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dcbest&no=386714#focus_cmt

 

일본기록에 언급된 정체불명의 백제왕들   - 실시간 베스트 갤러리

[시리즈] 신라의 잊혀진 왕들 · 검에 새겨진 이름, 이사지왕은 누구인가 · 일본 기록에 언급된 정체불명의 신라왕들, 그들은 누구인가 · 비석에 새겨진 이름, 신라의 태조는 누구인가 ·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 왕, 우

gall.dcinside.com

국뽕들 ㅂㄷㅂㄷ ㅋㅋㅋ

  • ㅇㅇ(211.235)

    @dd(221.154) 바이킹은 어떻게 부족 단위 정치체인데도, 현해탄보다 훨씬 넓은 바다를 건너 잉글랜드 왕국들을 복속시키고 그 상당한 영토를 빼앗은 거지? ㅋㅋㅋㅋㅋ

    덴마크, 노르웨이의 본토로부터 지원되는 체계적인 병참시스템이 존재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ㅎㅎ - dc App

    12.10 20:09:56
    삭제
  • ㅇㅇ(211.235)

    @dd(221.154) 학자들 권위 내세우지 말고, 토론을 하면 돼.

    길고 짧은 건 직접 대봐야 아는 거임 ㅋㅋㅋㅋㅋ - dc App

  •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대형 고분은 그걸 만들 수 있는 노동력과 경제력을 동원가능한 권력이 존재해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걸 무시하면 안 되죠. - dc App

    12.10 13:13:49
    삭제
  •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츄고쿠와 시코쿠 지역에서 3세기부터 백제계 유물이 출토된다고요? 근거는요? - dc App

    12.10 13:14:32
    삭제
  •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도래인은 일본 사료에 충분히 많이 나오니, 고고학 성과를 거기에 대입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지만, 한국 사료에는 왜인 도래인의 내용이 없잖아요.

    신라 초기 호공이나 석탈해 정도 밖에 없죠. - dc App

    12.10 13:16:01
    삭제
  •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신라에서 큐슈계 유물과 유적이 나오나요? 근데 어떻게 결탁했다는 주장을 하시는지?

    일본서기 기록을 교차검증 없이 그냥 인용하신 건가요?

    왜국이 삼한을 복속시켰다는 내용과 인식은 한중일 사료에 다 나와 교차검증이 되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그 반대로 삼국이 일본 열도를 복속시켰다는 내용이 한중일 사료에 있나요? 하나도 없잖아요. - dc App

    12.10 13:19:15
    삭제
  •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야마토 정권이 6세기 초에 임나 4현을 백제에 할양했으니까, 백제가 그 지역을 접수한 거죠.

    그래서 그 이후부터 왜계백제관료의 기록들도 나오는 것이고요. - dc App

    12.10 13:20:50
    삭제
  •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열도에서 나오는 삼국의 유물은 이민자들의 영향이라고 봐야죠.

    한중일 사료에 삼국이 일본 열도를 공략하거나 복속시켰다는 내용이 전혀 없잖아요. - dc App

    12.10 13:22:28
    삭제
  •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백제가 혼란스러워 왕이 자주 교체되었다? 진사왕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삼국사기에는 그런 혼란상이 나오지 않습니다.

    진사왕이 천황에게 무례해서, 천황이 호족들을 보내 진사왕을 죽게 하고, 아신왕을 옹립하고 돌아왔다는 게 일본서기 내용인데,

    아무 근거도 없이 일본서기 내용을 또 왜곡해서 '혼란상 때문에 교체되었다'라고 선택적 인용을 하시는 건가요? - dc App

    12.10 13:25:34
    삭제
  •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392년
    일본서기 권 제10
    예전천황(譽田天皇;호무타노스메라미코토)
    응신천황(應神天皇;오진텐노)

    (응신 3년) 272년(是歲)

