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211.235) @dd(221.154) 바이킹은 어떻게 부족 단위 정치체인데도, 현해탄보다 훨씬 넓은 바다를 건너 잉글랜드 왕국들을 복속시키고 그 상당한 영토를 빼앗은 거지? ㅋㅋㅋㅋㅋ
덴마크, 노르웨이의 본토로부터 지원되는 체계적인 병참시스템이 존재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ㅎㅎ - dc App ㅇㅇ(211.235) @dd(221.154) 학자들 권위 내세우지 말고, 토론을 하면 돼.
길고 짧은 건 직접 대봐야 아는 거임 ㅋㅋㅋㅋㅋ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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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대형 고분은 그걸 만들 수 있는 노동력과 경제력을 동원가능한 권력이 존재해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걸 무시하면 안 되죠. - dc App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츄고쿠와 시코쿠 지역에서 3세기부터 백제계 유물이 출토된다고요? 근거는요? - dc App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도래인은 일본 사료에 충분히 많이 나오니, 고고학 성과를 거기에 대입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지만, 한국 사료에는 왜인 도래인의 내용이 없잖아요.
신라 초기 호공이나 석탈해 정도 밖에 없죠. - dc App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신라에서 큐슈계 유물과 유적이 나오나요? 근데 어떻게 결탁했다는 주장을 하시는지?
일본서기 기록을 교차검증 없이 그냥 인용하신 건가요?
왜국이 삼한을 복속시켰다는 내용과 인식은 한중일 사료에 다 나와 교차검증이 되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그 반대로 삼국이 일본 열도를 복속시켰다는 내용이 한중일 사료에 있나요? 하나도 없잖아요. - dc App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야마토 정권이 6세기 초에 임나 4현을 백제에 할양했으니까, 백제가 그 지역을 접수한 거죠.
그래서 그 이후부터 왜계백제관료의 기록들도 나오는 것이고요. - dc App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열도에서 나오는 삼국의 유물은 이민자들의 영향이라고 봐야죠.
한중일 사료에 삼국이 일본 열도를 공략하거나 복속시켰다는 내용이 전혀 없잖아요. - dc App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백제가 혼란스러워 왕이 자주 교체되었다? 진사왕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삼국사기에는 그런 혼란상이 나오지 않습니다.
진사왕이 천황에게 무례해서, 천황이 호족들을 보내 진사왕을 죽게 하고, 아신왕을 옹립하고 돌아왔다는 게 일본서기 내용인데,
아무 근거도 없이 일본서기 내용을 또 왜곡해서 '혼란상 때문에 교체되었다'라고 선택적 인용을 하시는 건가요? - dc App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392년 일본서기 권 제10 예전천황(譽田天皇;호무타노스메라미코토) 응신천황(應神天皇;오진텐노)
(응신 3년) 272년(是歲)
기각숙녜(紀角宿禰) 등을 보내 백제의 진사왕을 죽이고 아화(阿花)를 왕으로 세움
ㅊㅊㅊ - dc App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이 해 * 에 백제 진사왕(辰斯王)이 즉위하여 귀국(貴國) 천황에게 무례하였다. 그래서 기각숙녜 (紀角宿禰;키노츠노노스쿠네), 우전시대숙녜 (羽田矢代宿禰;하타노야시로노스쿠네), 석천숙녜 (石川宿禰;이시카와노스쿠네), 목토숙녜 (木菟宿禰;츠쿠노스쿠네) 를 파견하여 그 무례함을 꾸짖었다. 이에 백제국은 진사왕을 죽여 사죄하였다. 기각숙녜 등은 아화를 왕으로 세우고 돌아왔다.
ㅊㅊㅊ - dc App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야미토 정권이 관산성 전투에 지원해준 병력이 1000명이다? 근거는요?
야마토 정권이 관산성 전투에 수만명을 지원해줘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요? - dc App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그럼 백제가 독자적인 국가인데 본인들 힘으로 국력을 증대시켜야지, 누구 힘으로 국력을 증대시켜야 하나요? - dc App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삼국사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입장에서 서술된 사료입니다. 가야나 진한, 마한의 소국들 입장에서 쓰인 사료는 존재하지 않는 게 당연한 것이죠.
신라가 수많은 왜의 침공을 버텨내고 때로는 머리를 숙여가며 때로는 들이받으며 생존한 건 대단한 게 맞습니다.
