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비에는

예족과 한족을 분명하게 구분짓고 있다.


그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예맥족은 하나의 정체성으로

통일되지 않았음을 알수있다.


예족은 한반도와 만주에 널리 분포해 살던

원주민 개념이고

맥족은 우리가 아는 동이족이며

요서지방에서 선진문물을 가지고

동쪽지방으로 진출한 세력이다.


밑에글에도 적었지만 예족은 부여족이며

o1b2계열이 주류고,

맥족은 요서에서 중국계 농경문명 O2세력과

북방유목계통 C계통이 만나 이루어진 세력이었다.


이들은 앞선 문물과 군사력을 가졌기에

예족들은 그들에게 만주,한반도에서 주도권을 빼았겼고

지배층에서도 밀려났다.

그리곤 남쪽으로 계속해서 밀려났다.


광개토대왕의 5만 남정은 결국 맥계통의 고구려군과

한반도 남부에 남아있던 가야,진한세력의 예족들과의

대결이었다.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구원했다고 하지만 당시 신라는

도시국가에 불과했으며 서라벌을 제외한

낙동강 유역은 대부분 가야지역이었으며

이들은 대부분 예족,즉 왜인이었을것이다.


광개토대왕이 임나가라 종발성을 토벌한 명백한 이유는

당시 가야지역중에서도 금관가야(김해)지역이

일본열도와 가장 많은 교류가 많은 항구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김해지역을 통해 가야에서 일본열도로 건너가기도 하고

반대로 일본열도에서 세력을 키워 한반도 남부로

진출하기도 했을것이다.


이것이 지금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의 실체다.


즉, 당시 예족과 맥족이 구분되던 시대에

광개토대왕의 5만대군은 이 예족,왜인들을 토벌하기 위하여

김해까지 대군을 이끌고 내려온것이다.


그리고 왜가 백제와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고 하는것 또한

설명이 충분히 가능할것이다.


당시 신라는 경주 중심의 도시국가에 불과했으므로

낙동강 유역의 왜인들이 얼마든지 공격가능했을것이고

백제는 해석에 따라 다르다. 백제의 지배층이 예족이라면

백제+가야+왜의 연합이 설명되고 고구려와의 대립각도

설명이 어느정도는 될것이다.

그리고 왜가 황해도까지 진출하여 고구려를 공격한 일도 있는데

이또한 백제의 지원이 있었거나 한반도 동부에 있던

동예나 옥저의 잔존세력들의 공격으로 설명이 가능할것이다.


반대로 백제의 지배층 또한 맥족이었을 가능성도 충분한데

그렇기 때문에 백제 지배층은

부여의 정통성을 강조했을 가능성이 있다.

백제 후기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는 일도 있었는데

이것은 그들이 맥족이지만 예족들의 민심을 다스리기 위해

예족의 뿌리인 부여를 강조한것이라고 봐야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