    기각숙녜(紀角宿禰) 등을 보내 백제의 진사왕을 죽이고 아화(阿花)를 왕으로 세움

    ㅊㅊㅊ - dc App

    12.10 13:26:00
    삭제
  •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이 해 * 에 백제 진사왕(辰斯王)이 즉위하여 귀국(貴國) 천황에게 무례하였다. 그래서 기각숙녜 (紀角宿禰;키노츠노노스쿠네), 우전시대숙녜 (羽田矢代宿禰;하타노야시로노스쿠네), 석천숙녜 (石川宿禰;이시카와노스쿠네), 목토숙녜 (木菟宿禰;츠쿠노스쿠네) 를 파견하여 그 무례함을 꾸짖었다. 이에 백제국은 진사왕을 죽여 사죄하였다. 기각숙녜 등은 아화를 왕으로 세우고 돌아왔다.

    ㅊㅊㅊ
    - dc App

    12.10 13:26:22
    삭제
  •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야미토 정권이 관산성 전투에 지원해준 병력이 1000명이다? 근거는요?

    야마토 정권이 관산성 전투에 수만명을 지원해줘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요? - dc App

    12.10 13:28:38
    삭제
  •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그럼 백제가 독자적인 국가인데 본인들 힘으로 국력을 증대시켜야지, 누구 힘으로 국력을 증대시켜야 하나요? - dc App

    12.10 13:29:52
    삭제
  •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삼국사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입장에서 서술된 사료입니다. 가야나 진한, 마한의 소국들 입장에서 쓰인 사료는 존재하지 않는 게 당연한 것이죠.

    신라가 수많은 왜의 침공을 버텨내고 때로는 머리를 숙여가며 때로는 들이받으며 생존한 건 대단한 게 맞습니다.

    그렇게 강한 생존력으로 나중에 삼한을 통일하고 한반도에서 중국과 일본 세력을 모두 몰아낸 것이죠. - dc App

    12.10 13:33:22
    삭제
  •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일본서기의 대신라 기록은 신라가 배반과 복속을 반복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복속했을 때 얼마든지 교역을 할 수 있죠.

    실제로 신라 금관에 달린 곡옥이 일본열도산으로 여겨지니까요. - dc App

  •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큐슈의 백제식 산성은, 일본서기에 상세히 그 경위가 밝혀져 있잖아요. 천황이 백제 관료들을 보내서 성을 쌓게 했잖아요.

    - dc App

    12.10 13:38:07
    삭제
  • ㅇㅇ(121.142)

    @ㅇㅇ(211.235) 한편 당시 일본 건축술은 아직 백제에게 선진 건축술을 제대로 전수받기 전이기에 더더욱 궁궐 등 다른 건축물 보다는 고분 규모에 전력을 쏟았기도 함

    이미 발굴된 전방후원분에 한국계 유물많고 일본학계에서 도래계 유물이라고 이거 연구하는 사람만 수백명임

    12.10 13:40:12
    삭제
  •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일본서기 권 제27
    천명개별천황(天命開別天皇;아메미코토히라카스와케노스메라미코토)
    천지천황(天智天皇;텐치텐노)

    (천지 4년) 665년 8월

    장문국과 축자국에 성을 쌓음

    가을 8월에 달솔 답발춘초(答㶱春初)를 보내 장문국(長門國)에 성을 쌓게 하였다. 그리고 달솔 억례복류(億禮福留), 달솔 사비복부(四比福夫)를 축자국에 보내 대야 (大野;오오노) 및 연 (椽;키) 의 두 성을 쌓게 하였다. - dc App

  •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아까부터 계속 '이와이의 난'을 언급하시는데,

    이와이의 난은 일본서기 외에 전혀 교차검증이 안 되는데, 마치 팩트인 것처럼 인용하시는 건 왜 그러시는 거죠?

    일본서기는 연대가 맞지 않아 논란이 많다면서요?

