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始祖)는 남궁원청(南宮元淸). 함열현(咸悅縣) 사람으로 고려 광종(光宗) 12년(서기 961년 3월 14일)에 출생. 경종(景宗) 1년(서기976년)에 동당시(東堂試)에 급제하여 비서랑(秘書郞)이 됐다. 같은 해 김행성(金行成) 등과 함께 송(宋)나라에 사신(使臣)으로 갔다가 국자감(國子監)에서 공부하고 이듬해(977년) 대과(大科)에 급제한 뒤 귀국하였다.

성종(成宗) 7년(998년)에는 당시의 문하시중(門下侍中) 경주인(慶州人) 이총섬(李寵暹)과 해주오씨시조(海州吳氏始祖) 오인유(吳人裕) 그리고 이윤관(李允寬) 등과 함께 사직(社稷), 오묘(五廟), 국자감(國子監) 등의 창건을 주청(奏請)하므로써 이듬해 대묘(大廟)를 짓기 시작하여 성종 10년(991년) 처음으로 사직을 세웠으며 성종 11년(992년)에는 대묘가 낙성되고 국자감이 창립되었다. 성종 13년(994년)에는 대장군(大將軍)으로서 여진적(女眞賊)을 백두산(白頭山)밖으로 물리친 공으로 함열백(咸悅伯: 구감물아현(舊甘勿阿縣)에 封해졌으며 관직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 따라서 후손들이 함열(咸悅)을 관향(貫鄕)으로 삼았다.

족성서(族姓書)에 따르면 남궁씨는 복성(複姓)으로 본래 희씨(姬氏)였는데 은(殷)나라 말에 주문왕(周文王)의 사우(四友) 중 남궁자(南宮子)라는 분이 주(周)나라 건국에 기여하고 남궁에 살았으므로 성을 남궁(南宮)이라 하였다 하며, 시조 남궁원청(南宮元淸)의 원조(遠祖)는 일찍이 조선(朝鮮)으로 건너와 사도(使徒)로서 백성들에게 시(詩). 서(書). 예(禮). 악(樂)을 가르쳤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