그렇게 강한 생존력으로 나중에 삼한을 통일하고 한반도에서 중국과 일본 세력을 모두 몰아낸 것이죠. - dc App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일본서기의 대신라 기록은 신라가 배반과 복속을 반복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복속했을 때 얼마든지 교역을 할 수 있죠.
실제로 신라 금관에 달린 곡옥이 일본열도산으로 여겨지니까요.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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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큐슈의 백제식 산성은, 일본서기에 상세히 그 경위가 밝혀져 있잖아요. 천황이 백제 관료들을 보내서 성을 쌓게 했잖아요.
- dc App ㅇㅇ(121.142) @ㅇㅇ(211.235) 한편 당시 일본 건축술은 아직 백제에게 선진 건축술을 제대로 전수받기 전이기에 더더욱 궁궐 등 다른 건축물 보다는 고분 규모에 전력을 쏟았기도 함
이미 발굴된 전방후원분에 한국계 유물많고 일본학계에서 도래계 유물이라고 이거 연구하는 사람만 수백명임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일본서기 권 제27 천명개별천황(天命開別天皇;아메미코토히라카스와케노스메라미코토) 천지천황(天智天皇;텐치텐노)
(천지 4년) 665년 8월
장문국과 축자국에 성을 쌓음
가을 8월에 달솔 답발춘초(答㶱春初)를 보내 장문국(長門國)에 성을 쌓게 하였다. 그리고 달솔 억례복류(億禮福留), 달솔 사비복부(四比福夫)를 축자국에 보내 대야 (大野;오오노) 및 연 (椽;키) 의 두 성을 쌓게 하였다.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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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아까부터 계속 '이와이의 난'을 언급하시는데,
이와이의 난은 일본서기 외에 전혀 교차검증이 안 되는데, 마치 팩트인 것처럼 인용하시는 건 왜 그러시는 거죠?
일본서기는 연대가 맞지 않아 논란이 많다면서요?
선택적 인용인가요? - dc App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기고]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을 '폐기'한 적 없다
입력 2010.03.24. 23:25
조선일보 / 이영식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 - dc App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2002년 한·일 양국 정상의 합의로 설치되었던 한일역사공동위원회의 제2기 활동 결과가 보고되었다. 우리 언론은 일본 학계가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을 '폐기'했다든지, 해당 용어를 쓰지 않는 데 '합의'했다는 등의 표현을 썼다. 그러나 임나일본부설은 일본 학계에서 소멸해가는 과정인 것은 틀림없지만, 일본 학계가 이를 '폐기'하기로 '합의'한 적은 없다. - dc App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일본 언론은 이번 위원회의 활동 결과에 대해 '폐기'나 '합의'라는 표현을 전혀 쓰지 않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교과서를 둘러싸고 서로 비판'이란 표제 아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같은 근현대의 쟁점 몇 가지를 요약했다. 요미우리는 고대·중근세·근현대 세 분야의 결과보고를 한국과 일본의 주장으로 나누어 병렬하였을 뿐이다. 아사히는 임나일본부에 대해 언급조차 없었고, 요미우리는 '고대 일본이 한국을 점령했다는 이해(理解)는 불가능하다'는 일본측 의견과 함께 우리측에서 '임나일본부는 잘못된 선입관을 심게 되는 용어이며, 경남 함안의 아라국에 있었던 외교기관으로 주장했다'고 단순 보도했다. - dc App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필자는 36년 전 가야사 논문으로 석사과정을 마치고 임나일본부의 허구성을 증명하겠다고 마치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심정으로 일본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일본 학계의 상황은 달랐다. 