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글레르가 말하던 "주의"는 이제 마음의 기능이 아니라, 분배되는 자원에 가깝다.
사람은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남는 주의의 찌꺼기 위에 이유를 덧칠한다.
그래서 의견은 종종 결론이 아니라, 방금 본 것의 잔상처럼 나온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근데 우리는 침묵을 못 한다.
침묵은 빈약함으로 읽히고, 유보는 패배로 처리된다.
결국 남는 건, 말의 내용이 아니라 말의 자세다.

타인은 지옥이다.

요즘 지옥은 타인이 아니라 타인의 반응이다.
추천, 비추천, 캡처, 박제.
문장은 진술이 아니라 처신이 된다.

지식은 힘이다.

지식이 힘이던 시대가 있었고,
지금은 지식처럼 보이는 게 힘이 되는 시대다.
단어 몇 개, 인용 몇 줄, 이름 하나.
그걸로 말이 갑자기 단단해 보인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젠 순서가 바뀐다.
존재가 먼저고, 생각은 나중이다.
먼저 떠오른 결론에 그럴듯한 이유가 붙는 순간, 그게 "사유"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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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갤질하다 보면 흔히 보이는 문장 유형.
댓글은 너 책좀 읽었냐? 등으로 지들끼리 인정협회 돌리고있음

GPT는 쉽다. 그래서 GPT로 썼다 하면 다들 무시한다.
그러니 GPT를 쓰되, 포장은 고전의 이름을 빌린다.
고전도 너무 많이 우려먹어서 맛이 떨어지면,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줘" 한마디 더해서 새로운 맛을 더하면 된다.

한병철 같은 이름이 그런 맛이다.
나는 한병철이 누군지도 모르지만, 한병철을 아는 사람은 뽕맞고 더 끄덕인다 ㅋㅋ

중요한 건 글쓴 놈이 진짜로 읽었냐가 아니다.
읽는 이가 스스로 "나 좀 아는 편"이라고 믿을수록 더 잘 걸린다는 거다.
모르는 건 부끄럽지만, 어설픈 확신은 안 부끄럽거든.
그래서 우매함의 봉우리가 제일 위험한 낚시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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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문단도 마찬가지,


비판을 위한 예시문단도 비판 없이 삼켰다면,
지금이라도 한 번 멈추고 반성해라.
GPT를 비웃을 자격이 아니라, 딸깍에 가장 잘 속는 체질부터 고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