眞神功)을 완성해 냈다.
그 순간, 그의 신형에 가공할 변고가 일어났다. 무협사상 가장 처절하고도 지독한 환골탈태(換骨脫態)의 시작이었다.
뿌드드득! 파각!
진산월의 전신의 뼈가 마치 맷돌에 갈리듯 으스러지는 소리가 장내를 채웠다. 칠공에서 시커먼 독혈이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왔고, 모공이란 모공에서는 수십 년간 쌓인 강호의 노폐물과 썩은 기름이 걸쭉한 타르처럼 흘러내렸다. 그 지독한 악취는 참으로 가공할 만하여, 장문인실 주변을 순찰하던 종남파 이대제자 세 명이 냄새를 맡고 그대로 기절해 버릴 정도였다.
피부가 누더기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순식간에 사방으로 튀어나갔고, 그 자리에서 백옥보다 더 고운 새 살이 돋아났다. 뼈가 깨지고 다시 붙는 고통 속에서 진산월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피눈물을 흘렸다. 한 시진 뒤, 오물 더미 속에서 서서히 일어난 진산월은 과거의 흉터투성이 얼굴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야말로 신선과도 같은 완벽한 미남자로 거듭나 있었다.
다만, 환골탈태의 여파로 장문인실 바닥 융단이 형체도 없이 녹아내린 것은 소박한 종남파의 재정에 다소 타격이었다.
진산월이 환골탈태하여 절세 고수의 위엄을 뿜어내고 있음에도, 천봉선자 중 가장 안하무인인 옥봉 누산산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대연무장에 모인 종남의 고수들 앞에서도 턱을 치켜든 채, 천하제일문파의 장문인인 신검무적을 향해 말했다.
"고매하신 대종남파의 진장문인, 얼굴 좀 반질반질해졌다고 유세 떠는건가요? 대충대충 하시지. 어차피 우리 덕에 사매도 찾았지 않나요?"
진산월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누산산을 바라보며 특유의 낮은 목소리 대꾸했다.
"누 소저, 강호의 법도가 그러치 않거늘... 그리 말씀하시니 종남의 장문인으로서 다소 난감하구려."
그 안하무인인 태도를 지켜보던 서문연상의 안색이 시시각각 분노로 물들었다. 서문연상은 본래 방취아에게서 어설픈 월녀검법을 배웠으나, 종남으로 돌아온 임영옥에게 직접 초식을 보완받고 사사하여 이미 일류고수 이상의 경지에 오른 상태였다. 서문연상은 참지 못하고 누산산의 앞을 가로막았다.
"누 소저, 일파의 장문인이시자 천하제일고수이신 진 장문인께 그 무슨 무례한 언사인가요? 제발 품위를 지키시지요."
서문연상은 처음에는 예의를 갖추려 했다. 그러나 누산산은 서문연상을 힐끗 보더니 코방귀를 꼈다.
"넌 또 뭐야? 종남파 이대 제자 주제에 어디서 감히 천봉선자에게 토를 달아? 저리 비켜, 기분 잡치니까."
완벽한 하대(下待)였다. 이에 비분강개한 서문연상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그녀 역시 똑같이 맞받아쳤다.
"오냐, 오만방자한 계집년이 매를 버는구나. 네년의 그 주둥아리를 오늘 종남의 검으로 찢어놓겠다. 당장 검을 뽑아라!"
서문연상은 안하무인 버릇이 출타한 누산산에게 공개비무를 신청하고 말았다.
모든 종남 고수들이 숨을 죽인 가운데, 서문연상과 누산산의 치열한 비무가 시작되었다.
서문연상은 말없이 검을 뽑았다.
월녀검법(月女劍法).
하지만 예전의 어설픈 검이 아니었다.
임영옥에게 다시 초식들을 사사받아 보완한 뒤 완전히 달라진 검이었다.
스릉.
검이 움직이는 순간.