일본 학계는 1970년대 초부터 임나일본부는 통치·군정기관이 아니며, 6세기에 왜왕이 가야에 보낸 외교사절인데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마치 당시 일본이 한반도 남쪽을 점령한 것처럼 쓰여 있을 뿐이라는 인식이 통설로서 자리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일본학계에서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전문 연구자는 한 명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dc App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이런 상황임에도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을 '폐기'했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문학 연구가 부동산 계약처럼 폐기하거나 합의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에는 자신들이 한반도에 연고(緣故)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심리상태가 뿌리 깊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측 결과 보고처럼 영역적 지배는 부정하면서도, 가야를 비롯한 한반도 남부 지역에 대해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는 서술들은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dc App ㅇㅇ(211.235) @고고학도(61.43) 고구려 광개토왕릉비의 이른바 신묘년(391년)조에 대한 해석에서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신라·가야를 치고 신민으로 삼았다'는 해석을 견지한다든지, 칠지도(七支刀)의 명문에서 백제의 왕세자가 왜왕에게 주었던 수수(授受) 관계는 인정하면서도 대등 통교의 상징물로 해석하거나, 오히려 일본서기 신공기의 관련기사를 근거로 백제가 왜에 바쳤다는 헌상(獻上)설을 주장하는 입장도 여전히 강하다.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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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211.235) @ㅇㅇ(121.142) 학문이라는 것은 '왜?'라는 질문을 통해서 발전을 하는 것인데,
학자들끼리 모여서 앞으로 이러이러한 주장은 하지 말자라고 하는 게 도대체 뭔 소리임? ㅋㅋㅋㅋㅋㅋ
사람의 생각이라는 걸 누가 강제로 틀어막을 수 있음? ㅋㅋㅋㅋㅋㅋ
내가 위에 인제대 교수의 글을 반론으로서 올렸지만, 합의 어쩌고 하는 건 그냥 정치적 쇼에 불과한 거임. 내가 의문을 느끼는데 누가 그걸 강제로 틀어막는다는 거임? ㅋㅋㅋㅋㅋ 하 진짜 이건 지능.. - dc App ㅇㅇ(211.235) @ㅇㅇ(121.142) 외국인 친구의 묘제를 모방한다고? 그것도 단체로?ㅋㅋㅋㅋㅋ
본인이 생각해도 황당하다고 느껴지지 않나? ㅋㅋㅋㅋㅋㅋ - dc App ㅇㅇ(211.235) @dd(221.154) 바이킹은 어떻게 부족 단위 정치체인데도, 현해탄보다 훨씬 넓은 바다를 건너 잉글랜드 왕국들을 복속시키고 그 상당한 영토를 빼앗은 거지? ㅋㅋㅋㅋㅋ
덴마크, 노르웨이의 본토로부터 지원되는 체계적인 병참시스템이 존재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ㅇㅇ(211.235) @ㅇㅇ(121.142) 거대한 실내구조물이 있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건데?
대형 고분을 축조하려면 많은 노동력과 경제력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이 있어야 하는 것임. 그 권력의 크기를 상징하는 게 대형 고분임. - dc App ㅇㅇ(211.235) @ㅇㅇ(121.142) 영산강 유역이 백제의 진출에 위협을 느끼고 정치적 입장에서 일본의 묘제를 도입했다?
그럼 웅진과 사비 지역의 왜계 고분군들은 뭐임? ㅋㅋㅋㅋㅋ 한성백제 지역에서 발견된 5세기 전반 양식의 하니와 토기와 가마터는 뭐임? ㅋㅋㅋㅋㅋ
웅진 · 사비 지역의 왜계 고분군도 '큐슈계'이고,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도 '큐슈계'인데, 큐슈 세력과 결탁한 백제의 위협을 막고자 큐슈 세력의 묘제를 도입했다? ㅋㅋㅋㅋㅋ 너 스스로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ㅋㅋㅋㅋㅋㅋ 조선 국뽕들은 진짜 ㅋㅋㅋㅋㅋ - dc App ㅇㅇ(211.235) @ㅇㅇ(121.142) 무령왕릉에서 나온 3개의 청동거울 중, 왕의 머리 부분에서 발굴된 의자손수대경은, 일본 군마현 칸논야마 고분에서 나온 청동거울과 같은 거푸집에서 만들어진 동일한 청동거울인데,
니 논리대로라면, 무령왕이 일본 군마 지역의 호족이랑 동급이었다는 얘기임? ㅋㅋㅋㅋㅋ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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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211.235) 야마토 정권이 한때 삼한의 국가들을 복속시키고 일부 영토를 빼앗은 건 팩트. - dc App |
ㅇㅇ(211.235) @ㅇㅇ(221.154) 우리 근거로 얘기하자 ㅋㅋㅋㅋㅋㅋ
391년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 渡O破百殘OOO羅 以爲臣民. 백잔과 신라는 과거에 속민이었기에 조공을 해왔다. 그런데 신묘년에 왜가 와서 바다를 건너 백잔OOO라를 쳐부수고 신민으로 삼았다.