    선택적 인용인가요? - dc App

    12.10 13:43:50
    삭제
  •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기고]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을 '폐기'한 적 없다

    입력 2010.03.24. 23:25

    조선일보 / 이영식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
    - dc App

    12.10 13:44:33
    삭제
  •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2002년 한·일 양국 정상의 합의로 설치되었던 한일역사공동위원회의 제2기 활동 결과가 보고되었다. 우리 언론은 일본 학계가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을 '폐기'했다든지, 해당 용어를 쓰지 않는 데 '합의'했다는 등의 표현을 썼다. 그러나 임나일본부설은 일본 학계에서 소멸해가는 과정인 것은 틀림없지만, 일본 학계가 이를 '폐기'하기로 '합의'한 적은 없다.
    - dc App

    12.10 13:44:45
    삭제
  •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일본 언론은 이번 위원회의 활동 결과에 대해 '폐기'나 '합의'라는 표현을 전혀 쓰지 않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교과서를 둘러싸고 서로 비판'이란 표제 아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같은 근현대의 쟁점 몇 가지를 요약했다. 요미우리는 고대·중근세·근현대 세 분야의 결과보고를 한국과 일본의 주장으로 나누어 병렬하였을 뿐이다. 아사히는 임나일본부에 대해 언급조차 없었고, 요미우리는 '고대 일본이 한국을 점령했다는 이해(理解)는 불가능하다'는 일본측 의견과 함께 우리측에서 '임나일본부는 잘못된 선입관을 심게 되는 용어이며, 경남 함안의 아라국에 있었던 외교기관으로 주장했다'고 단순 보도했다.
    - dc App

    12.10 13:44:57
    삭제
  •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필자는 36년 전 가야사 논문으로 석사과정을 마치고 임나일본부의 허구성을 증명하겠다고 마치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심정으로 일본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일본 학계의 상황은 달랐다. 일본 학계는 1970년대 초부터 임나일본부는 통치·군정기관이 아니며, 6세기에 왜왕이 가야에 보낸 외교사절인데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마치 당시 일본이 한반도 남쪽을 점령한 것처럼 쓰여 있을 뿐이라는 인식이 통설로서 자리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일본학계에서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전문 연구자는 한 명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dc App

    12.10 13:45:13
    삭제
  •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이런 상황임에도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을 '폐기'했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문학 연구가 부동산 계약처럼 폐기하거나 합의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에는 자신들이 한반도에 연고(緣故)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심리상태가 뿌리 깊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측 결과 보고처럼 영역적 지배는 부정하면서도, 가야를 비롯한 한반도 남부 지역에 대해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는 서술들은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dc App

    12.10 13:45:28
    삭제
  •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고구려 광개토왕릉비의 이른바 신묘년(391년)조에 대한 해석에서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신라·가야를 치고 신민으로 삼았다'는 해석을 견지한다든지, 칠지도(七支刀)의 명문에서 백제의 왕세자가 왜왕에게 주었던 수수(授受) 관계는 인정하면서도 대등 통교의 상징물로 해석하거나, 오히려 일본서기 신공기의 관련기사를 근거로 백제가 왜에 바쳤다는 헌상(獻上)설을 주장하는 입장도 여전히 강하다. - dc App

  • ㅇㅇ(211.235)

    @ㅇㅇ(121.142) 학문이라는 것은 '왜?'라는 질문을 통해서 발전을 하는 것인데,

    학자들끼리 모여서 앞으로 이러이러한 주장은 하지 말자라고 하는 게 도대체 뭔 소리임? ㅋㅋㅋㅋㅋㅋ

    사람의 생각이라는 걸 누가 강제로 틀어막을 수 있음? ㅋㅋㅋㅋㅋㅋ

    내가 위에 인제대 교수의 글을 반론으로서 올렸지만, 합의 어쩌고 하는 건 그냥 정치적 쇼에 불과한 거임. 내가 의문을 느끼는데 누가 그걸 강제로 틀어막는다는 거임? ㅋㅋㅋㅋㅋ 하 진짜 이건 지능.. - dc App

    12.10 19:41:53
    삭제
  • ㅇㅇ(211.235)

    @ㅇㅇ(121.142) 외국인 친구의 묘제를 모방한다고? 그것도 단체로?ㅋㅋㅋㅋㅋ

    본인이 생각해도 황당하다고 느껴지지 않나? ㅋㅋㅋㅋㅋㅋ - dc App

    12.10 19:43:09
    삭제
  • ㅇㅇ(211.235)

    @dd(221.154) 바이킹은 어떻게 부족 단위 정치체인데도, 현해탄보다 훨씬 넓은 바다를 건너 잉글랜드 왕국들을 복속시키고 그 상당한 영토를 빼앗은 거지? ㅋㅋㅋㅋㅋ

    덴마크, 노르웨이의 본토로부터 지원되는 체계적인 병참시스템이 존재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12.10 19:59:12
    삭제
  • ㅇㅇ(211.235)

    @ㅇㅇ(121.142) 난 국가가 거덜날 수준이라고 말한 적 없는데?