누산산의 얼굴이 굳었다.
‘빠르다.’
아니.
빠른 게 아니었다.
아름다웠다.
달빛이 흐르듯 자연스럽고, 물결처럼 이어졌다.
누산산이 급히 검을 휘둘렀다.
쨍!
첫 합.
누산산의 손목이 저렸다.
둘째 합.
소매가 찢어졌다.
셋째 합.
머리끈이 끊어졌다.
누산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년이...!”
“입 조심해.”
서문연상의 음성이 싸늘했다.
“여긴 종남이다.”
콰아앙!
누산산이 전력을 폭발시켰다.
그러나 서문연상의 검은 더욱 차가워졌다.
달빛처럼.
그리고 잔혹하게.
퍽!
누산산의 몸이 비무대 밖으로 튕겨나갔다.
“커헉!”
피를 토한 누산산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서문연상이 천천히 검을 거두었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천봉궁은 예절도 안 가르치나?”
누산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
안하무인이던 누산산은 비명 횡사를 지르며 연무장 바닥을 사정없이 뒹굴었다. 서문연상의 맹렬한 기세에 밀려 옷자락이 갈기갈기 찢기고 얼굴이 피떡이 된 채, 누산산은 처참하게 박살이 나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던 천봉선자들의 반응은 실로 장관이었다.
백봉 정소소는 언제나 단정함을 유지하던 그녀의 얼굴이 핏기가 하나도 없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종남파의 무위가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영봉 금교교는 다음 차례가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감이 엄습했다. 전신을 가늘게 떨던 그녀는 결국 방광의 조절력을 상실했고, 샛노란 금의 치마 밑단으로 작은 물줄기가 흘러내려 바닥을 적셨다. 은은한 찌린내가 대연무장에 퍼졌으나, 종남의 고수들은 장문인의 위엄 앞에 감히 웃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비무가 끝나자, 환골탈태하여 범접할 수 없는 중압감을 풍기는 신검무적 진산월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음성은 묵직했고, 온 연무장을 얼려버릴 듯 차가웠다. 그는 하얗게 질린 백봉 정소소를 똑바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강호에는 이런 말이 있소.”
그 음성은 조용했지만 비무장 전체를 짓눌렀다.
“은은 마음에 새기고.”
그의 시선이 정소소를 향했다.
“원은 뼈에 새긴다.”
정소소는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진산월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천봉선자들이 사매를 보살핀 은혜는 갚았소.”
“종남은 엄쌍쌍을 여러 차례 구했고, 나 또한 혈봉 곡유유의 목숨을 구했지.”
“그러니 은은 끝났소.”
정소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산월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원.”
“첫 만남 때 정 소저는 종리궁도를 시켜 나를 납치했소.”
정소소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옥봉은 죄 없는 낙일방의 뺨을 때렸지.”
낙일방이 괜히 뺨을 만졌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했다.
진산월은 담담하게 말을 맺었다.
“방금 비무로 그 원도 끝났소.”
침묵.
무거운 침묵이 비무장을 짓눌렀다.
그리고 진산월은 마지막 말을 남겼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종남과 천봉궁이 엮이는 일은 없기를 바라오.”
“축객령이오.”
그 말에 누산산이 벌떡 일어났다.
“뭐? 우리를 쫓아낸다고?”
정소소가 급히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그만해!”
누산산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정소소는 알았다.
지금 더 입을 열면 정말 큰일 난다는 걸.
금교교는 속으로 간절히 빌고 있었다.
‘제발 조용히 해. 제발.’
피떡이 된 누산산을 부축한 정소소와, 걸어갈 때마다 치맛자락에서 찌린내를 풍기며 눈물을 흘리는 금교교는 종남 고수들의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도망치듯 종남산을 내려갔다. 그들의 뒤로 하얀 눈발이 날렸고, 진산월은 마침내 종남의 위엄을 천하에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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