- 광개토대왕릉비 신묘년 기사 - - dc App |
ㅇㅇ(211.235) @ㅇㅇ(221.154) 왜의 군대를 이용했다고 안 나와요 ㅋㅋㅋㅋㅋ
왜왕이 호족들의 군대를 파견해서 진사왕을 죽게 만들고, 아신왕을 새 백제왕으로 세우고 돌아왔다고 나오지 ㅋㅋㅋㅋㅋ
나무위키 참고한 것 같은데, 나무위키 포함 국뽕환뽕들은 그냥 거짓말이 일상이네 일상이야 ㅋㅋㅋㅋㅋㅋ - dc App |
ㅇㅇ(211.235) @ㅇㅇ(221.154) 392년 일본서기 권 제10 예전천황(譽田天皇;호무타노스메라미코토) 응신천황(應神天皇;오진텐노)
(응신 3년) 272년(是歲)
기각숙녜(紀角宿禰) 등을 보내 백제의 진사왕을 죽이고 아화(阿花)를 왕으로 세움
이 해 * 에 백제 진사왕(辰斯王)이 즉위하여 귀국(貴國) 천황에게 무례하였다. 그래서 기각숙녜 (紀角宿禰;키노츠노노스쿠네), 우전시대숙녜 (羽田矢代宿禰;하타노야시로노스쿠네), 석천숙녜 (石川宿禰;이시카와노스쿠네), 목토숙녜 (木菟宿禰;츠쿠노스쿠네) 를 파견하여 그 무례함을 꾸짖었다. 이에 백제국은 진사왕을 죽여 사죄하였다. 기각숙녜 등은 아화를 왕으로 세우고 돌아왔다. - dc App ㅇㅇ(211.235) @ㅇㅇ(221.154) 안정준 교수와 현재 한국 고구려사 학계의 입장은 '과장설'인데, 난 그것도 아니라고 봄. 한국 학계가 최후의 민족주의 쉴드를 치고 있는 거지.
광개토대왕릉비 내용은 삼국사기, 일본서기, 송서 왜국전, 고고학으로 전부 교차검증됨.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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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211.235) 주구묘 자체는 일본에서 발견된 게 한국보다 더 오래됐어요. 그리고 주구묘는 대륙에도 있기 때문에, 대륙 => 반도 => 열도 순으로 전파되었다고 난 보는데, 유물유적 자체는 반도보다 열도가 더 오래된 것으로 나옴. - dc App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주구묘는 효고현 아마가사키시 (兵庫県尼崎市) 에 있는 히가시무코 유적 (東武庫遺跡) 의 2호분 방형주구묘 (方形周溝墓) 로 기원전 5세기의 것임.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1호분의 관에 쓰인 목재가 기원전 445년에 벌채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 또한 그 도랑 (주구) 에서 조몬시대 만기의 토기와 야요이시대 전기의 토기가 함께 출토됨.. - dc App
바이킹은 부족 단위의 정치체인데, 현해탄보다 훨씬 넓은 바다를 건너서, 어떻게 잉글랜드 왕국들을 복속시키고 그 상당한 영토를 빼앗았나요? 노르웨이 · 덴마크와 거리가 굉장히 먼데, 어떻게 보급을 유지한 거죠?그리고 그렇게 먼 지역을 어떻게 관리한 건가요? 391년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삼한을 복속시키고 일부 영토들을 빼앗았으니, 400년대 (5세기) 초부터 주구장창 왜계 고분들이 등장하는 거죠. - dc App
양나라 시대에는 왜국이 사신을 보낸 적이 없습니다. 양직공도의 왜국 사신도는 상상도에요. 양직공도를 신뢰하세요? 양직공도 신라제기도 신뢰하시는 거죠? - dc App 508~554년 或屬韓或屬倭 한때는 한에 속하기도 하고, 한때는 왜에 속하기도 하였다. - 양직공도 신라 제기 - - dc App
바이킹은 소국연맹체도 아니고 부족 단위 정치체인데, 어떻게 보급도 안 되는, 현해탄의 몇 배가 되는 바다를 건너서 잉글랜드 왕국들을 복속시키고 그 상당한 영토를 빼앗은 것일까요? - dc App 일본이란 국호는 '해 뜨는 곳'이란 의미로, 이미 백제 멸망 50년 전인 607년에 쇼토쿠 태자가 수나라 황제에게 국서를 보내 밝힌 바가 있어요. - dc App