    지금 쉐도우복싱 중임? - dc App

    12.10 20:11:55
    삭제
  • ㅇㅇ(211.235)

    @ㅇㅇ(121.142) 건축술 전수 여부가 고분의 규모 변화와 관련이 있다? 근거는? - dc App

    12.10 20:12:56
    삭제
  • ㅇㅇ(211.235)

    @ㅇㅇ(121.142) 거대한 실내구조물이 있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건데?

    대형 고분을 축조하려면 많은 노동력과 경제력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이 있어야 하는 것임. 그 권력의 크기를 상징하는 게 대형 고분임. - dc App

    12.10 20:14:38
    삭제
  • ㅇㅇ(211.235)

    @ㅇㅇ(121.142) 영산강 유역이 백제의 진출에 위협을 느끼고 정치적 입장에서 일본의 묘제를 도입했다?

    그럼 웅진과 사비 지역의 왜계 고분군들은 뭐임? ㅋㅋㅋㅋㅋ 한성백제 지역에서 발견된 5세기 전반 양식의 하니와 토기와 가마터는 뭐임? ㅋㅋㅋㅋㅋ

    웅진 · 사비 지역의 왜계 고분군도 '큐슈계'이고,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도 '큐슈계'인데, 큐슈 세력과 결탁한 백제의 위협을 막고자 큐슈 세력의 묘제를 도입했다? ㅋㅋㅋㅋㅋ 너 스스로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ㅋㅋㅋㅋㅋㅋ 조선 국뽕들은 진짜 ㅋㅋㅋㅋㅋ - dc App

    12.10 20:18:39
    삭제
  • ㅇㅇ(211.235)

    @ㅇㅇ(121.142) 무령왕릉에서 나온 3개의 청동거울 중, 왕의 머리 부분에서 발굴된 의자손수대경은, 일본 군마현 칸논야마 고분에서 나온 청동거울과 같은 거푸집에서 만들어진 동일한 청동거울인데,

    니 논리대로라면, 무령왕이 일본 군마 지역의 호족이랑 동급이었다는 얘기임? ㅋㅋㅋㅋㅋ - dc App

ㅇㅇ(211.235)

야마토 정권이 한때 삼한의 국가들을 복속시키고 일부 영토를 빼앗은 건 팩트. - dc App

ㅇㅇ(211.235)

@ㅇㅇ(221.154) 우리 근거로 얘기하자 ㅋㅋㅋㅋㅋㅋ

391년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 渡O破百殘OOO羅 以爲臣民.
백잔과 신라는 과거에 속민이었기에 조공을 해왔다. 그런데 신묘년에 왜가 와서 바다를 건너 백잔OOO라를 쳐부수고 신민으로 삼았다.

- 광개토대왕릉비 신묘년 기사 -
- dc App

ㅇㅇ(211.235)

@ㅇㅇ(221.154) 왜의 군대를 이용했다고 안 나와요 ㅋㅋㅋㅋㅋ

왜왕이 호족들의 군대를 파견해서 진사왕을 죽게 만들고, 아신왕을 새 백제왕으로 세우고 돌아왔다고 나오지 ㅋㅋㅋㅋㅋ

나무위키 참고한 것 같은데, 나무위키 포함 국뽕환뽕들은 그냥 거짓말이 일상이네 일상이야 ㅋㅋㅋㅋㅋㅋ - dc App

  • ㅇㅇ(211.235)

    @ㅇㅇ(221.154) 392년
    일본서기 권 제10
    예전천황(譽田天皇;호무타노스메라미코토)
    응신천황(應神天皇;오진텐노)

