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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서사가 유독 주목받고 있지만, 솔직히 그 정도의 스토리냐 하면 잘 모르겠음. 텔링이 잘 된 거지.

아니, 물론 비와이 입장에선 수십억 날렸으니 좆같은 거 맞지.


근데 장르적 소재로서는 얘가 재산 날려먹은 게 힙합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엄청 독보적인 건 아니잖아.


둘 다 흔하다면 흔해도, 사업 말아먹는 것보다 씬 내에서 여러 상호작용을 통해 커리어가 휘청이는 행보가 훨씬 음악적으로 공감받고 풀어내긴 좋지. 혼자 어디서 돈 다 까먹은 게 리스너한테 그 정도 아이템은 아님.

물론 힙갤러들에겐 손심바가 엮였으니 S급 소재긴 하겠다만... 각설하고


결국 은근히 단조로운 서사 탓에 그에 대한 메세지도 기대보단 단조로웠단 거임. "돈도 기회도 다 날렸네 씨발 내 실패를 비웃는구나 후회해야 할까 내 선택을 씨발 씨발..." 정도의 맥락이 중반부까지 일관됨.

뭐 종교적 신념의 갈등이라던지 뭐가 꽤 더 있긴 했지만
이후의 극복과 결론까지 포함해, 내겐 엄청나게 특별하게까지 와닿지는 않았음.


이건 어디까지나 서사가 가장 주목받는 요인인 상황에 공감은 못 하겠다는 거지, 당연히 10년간의 하락세와 수십억을 날린 행적은 충분히 크긴 함.

충분히 큰 서사인데도 가장 주목받을 요소까지는 아니라고 보는 이유는

다른 요소들은 그보다도 더더욱 크게 와닿기 때문임.




나는 창모의 Underground Rockstar나 식케이, 릴 모쉬핏의 K-FLIP을 발매일부터 고평가했던 기억이 있음.

내가 맞았다며 으스대려고 하는 말이 아니고... 내 평가 기준에 대한 이야기임.


음악은, 그 음악이 중시하는 목적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럼에도 통상적으로 가장 우선시되는 본질이 청각적 만족감에 있음.

그리고 비와이의 이번 앨범에서도, UGRS와 케이플립에서도 그 목적성을 우선한 의도는 명료하게 티가 나지.

그렇다면 여기서도 최우선 가치는 당연히 청각적 쾌감일 테고.


그래서 UGRS와 케이플립이 온갖 현학적 이유로 조롱당할 때, "아니 씨발 근데 듣기가 좋잖아"라며 반발해왔던 거임.

그게 다른 부차적 요소들보다 앞서는, 의도된 집중 방향일 테니까.



그리고 [POP IS CRYIN']의 직관적으로 와닿는 청각적 쾌감은 결코 케이플립이나 UGRS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함.

대중친화적 앨범은 아닌 듯해 그 여론도 궁금했는데, 적어도 이 사운드에 대한 감상만큼은 꽤 흔히 공감을 이루는 것 같았음.

지속가능성, 혁신성, 독창성 등을 떠나 가장 원초적인 "듣기에 상당히 좋다"라는 명제 말임.



'듣기 좋다는 가치를 위해 만든 앨범'은, '듣기 좋다'는 이유만으로 명반이 될 수 있음.

UGRS, K-FLIP은 다소 논쟁적이겠지만 보편적으로 최소한 수작, 어쩌면 명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음.

물론 두 앨범에 사운드 이외의 가치가 없다는 게 아님. 하지만 높은 평가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것임.


팝이크는 위 사례들과 그 궤를 같이하면서도,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음.

다른 많은 요소가 사운드에 뒤지지 않기 때문임.


서사가 부족했나? 아님. 주요 고평가의 원인이 잘 풀어낸 커다란 서사임.

혁신성이 없었나? 아님. 드물게 불호의 원인이 되기도 함.

메세지가 빈약했나? 아님. 오히려 담담한 가사에도 강하게 전달되는 감정적 요동이 피로감의 원인으로 지목될 정도임.

완급조절이 부족했나? 아님. 이건 나도 예상 못한 부분인데, 높은 퀄리티의 강렬한 사운드로 귀를 털어버리는(?) 앨범을 상정했으나, 정작 내놓은 것은 감미로움과 고조됨 사이의 물결치듯 매끄러운 연계였음. 앨범을 통으로 여러번 돌렸다는 후기들로 드러나는 이 대목이 가장 큰 진보같음. "비와이 앨범은 만듦새는 좋은데, 자주 듣기 힘들어..."라는 고질적 약점을 극복해낸 것.

유기성이 부족했나? 아님. 앨범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같음. 되려 따로 들으면 빛이 바래는 트랙은 꽤 있음.

트랙간의 편차가 심했나? 아님. 저점이 상당히 높은 구성임. 뱅어가 없어 흥행성이 약하다는 지적은 동의하진 않으나 어느 정도 일리가 있음.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뭉뚱그리는 모호한 표현이지만

흔히 말하는 그놈의 '예술성'의 영역에서도 높은 평가를 내릴 만하고, 실제로 받고 있다는 거임.




한번 상상해보면 어떨까 싶음.


식케이가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전담해 커다란 서사를 유기적으로 담아낸, 모든 트랙의 저점이 보장되는 K-FLIP을.


앨범의 구성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높은 완결성의 기승전결을 가지고, 트랙간 편차가 축소되었으며, 창모에게서 예상하지 못한 새로움과 이야기를 갖춰 완성된 UGRS를.



그랬다면 그 수준의 사운드 퀄리티에도 불구하고, 계속해 다른 가치들이 입에 오르며

발매 직후부터 다수의 리스너들에게 찬사를 받았을 거임.

빈지노와 이센스라는 명품 브랜드 이외엔 극히 드물게도, 평이 정돈되기 전 초기 단계부터 상당한 호평이 주류를 이뤘을 거임.

그렇지 않음? 지금 이 앨범처럼 말임.

(물론 이건 팝이크가 예시로 든 가상의 명반들과 동등하다는 의미는 아님. 케이플립은 이미 넘치는 혁신성을—문익점 행동을 통한 국지적 혁신을 인정하는 시각에서— 가지고 있고, UGRS도 이미 충분한 종합 예술성을 갖추고 있음. 더 앞서는 지점도 있고. 이런 단순 비교를 직접 적용할 수는 없음)



극단적이고 과장된 비유긴 했다만

체감 가능한 강점들이 더해지고 많은 결점이 보완된 세계선의 두 앨범이 연상된다는 건 가감 없는 사실임.


그리고 난 내가 그런 작품을 명작이라 부르지 못할 만한 음악적 풍요 속에 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음.

이 앨범은 명반임. 적어도 내게는 그렇고, 이후 많은 이들에게도 그러리라 확신함.


한때 대한민국의 꼭대기에 섰던 예술가 비와이의 지난 10년간의 몰락이

정확하고 투명한 자기인식과 함께 부족함 없이 음악으로 치환된 성공적 재기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