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6년 문종 10년 10월 日本國에서 사신을 보내왔다
문종 27년 7월 日本國人 왕칙등 42인 나전 외에 12가지 물건을 진상
문종 27년 7월 일기도(규슈 나가사끼)구당관 등정안국 등 33인 방물을 진상
문종 27년 11월 日本國 에서 예물과 명마를 헌상
문종 28년 2월 日本國 선두 중리 등 39인 특산물을 진상
문종 29년 4월 日本國 오옹에 등 18인 특산물을 진상
문종 29년 6월 日本人 조원. 시경등 12인 특산물을 진상
문종 29년 7월 日本國 상인 59인 고려에 도착
문종 30년 10월 日本國 승속(승려와속인) 25인 불상을 헌상
문종 33년 11월 日本國 신통 등 소라.해조 등을 흥왕사에 진상
문종 34년 9월 日本國 축전주에서, 방물을 헌상, 살마주(가고시마)에 사신을 보내와 헌상
문종 36년 11월 대마도에서, 방물을 헌상

1084년 선종 원년 6월 日本國 축전도의 후지와라,,수은을 헌상
선종 2년 2월 대마도주 구당관, 감귤을 진상
선종 3년 3월 대마도주 구당관, 방물을 진상
선종 4년 3월 日本 상인 중원.친종 등 32인 특산물 진상
선종 4년 7월 대마도의 원평 등 48인 수은.진주.보도.우마 등을 헌상
선종 6년 8월 다자이후의 상인, 수은.진주.궁전.도검 등을 진상

예종 11년 2월 日本國에서 감자(감귤)를 진상

고려사(高麗史)】

일본에서 내왕하는 선박을 일본인들이 '진봉선(공물을 바치는 배)'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공물을 바친다는 뜻으로 진봉이란 용어 사용은 이미 오래되었으며 일본인이 물품을 진봉하는 항례적인 법규가 제정되었다.

때로는 고려에서 주는 하사품을 노리고 일본인들이 고려에 진봉하기 위하여 상호간에 경쟁이 심하여 서로 싸우는 폐단까지 생기자, 고려에서는 진봉 그 자체에 대하여 좋아하지 않은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경향은 일정 기간 내에 일본 상선의 출입선수 횟수에 대하여까지 제한을 두게 만들었다.

독자문명이 없는 미개 조몬국 고려에 조공바치며 문명 끝자락 따라오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