    (응신 3년) 272년(是歲)

    기각숙녜(紀角宿禰) 등을 보내 백제의 진사왕을 죽이고 아화(阿花)를 왕으로 세움

    이 해 * 에 백제 진사왕(辰斯王)이 즉위하여 귀국(貴國) 천황에게 무례하였다. 그래서 기각숙녜 (紀角宿禰;키노츠노노스쿠네), 우전시대숙녜 (羽田矢代宿禰;하타노야시로노스쿠네), 석천숙녜 (石川宿禰;이시카와노스쿠네), 목토숙녜 (木菟宿禰;츠쿠노스쿠네) 를 파견하여 그 무례함을 꾸짖었다. 이에 백제국은 진사왕을 죽여 사죄하였다. 기각숙녜 등은 아화를 왕으로 세우고 돌아왔다. - dc App

    12.09 13:50:04
    삭제
  • ㅇㅇ(211.235)

    @ㅇㅇ(221.154) 안정준 교수와 현재 한국 고구려사 학계의 입장은 '과장설'인데, 난 그것도 아니라고 봄. 한국 학계가 최후의 민족주의 쉴드를 치고 있는 거지.

    광개토대왕릉비 내용은 삼국사기, 일본서기, 송서 왜국전, 고고학으로 전부 교차검증됨. - dc App


  • ㅇㅇ(211.235)

    @ㅇㅇ(221.154) 삼국시대 당시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선박 기술은 별 차이가 없었다.

    '이러한 형태의 배는 일본열도에서 형상 하니와로 여러 개체가 알려져 있는데, 구조는 한반도 출토 배 모양토기에서 보이는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아 한반도와 일본열도가 배 제작기술의 상당부분은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 이정호 (동신대학교 교수 /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 '신안 안좌도 고분군 조사와 의의' 12페이지, 신안 안좌도 고분군 (배널리 읍동) 전라남도 지정유산 신청 학술대회, 2024년 6월. 신안군. - dc App

    12.09 19:11:01
    삭제
  • ㅇㅇ(211.235)

    @ㅇㅇ(221.154) ㄴㄴ 고국원왕 죽이고나서 바로 수세에 몰림. - dc App

    12.09 19:12:56
    삭제
  • ㅇㅇ(211.235)

    @ㅇㅇ(221.154) 371년
    삼국사기 권 제24 백제본기 제2
    근초고왕(近肖古王)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죽이다 ( 371년 )

    〔26년(371)〕 겨울에 왕이 태자와 정예 군사 30,000명을 이끌고 고구려를 쳤다. 평양성(平壤城)을 공격하니 고구려 왕 사유(斯由)가 힘껏 싸우며 막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죽었다. 왕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났다.
    - dc App

    12.09 19:13:52
    삭제
  • ㅇㅇ(211.235)

    @ㅇㅇ(221.154) 371년
    삼국사기 권 제24 백제본기 제2
    근초고왕(近肖古王)

    도읍을 한산으로 옮기다 ( 371년 )

    〔26년(371)〕 도읍을 한산(漢山)으로 옮겼다 *.

    * 도읍을 한산(漢山)으로 옮겼다 : 앞의 문구와 연결하여 “왕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나[王引軍退] 도읍인 한산으로 왔다[移都漢山]”고 해석하는 견해(千寬宇, 1976)도 있으나, 평양성을 공격한 군사들의 퇴각과 도읍을 옮겼다는 기록으로 나누어 해석하는 것이 보통이다.
    - dc App

    12.09 19:14:26
    삭제
  • ㅇㅇ(211.235)

    @ㅇㅇ(221.154) 375년 7월
    삼국사기 권 제24 백제본기 제2
    근초고왕(近肖古王)

    고구려가 수곡성을 함락시키다 ( 375년 07월 )

    30년(375) 가을 7월에 고구려가 북쪽 변경으로 쳐들어와 수곡성(水谷城) * 을 함락시켰다. 왕이 장수를 보내 막도록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왕이 다시 크게 군사를 일으켜 보복하려 하였다가 흉년이 들어 하지 못하였다.
    - dc App

    12.09 19:15:53
    삭제
  • ㅇㅇ(211.235)

    @ㅇㅇ(221.154) 한반도 출토 왜계 갑주, 왜계 고분, 왜계 유물이 전부 광개토대왕릉비, 삼국사기, 일본서기, 송서 왜국전과 교차검증됨.

