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싸움은 끝났다.
정립병의 후예라 불릴 만한 진산월.
매종도의 후예라 불릴 만한 조익현.
두 사람은 각기 다른 길을 걸어왔으나 결국 같은 곳에 도달했다.
한 사람은 검정중원을 완성했고.
한 사람은 미인상의 무학을 바탕으로 대라삼검을 완성했다.
그것은 단순한 승부가 아니었다.
매장원과 정립병.
당대 최고였던 두 천재가 남긴 숙제가 이백 년 가까운 세월을 돌아 다시 채점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승자는 진산월이었다.
하지만 진산월은 승리의 기쁨을 오래 느끼지 못했다.
중추절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추절.
달은 둥글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여들었다.
강호는 언제나 구경거리를 좋아했다.
특히 누군가 죽을지도 모르는 구경거리라면 더더욱.
야율척은 이미 와 있었다.
그는 달빛 아래 서 있었다.
그 모습은 여전히 거대했다.
마치 산처럼.
아니.
산보다도 더 묵직하게 느껴졌다.
진산월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대라삼검을 익혔소?"
야율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렇다면 오늘 나는 검정중원을 쓰겠소."
"..."
"당신은 대라삼검."
"나는 검정중원."
진산월의 눈빛이 깊어졌다.
"결국 오늘의 승부는 매종도와 정립병의 승부이기도 하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야율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진산월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그러다가 문득 웃었다.
희미하게.
정말 보기 드문 웃음이었다.
"그런가."
"그렇게 생각하는가."
진산월은 대답하지 않았다.
야율척은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있었다.
그리고 아주 먼 곳에 아난대활불과 모용단죽이 서 있었다.
"나는 한때 그들을 부러워했소."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진산월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들은 평생 최정상에 있는 무인들이었다."
"모든 무림인들에게 추앙받는 삶이었지만 그 삶은 무인으로써 본인들의 싸움을 한 삶이 아니었소."
야율척은 담담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오."
"아난대활불도 아니고."
"모용단죽도 아니오."
그의 시선이 멀리 있는 한 노인을 스쳤다.
"우리는 평생 누군가의 그림자 속에서 살았소."
"석동."
"조익현."
"그들의 집념."
"그들의 미련."
"그들의 승부."
야율척의 음성은 차분했지만 이상하게도 씁쓸하게 들렸다.
"우리는 싸웠소."
"수십 년 동안."
"하지만 정작 우리 자신의 싸움은 아니었소."
"..."
"누군가의 승부를 대신 싸워준 것뿐이오."
달빛 아래.
모용단죽의 얼굴이 잠시 흔들렸다.
야율척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매종도의 대리인이 아니오."
그 말은 짧았다.
그러나 누구보다 강했다.
"그리고 당신도 정립병의 대리인이 아니오."
진산월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매종도의 검법 하나로 나를 설명할 수는 없소."
야율척은 자신의 가슴을 툭 쳤다.
"나는 야율척이오."
"무인들의 승부는 무공만으로 결정되지 않소."
그 순간.
장내가 조용해졌다.
"무공은 중요하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오."
"집념."
"기백."
"심기."
"삶."
"그 모든 것이 검 끝에 실리지."
"그것이 무인이오."
진산월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상했다.
정말 이상했다.
왜냐하면.
그 말은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자신이 낙일방에게 했던 말.
응계성에게 했던 말.
서문연상에게 했던 말.
전흠에게 했던 말.
그리고.
유소응에게 했던 말.
무공만 보지 말라고.
무인은 초식으로만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그 말을.
지금 야율척이 하고 있었다.
진산월은 문득 깨달았다.
그는 평생 야율척을 적으로 생각했다.
넘어야 할 벽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생각보다 닮아 있었는지도 몰랐다.
"하하..."
진산월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야율척도 웃었다.
"이제야 이해했소?"
진산월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그것이면 충분하오."
두 사람은 동시에 검을 들었다.
그리고.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 이후의 일은 누구도 설명할 수 없었다.
검정중원이 펼쳐졌다.
대라삼검이 펼쳐졌다.
그러나 그것은 검법의 대결이 아니었다.
검정중원의 초식이 대라삼검을 깨뜨리고.
대라삼검의 변화가 검정중원을 무너뜨리고.
수없이 부딪혔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의 눈에 보인 것은 초식이 아니었다.
집념이었다.
야율척이 살아온 세월.
진산월이 버텨온 세월.
종남의 부흥.
서장의 자존심.
수많은 죽음.
수많은 실패.
수많은 후회.
그 모든 것이 검 끝에서 부딪혔다.
쾅!
천지가 흔들렸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웃었다.
전흠은 이를 악물었다.
낙일방은 숨도 쉬지 못했다.
임영옥은 두 손을 모았다.
누산산조차 말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지났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진산월은 깨달았다.
정립병.
매종도.
검정중원.
대라삼검.
그 모든 것은 중요했다.
하지만 동시에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길이었다.
목적지가 아니었다.
그는 살아오면서 수많은 검을 보았다.
종남의 검.
구대문파의 검.
무림세가들의 검.
그리고 사람을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삶.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이어졌다.
설명할 수 없는 무엇.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엇.
무학이라기보다는.
삶에 가까운 무엇.
진산월은 자신도 모르게 검을 내질렀다.
아주 평범한 일검.
그러나 동시에.
그가 살아온 모든 시간이 담긴 일검.
달빛이 흔들렸다.
야율척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리고.
그 순간.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
누가 이겼는지.
누가 졌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먼 훗날.
강호의 노인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이렇게 말했다.
중추절의 그날.
진산월과 야율척은 싸운 것이 아니다.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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