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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hankwu/90047801321 출처

http://contents.history.go.kr/front/nh/view.do?levelId=nh_002_0030_0040_0030 고태산의 구체적인 위치. 요서.


마성자 O-SK1702 추정 (고태산과는 상이한 유형, 동시대 공존)

고태산 O-M117, N-TAT 추정


마성자의 M188이 동북쪽으로 진출,

길림 토착의 사람들(서단산 두개골은 퉁구스계+한국인)과 결합하여 서단산문화, 이후 부여 남쪽구역의 일부가 됨.

http://lyuen.egloos.com/5577997


<요령성 본계시 환인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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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수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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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자문화 후기단계의 유물과 유사한 대이수구 유형...

요동의 마성자가 북상하여 서단산으로... 부여의 일부로...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716521

마성자 : 기원전 20~12세기


http://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05311807&localCode=krcn

대이수구 : 기원전 12~5세기


http://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05311808&localCode=krcn&nodeId=B1%2F1

대전자 : 기원전 4 ~3세기 (석기→청동기,철기)


http://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05305440&localCode=krcn

망강루 : 기원전 2~1세기 중엽부터... 그리고 고구려


언제 한번 그림으로 그려 놔야겠盧...


일부 중국 사학자들과 북조선의 사학자들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보장왕 대의 기사(27년 음력 2월 :

“고(高)씨는 나라를 세운 지 이제 900년이 된다.”)를 내세워 고구려의 건국시기를 기원전 200년으로 추정한다.[6]

위와 같은 《삼국사기》의 기록을 종합해 볼 때, 주몽동부여에서 도망친 후, 졸본부여의 귀족인 연타취발과 혼인관계를 맺은 후,

졸본부여군주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고구려 900년 역사'라는 보장왕 대의 기사는,

주몽 이전의 졸본부여역사까지를 합친 것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주몽(朱蒙)이 비류수(沸流水)에 채소잎이 떠내려옴을 보고 상류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아 사냥을 하면서 비류국을 찾아가 국왕 송양(松讓)을 만났는데, 송양이 말하기를 우리는 여러 대 동안 이곳에서 왕 노릇을 해왔으나, 땅이 작아 두 임금을 용납하기 어려우며

그대가 도읍을 정한 지 오래지 않으니 우리의 부용(附庸)이 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또한 기원전 36년에는 비류수 상류에 있던 비류국(沸流國, ‘송양국’이라고도 한다)의 왕 송양(松讓)에게

활쏘기 경쟁으로 이겨서 항복을 받아내어 ‘옛 땅을 회복했다.’라는 뜻의 고구려말인 다물(多勿)로 개칭하고, 송양을 그곳의 도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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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

강력한 선주민 세력과... 고구려 건국세력인 O-SK1702 집단 간의... 아슬아슬한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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