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의 산을 걷는 사람들
이족과 호랑이 그리고 피 속 어딘가의 오래된 흔적

운남과 사천의 산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아스팔트로 다 덮이지 못한 오래된 길들이 있다. 구름이 골짜기 안으로 흘러내리고, 비가 그치면 붉은 흙 위로 안개가 다시 피어오른다. 그 산허리 여기저기에 이족의 마을이 붙어 있다. 멀리서 보면 그저 돌집과 나무집이 모여 있을 뿐인데, 가까이 다가가면 다른 무엇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 있다. 호랑이 얼굴이다.

이족에게 호랑이는 맹수가 아니라 친척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먼 윗대의 어른이다. 루오루오(RuRu 魯魯, 貊族) 라고 불리던 계통에서는 집 안 벽에 어머니 호랑이 조상 초상화를 걸어 두고 그 앞에서 제를 올린다. 장작불과 함께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호랑이의 눈이 반짝이고, 사람들은 술잔을 올리며 아이의 건강과 집안의 복을 빈다. 사진으로 보면 단순한 민속 장식 같지만, 그 집 사람들에게는 명단에 이름이 기록된 조상과 다르지 않은 존재다.

정월이 되면 마을 전체가 호랑이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변한다. 남자들은 호랑이 얼굴을 본뜬 가면을 쓰고 북을 메고 나가고, 여자들은 호랑이 무늬가 수놓인 옷을 꺼내 입는다. 골목마다, 마을 어귀마다 호랑이 눈이 하나씩 걸린다. 아이들은 그 사이를 뛰어다니며 호랑이처럼 포효하는 흉내를 낸다. 오래된 주문이 불려지고, 사람들은 한 해 동안 붙어 있던 재액이 오늘 하루 호랑이의 발자국을 따라 마을 밖으로 쫓겨 나가기를 바란다.

신화 속에서 호랑이는 더 먼 곳까지 올라간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세상이 제대로 열리기 전, 아직 하늘과 땅이 섞여 있던 때에 먼저 있었던 것이 호랑이라고 말한다. 그 호랑이가 쓰러지면서 뼈는 산이 되고, 숨은 바람이 되고, 눈은 해와 달이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다. 산을 넘나들며 먹이를 좇던 한 마리 짐승이 우주의 뼈대로 승격된 셈이다.

옷과 장신구도 모두 이 이야기의 연장선에 있다. 아이의 모자에는 호랑이 귀와 눈이 수놓여 있다. 어른들은 호랑이 눈이 아이를 지켜 준다고 말한다. 젊은 남자의 허리띠에는 호랑이 줄무늬가 흐르고, 여자들의 가슴 장식에는 작게 변형된 호랑이 얼굴이 달려 있다. 몸에 두르고 다니는 천과 금속에 산의 주인이 함께 붙어 다니는 셈이다.

이 모든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한 민족의 전통 문화로 보인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 문화의 아주 먼 뿌리를 다른 방식으로도 더듬어 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연구실에서 피 한 방울을 가져다가 유전자의 패턴을 읽어 내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이족 남성의 계통을 분석해 그려 낸 지도에는 M117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오래된 갈래가 자주 등장한다. 이름 자체는 건조하고 차갑지만, 그 선을 따라가다 보면 북쪽의 강과 남쪽의 산을 오가며 살아온 수많은 아버지들의 발자취가 겹쳐진다.

유전자는 호랑이를 직접 말해 주지 않는다. 호랑이가 신이라고 써 있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 호랑이 조상의 초상화가 DNA 어딘가에 새겨진 것도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정도는 짐작하게 해 준다. 이 산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살아온 사람들의 일부가, 암벽과 숲과 계곡에 둘러싸인 이 환경 속에서 가장 강한 존재를 바라보다가 그 형상을 자신의 조상으로 삼기로 했다는 것. 그리고 그 결정을 한 뒤로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호랑이와 함께 시간을 쌓아 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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