    원하면 제시해준다. - dc App

    12.09 19:17:21
    삭제
  • ㅇㅇ(211.235)

    @ㅈㅈ(121.142) 이 시대의 기술력? 그럼 기원전에 한반도에서 야요이인들은 일본 열도로 어떻게 건너갔누? ㅋㅋㅋㅋㅋㅋㅋ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수많은 왜계 갑주, 왜계 유물, 왜계 고분은 뭐누? ㅋㅋㅋㅋㅋㅋ

    교류라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왔다갔다 할 수 있었다는 증거인데? ㅋㅋㅋㅋㅋㅋ

    에휴 조선 국뽕들은 논리도 없고 아무것도 없구나 ㅋㅋㅋㅋㅋㅋ - dc App

    12.09 19:19:58
    삭제
  • ㅇㅇ(211.235)

    @ㅈㅈ(121.142) 내가 아래 논문 자료를 올렸지만, 삼국시대 한반도 국가와 왜국의 선박 제작 기술은 별 차이가 없었음.

    그리고 오히려 일본이 열도로 이루어진 섬나라이기 때문에, 지방 통치를 위해서라도 선박 기술과 항해 기술은 발달할 수밖에 없음.

    이미 3세기에 야마토국의 수장은 '대왜왕'이라고 불리며 큐슈의 소국들에까지 관료를 파견하며 감시하고 있었던 상태임.

    통합 관점에서 보면 한반도보다 일본 열도의 통합이 더 빨랐다. - dc App

    12.09 19:23:36
    삭제
  • ㅇㅇ(211.235)

    @ㅈㅈ(121.142) 일본의 항해력이 미천하다는 근거가 어디에? ㅋㅋㅋㅋㅋ

    이미 백촌강 전투를 전후해서 4만 2천의 대군을 한반도로 파병한 바가 있음.

    그리고 신라 박혁거세 때부터 서기 500년까지 왜가 수십번을 쳐들어와 1000명의 백성을 잡아가고, 신라 지휘관을 죽이고, 수도를 포위하고, 왕이 수도에서 도망가고, 신라 태자이자 대장군이 붙잡혀 처형당한 기록이 삼국사기에 수두룩하게 나오는데 뭔 항해기술을 운운하고 앉아있어 에휴 ㅉㅉ 조선 국뽕들은 논리력이라는 것 자체가 없냐? 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 ㅇㅇ(211.235)

    @ㅈㅈ(121.142) 후한서 권115 동이열전 제75

    왜(倭)의 위치 및 풍속을 설명

    왜(倭)는 한(韓)의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 있고, [이들은] 산이 많은 섬에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는데, 무릇 100여 나라[國]이다. 무제(武帝)가 조선(朝鮮)을 멸망시킨 후에 사역(使驛)을 이용하여 한(漢)과 통한 것이 30여 개 나라[國]이다. [이] 나라들의 [수장(首長)]은 모두 왕(王)을 칭하였는데, 대대로 왕통(王統)이 이어졌다. 그 대왜왕(大倭王)은 야마대국(邪馬臺國)에 있다. - dc App

    12.09 19:28:34
    삭제
  • ㅇㅇ(211.235)

    @ㅈㅈ(121.142) 삼국지 위지 권30 위지 오환선비동이

    왜(倭)의 위치 및 소국에 대한 설명

    왜인(倭人)은 대방군(帶方[郡]) 동남쪽의 대해(大海) 중에 살고 있는데, 산이 많은 섬에 의지하여 나라와 마을[國邑]을 이루었다. 이전에는 100여 나라였는데, 한대(漢代)에 [이들 중에서 한의] 조정에 알현(朝見)하는 나라가 있었고, 지금은 사역(使譯)이 통하는 곳이 30개 나라이다.
    - dc App

