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와 치우가 어느 집단의 조상인지는 모른다.
치우 집단의 직계후손이 점토대토기족이 아닐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황제 집단의 직계후손이 화하족이 아닌 전혀 다른 민족일지도 모른다.
두 세력 간, 충돌의 규모가 거대했고, 치우가 전사 혹은 사로잡힌 장소가 고원의 끝자락인 탁록이라면...
주요 전장은 내몽골 초원바다, 고원지역이 아니었을까?
두 가지 분명해 보이는 건,
1. 묘족의 신화가 과장되었다는 것.
2. 5000~4500 ybp, 서북방의 고원지대에서 청동기 세력 간의 충돌이 있었다는 것.
치우... 그리고 황제의 후손들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PS : 치우가 압송되어 간 루트는 (이미지에 표시된) 탁록 → 산시 성이다.
한반도 지역의 청동기 시대의 시작 시점으로는 7차 국정 국사교과서 초판까지는 기원전 10세기경이라고 나와있었는데, 7차 국정 교과서 개정판(2006년) 이후로는 기원전 2000~1500년경이라고 나온다. 용산문화권에서 나왔다던, 가장 오래된 그 청동기의 연대도 대략 이쯤임...
① Afanasievo 청동기 세력의 연대는 3500~2500 B.C 임. ② 이와 비슷한 시기, 토하라 인들이 감숙성 서부에서, 아마도 타림분지~곤륜산에서, 확장하고 있었고. (황제 헌원이 타림분지, 곤륜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의 원인인 듯.) (이밖의 좀 더 다양한 북방 청동기 세력들 간의 각축전이 벌어졌던, 수많은 전쟁터, 격전지 중의 하나가 탁록임.) 따라서, 치우 vs 헌원은 중앙아시아 혹은 페르시아 청동기 세력 간의 충돌이라고 봐야 옳음.
치우 집단이 아파노시에보 문화권과 통하는 [초원길]을 꽉 잡고 있었음. 연전연패하던 헌원 집단 앞에 나타난 곤륜산의 사람들... 구천현녀... 기묘한 인연... 그 이후, 헌원 집단의 승리... 5500~4500 ybp 무렵에 서로 다른 루트를 통해 기술과 힘 얻은 두 청동기 세력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두 개의 루트말곤 존재하지 않는다. 지나족 최초의 청동기는 기원전 3100년경에서 기원전 2700년경에 이르는 마자야오 문화 유적에서 발견. (타림분지~감숙성의 바로 옆동네임.)
그의 나라를 북동에서 내려온 치우(蚩尤)의 세력이 늘 노리고 있었다...? https://namu.wiki/w/%ED%99%A9%EC%A0%9C(%EC%A4%91%EA%B5%AD%20%EC%8B%A0%ED%99%94) 북동쪽에서 내려온 치우와 곤륜산, 타림분지, 감숙성 일대의 헌원이라 추측해 본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기원전 6천년 경이 되어서 말을 탈것으로 이용하였다고 보고 있으며, (아마도 전차, 수레) [유물로는] 기원전 3500~3000 경이 가장 오래되었다. (이건 승마를 의미함) http://www.nongup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9619 유목경제는 농업경제보다 토지 이용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정착적인 농업경제에 비해, 사람과 가축을 부양하기 위해, 보다 많은 양의 토지를 필요로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