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면 22. : 『송눈평원지역 청동기문화의 보고 백금보』펌
초기 북부여 계통의 삼족토기가, 하가점하층이나 고태산문화의 것들과는 별로 비슷하지 않고,
오히려 북방초원계통, 자바이칼 드보르초이,
하가점상층문화의 삼족토기와 어느 정도, 그나마 통하는 면이 보임.
자바이칼 판돌묘문화의 이른 시기유형인 드보르쯔이문화 출토의 유물은
샤자덴상층문화와 강한 유사성을 보인다.
따라서 판석묘문화와 주변의 비슷한 문화의 비교연구는
동북아시아 청동기시대의 특징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줄 것이다.
판석묘의 매장주체에 대한 형질인류학적 분석결과는 대몽고인종에 속한다는 일관된 결론이 나온다.
머리형태는 단두(短頭), 고두(高頭)이며 두개골의 여러 계측치의 결과에서도 유럽인적인 요소는 전혀 없다.
따라서 판석묘문화의 주체는 이 지역 토착 몽고인종이라고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부여 (夫余 / 扶餘)
夫 = *p(r)a , *ba
扶 = *m-[p](r)a , [p](r)a
余 = *la
餘 = *la
濊 = *qʷʰˤat (캇, 캣, 갯)
夫余 / 扶餘 = p(r)ala, bala → 펄ㅏ, 뻘ㅏ 벌ㅏ → 벌, 펄
濊 夫余 → 갯가의 벌판, 갯벌, 개펄
예족들의 부여는, 갯벌, 개펄, 송화강 일대 기슭에 거주하며 돼지를 길렀던, Proto-Koreanic 농경인들이었다고 추정.
고리국, 북부여 최상위 지배계급으로 추정되는 N1a-TAT의 언어는 좀 달랐을 수도.
초원, 북방에서 내려왔을 이들이, 토착 Koreanic계 언어-문화에 동화된 걸 보면,
당시 부여 땅에 O1b2 인구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예상해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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