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추절.

하늘에는 둥근 달이 떠 있었다.

달은 밝았고.

강호인들은 많았으며.

구경꾼들은 더욱 많았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은 천하가 기다리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서장의 패자 야율척.

그리고 천하제일문파로 거듭난 종남의 장문인 신검무적 진산월.

누가 이기든 강호의 판도가 결정되는 승부였다.


"많이도 왔군."


진산월은 담담히 말했다.

그의 곁에는 옥면신권 낙일방과 소벽력 응계성, 비천호리 동중산, 폭뢰검 전흠, 서문연상 등이 서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천봉궁의 선자

백봉 정소소.

영봉 금교교.

옥봉 누산산.

그리고 백모란, 조여홍, 석동 등 어둠 뒤에 숨어 강호를 주무르던 노괴들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야율척 역시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뒤에는 서장의 고수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누구도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오늘의 주인공은 두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야율척이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오."


진산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결판을 냅시다."


"그럴 생각이오."


짧은 대화였다.

하지만 장내의 공기는 이미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그 순간.

누군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모용봉이었다.


"..."

"..."

"..."


순간 장내가 조용해졌다.

모용봉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말했다.


"야율척. 네 상대는 나다."


정적.

엄청난 정적.

야율척은 생전 처음 보는 표정을 지었다.

황당함이었다.

진산월도 말없이 모용봉을 바라보았다.

낙일방이 응계성에게 속삭였다.


"저자가 지금 진심이에요?"


응계성이 중얼거렸다.


"나도 저게 농담이길 바란다."


누산산은 아예 대놓고 말했다.


"저 사람 어디 아픈가?"


정소소가 재빨리 그녀의 입을 막았다.


"조용히 해!"


사실 예전에는 모용공자가 야율척의 상대였다.

천하가 그렇게 생각했다.

모용봉도 그렇게 생각했다.

야율척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진산월이 나타났다.

무림구봉.

우내사마.

서장 십육사 십이기 이괴사불.

수많은 강자를 꺾고 올라온 끝에.

이제 강호 누구도 야율척의 상대를 모용공자라 생각하지 않았다.

야율척도 아니고.

모용봉 자신도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본인이 나왔다.

야율척이 물었다.


"너는 죽고 싶은 것이냐?"


모용봉이 웃었다.


"강호의 일은 해봐야 안다."


"그래."


야율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맞다."


그리고.

다음 순간.

모용봉은 죽었다.

쾅.

정말 그게 전부였다.

한 초.

아니.

반 초.

모용봉은 검을 뽑을 틈도 없이 가슴이 함몰된 채 날아갔다.

쿵.

시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숨이 끊어져 있었다.


"..."

"..."

"..."


모두가 침묵했다.

전풍개가 있었다면 말했을 것이다.

'예상보다 오래 버텼군.'

그때였다.

갑자기 누군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임영옥이었다.


"봉랑!"


털썩.

임영옥이 시체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다.

엉엉.

아주 서럽게.

장내가 얼어붙었다.

진산월도.

야율척도.

백모란도.

조여홍도.

전부 멍해졌다.

임영옥이 흐느꼈다.


"흑... 흑..."


"봉랑..."


"당신의 손길이..."


"그리워요..."


장내의 공기가 이상해졌다.

아주 이상하게.

낙일방이 입을 벌렸다.


"...예?"


응계성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참 둥글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둥글지 않았다.

전흠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손풍은 중얼거렸다.


"설마..."


"그 손길이..."


정소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당시 사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식은땀이 흘렀다.

금교교는 안경이라도 있었으면 벗고 닦았을 것이다.

하지만 없었다.

그래서 그냥 눈만 깜빡였다.

누산산은 가장 솔직했다.


"어?"


"진장문인... 나가리?"


정소소가 머리를 감싸쥐었다.


"제발 입 좀 다물어!"


방취아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사저를 잘못 알고 있었나?"


야율척은 진산월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아주 드문 동정심이 스쳐 지나갔다.

진산월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너무 무표정해서 오히려 무서웠다.

낙일방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응계성도 물러났다.

동중산도 물러났다.

심지어 야율척도 한 걸음 물러났다.


"사형..."


낙일방이 조심스럽게 불렀다.

진산월은 대답하지 않았다.

천천히 용영검을 뽑았다.

모두가 생각했다.

검정중원.

신검무적의 최강의 절초.

당연히 그것이 나올 것이라고.

그러나.

진산월이 펼친 검은 전혀 달랐다.

천하의 별들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야율척의 얼굴이 변했다.

처음으로.

진심으로.

위협을 느꼈다.


"이건..."


진산월이 말했다.


"전흠, 이게 무슨 초식인지 알아보겠느냐?"

전흠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성라검법 중의 낙성빈분(落星繽紛)이군요. 이 초식에 이런 위력이 있을 줄은 

정녕 상상도 못했습니다."


강호에서 성라검법은 유명했다.

나쁜 의미로.

삼락검보다 아래.

유운검법보다 아래.

심지어 일부 제자들은 몰래 이렇게 말했다.

"성라검법은 연습용이다."

그 검법을.

신검무적 진산월이 펼쳤다.

전흠은 몸을 떨었다.

왜냐하면.

그 검법을 평생 수련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풍개.

그의 할아버지.

종남에서조차 바보 취급받던 노인.


"왜 아직도 성라검법만 익히십니까?"


"그거 버리세요."


"그걸로 누굴 이깁니까?"


평생 그런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지금.

진산월의 검 끝에서 펼쳐지는 성라검법은 달랐다.


별이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아앙!

야율척의 몸이 갈라졌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이...... 이렇게 무서운 검법이 있었다니......'


서장의 패자.

야율척.

사망.

장내는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전흠은 무릎을 꿇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할아버지..."


아무도 웃지 않았다.


"보셨습니까."


전풍개는 없었다.

하지만 전흠은 분명 느낄 수 있었다.

평생 비웃음받던 검법.

평생 무시당하던 노인.

평생 인정받지 못했던 신념.

그 모든 것이.

방금.

천하 최강자를 죽였다.

전흠은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할아버지."


"장문사형이 해냈습니다."


진산월은 피 묻은 용영검을 검집에 꽂아 넣으며, 여전히 가면을 씌운 듯 무표정한 얼굴로 허공의 한 점을 응시할 뿐이었다. 종남파의 군림천하(君臨天下)는 달성되었으나, 그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깊은 고독과 씁쓸함이 차가운 가을바람과 함께 스치고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