    12.09 19:29:08
    삭제
  • ㅇㅇ(211.235)

    @ㅈㅈ(121.142) [대방]군(帶方郡)에서 왜(倭)까지는, 해안을 따라 물길로 가서 한국(韓國)을 거쳐 때로는 남쪽으로 때로는 동쪽으로 나아가면 그 북쪽 대안[北岸]인 구야한국(狗邪韓國)에 도착하는데, [거리가] 7천여 리(里)이며, 처음으로 바다 하나를 건너는데, 1천여 리를 가면 대마국(對馬國)에 도착한다. 그 대관(大官)은 비구(卑狗)라 부르고, 그 부[관](副官)은 비노모리(卑奴母離)라 부른다. 살아가는 곳은 절도(絶島)로서, 사방이 4백여 리 정도이고, 토지는 산이 많아서 험하고 우거진 수풀이 많으며, 도로는 새와 사슴과 같은 짐승들이 다니는 길과 같다. 1천여 호(戶)가 있으나, 좋은 농경지가 없어서 해물을 먹으며 생활하면서, 배를 타고 남쪽과 북쪽으로 가서 곡물을 사온다. - dc App

    12.09 19:29:53
    삭제
  • ㅇㅇ(211.235)

    @ㅈㅈ(121.142) 또 [대마국에서] 남쪽으로 바다 1천여 리를 건너는데, [이 바다의] 이름은 한해(瀚海)라고 한다. [1천여 리를 건너면] 일대국(一大國)에 이른다. [그 대]관(大官) 역시 비구(卑狗)라 부르고, 부[관](副官)도 비노모리(卑奴母離)라 부른다. 사방은 3백 리 정도이고, 대나무와 울창한 숲이 많으며, 3천 정도의 가(家)가 있다. 약간의 전지(田地)가 있지만, 농사를 지어도 여전히 먹고 살기에 부족하므로, 역시 [그] 남쪽과 북쪽으로 다니면서 곡물을 사온다.
    - dc App

    12.09 19:30:18
    삭제
  • ㅇㅇ(211.235)

    @ㅈㅈ(121.142) 또 바다 하나를 건너서 1천여 리를 가면 말로국(末盧國)에 이른다. [이 나라에는] 4천여 호(戶)가 있는데, [사람들은] 산과 바다를 따라서 거주하고 있고, 초목이 무성하여, 길을 가면서 앞에 가는 사람을 볼 수 없다. [이 사람들은] 물고기와 전복을 잘 잡는데, 바닷물이 깊든 얕든 간에, 모두 물속으로 들어가서 그것들을 잡는다. - dc App

    12.09 19:30:57
    삭제
  • ㅇㅇ(211.235)

    @ㅈㅈ(121.142) [말로국에서] 동남쪽으로 육상으로 5백 리를 가면, 이도국(伊都國)에 도착한다. [이 나라에서 대]관(大官)은 이지(爾支)라 부르고, 부[관](副官)은 설모고(泄謨觚) 혹은 병거고(柄渠觚)라 부른다. 1천여 호(戶)가 있는데, 대대로 왕(王)이 있었지만 모두 여왕국(女王國)에 통속되어 있어서, 군사(郡使)가 왕래하면서 항상 주재(駐在)하는 곳이다. - dc App

  • ㅇㅇ(116.121)

    고대 일본 호족의 갑주가 삼한 전역에서 출토가 된다 ㅋㅋㅋㅋㅋ

    백제, 마한, 가야, 신라 지역에서 전부 출토가 되고 있음 ㅋㅋㅋㅋㅋ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다 출토됨 ㅋㅋㅋㅋㅋㅋ

    삼한의 국가들이 전부 찰갑으로 전환한 시대에, 어째서 왜계 대금계 갑주가 삼한 전역에서 출토가 되는 걸까? ㅋㅋㅋㅋㅋㅋㅋ

    한국 국사학계의 재지수장설, 왜인용병설 다 박살나고 있는 중 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211.235 님한테 개털리는 국뽕러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