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가 보는 일본 스모(相撲)의 결정적인 형태는 몽골 제국(원(元) 침략(1274·1281) 이후에야 완성됐다.
그 전에는 “스모”라는 이름은 있었지만,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놀이·의례였다.
아래에 시대별로 아주 간단히 정리해줄게.

시대
스모의 모습
복장·규칙·장소
몽골 영향 여부
고대나라·헤이안 시대 (812세기)
신토 의식 속의 힘자랑 (神事相撲)
거의 알몸이거나 흰 천 한 장 두름 도장(土俵) 없음, 규칙도 거의 없음
거의 없음
가마쿠라 시대 초기 (1185~1274, 몽골 침략 직전)
무사들의 훈련 + 민간 놀이
여전히 허리천 하나, 흙바닥에 원 그리지도 않음 사진·그림 자료 거의 없음 (가장 오래된 그림은 13세기 말 이후)
거의 없음
몽골 침략 직후 ~ 가마쿠라 말기 (1280~1333)
갑자기 바뀜
둥근 도장(土俳) 등장 소금 뿌리는 의식 시작 머리 묶는 마게(髷) 스타일 급속히 보급 씨름선수 전담 직업화 (力士)
★★★ 결정적 시기 ★★★
무로마치에도 시대 (1419세기)
지금과 거의 똑같은 스모 완성
지붕 달린 도장, 마와시(廻し), 심판(行司), 계급제(幕内·十両) 등 모두 정비
몽골-조선-류큐-아이누까지 섞인 혼혈 문화


핵심 증거들

  1. 도장(土俵)의 기원
    몽골 씨름(부흐)의 경기장은 원형이고, 경기 시작 전에 소금을 뿌린다.
    일본에서 둥근 도장 + 소금 뿌리는 습관이 기록상 처음 나타나는 건 1300년대 초반이다. (몽골 침략 20~30년 뒤.
  2. 마게(髷) 머리
    몽골 씨름선수들은 전통적으로 머리를 길러서 위로 묶는다(자랑스러운 전사의 상징).
    일본에서는 1270년대까지만 해도 무사들은 삭발하거나 짧게 깎았는데, 1300년대부터 갑자기 마게가 유행 → 스모 선수 필수 스타일이 됨.
  3. 당시 몽골·
  4. 원나라의 씨름 형태 (1274·1281년 당시)
    • 경기장 : 원형, 흙바닥에 원 그려놓음

    • 복장 : 알몸에 가죽 또는 천으로 된 좁은 띠(조드락)만 두름 → 오늘날 마와시(廻し)의 원형
    • 승리 조건 : 상대를 엉덩이 또는 무릎 위 부위 제외하고 땅에 닿게 하면 승리 → 일본 스모와 100% 동일
    • 국가적 행사 : 나담(Naadam) 축제에서 황제 앞에서 씨름 대회 → 일본에서도 에도 시대에 장군 앞에서 스모 대회 열림

  5. 가장 결정적인 역사 자료
    《몽고침범일본일기(蒙古襲来絵詞)》 1293년 제작
    → 몽골군 그림을 보면 일부 병사들이 머리를 위로 묶고 있고, 알몸에 좁은 띠만 두른 모습이 나온다.
    일본 무사들은 아직 삭발인데, 이 그림 이후 50년 안에 일본 전역에 마게 + 마와시 스타일이 퍼진다.

결론 한 줄
오늘날의 일본 스모는
“고대 일본의 신토 의식” + “몽골 제국 씨름(부흐)” + “조선·류큐의 민간 씨름”이
몽골 침략이라는 폭발적 접촉을 통해 융합된 혼혈 종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