@글쓴 역갤러(220.87) 수서(隋書) 권81 열전 제46 동이 대업 연간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고 다음 해에 황제가 문림랑 배청(裴淸)을 사신으로 보냄 대업(大業) 3년(607)에 그 왕 다리사비고(多利思比孤)가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는데, 그 사신이 말하기를 “바다 서쪽의 보살천자(菩薩天子)가 불법을 중흥하였다고 들었으므로 사신을 보내어 조배(朝拜)하고, 아울러 승려 수십 명을 보내어 중국에서 불법을 배우고자 한다.”고 하였다. 그 국서(國書)에서 이르기를, “해 뜨는 곳의 천자가 해 지는 곳의 천자에게 글을 보낸다. 잘 지내는가[無恙]?” 운운이라고 하였다. 황제가 [이를] 보고 기꺼워하지 않고, 홍로경(鴻臚卿)에게 이르기를, “오랑캐의 글이 무례한 바가 있으니, 다시 보고하지 않도록 하라.”고 하였다. - dc App
@글쓴 역갤러(220.87) @고고학도(61.43) 4세기 말에 백제가 야마토 정권에 군사 요청을 했다고 하는 근거가 있나요? 이미 3세기에 야마토국이 큐슈 소국에 관료를 보내서 간섭을 하고 있었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야마토국이 왜의 소국들이 서로 교역을 하는 것까지도 감독하고 단속하고 있었습니다. - dc App
@글쓴 역갤러(220.87) 후한서 권115 동이열전 제75 왜(倭)의 위치 및 풍속을 설명 왜(倭)는 한(韓)의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 있고, [이들은] 산이 많은 섬에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는데, 무릇 100여 나라[國]이다. 무제(武帝)가 조선(朝鮮)을 멸망시킨 후에 사역(使驛)을 이용하여 한(漢)과 통한 것이 30여 개 나라[國]이다. [이] 나라들의 [수장(首長)]은 모두 왕(王)을 칭하였는데, 대대로 왕통(王統)이 이어졌다. 그 대왜왕(大倭王)은 야마대국(邪馬臺國)에 있다. - dc App
@글쓴 역갤러(220.87) [말로국에서] 동남쪽으로 육상으로 5백 리를 가면, 이도국(伊都國)에 도착한다. [이 나라에서 대]관(大官)은 이지(爾支)라 부르고, 부[관](副官)은 설모고(泄謨觚) 혹은 병거고(柄渠觚)라 부른다. 1천여 호(戶)가 있는데, 대대로 왕(王)이 있었지만 모두 여왕국(女王國)에 통속되어 있어서, 군사(郡使)가 왕래하면서 항상 주재(駐在)하는 곳이다. ㄱㄱㄱ - dc App
@글쓴 역갤러(220.87) 三國志 魏志 卷30 위지 오환선비동이 왜의 풍습, 문화, 자연환경, 사회제도에 관한 설명 세금[租賦]을 거둔다. 저각(邸閣)도 있으며, 나라마다 시장이 있어서 있고 없는 것을 서로 교역하는데, [왕은] 대왜(大倭)를 시켜서 그것[교역]을 감독하도록 하였다. 여왕국의 이북에 특별히 일대솔(一大率)을 설치하여 여러 나라를 단속하고 살피도록 하였으므로 여러 나라는 그를 두려워하면서 꺼려하였다. - dc App @고고학도(61.43) 큐슈에 가야와 백제의 갑주들이 발굴되었다? 근거는요? - dc App @고고학도(61.43) 단순 유물 분포? 한중일 사료와 금석문, 유적, 유물이 전부 교차검증되는데요? - dc App
@글쓴 역갤러(220.87) @책사풍후zen 그러니까 야마토 정권에 복속을 당한 거임 ㅋㅋㅋㅋㅋ 백제, 신라, 가야가 ㅋㅋㅋㅋㅋ 작년에 가야권역 최대 고분의 발굴조사 보고서가 나왔는데, 진짜 가관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 피장자와 함께 왜계 갑옷, 왜계 투구, 왜계 화살촉, 왜계 장례토기가 부장되어 있었고, '후키이시'라고 묘제 문화도 왜계 묘제 문화였음 ㅋㅋㅋㅋㅋ - dc App
@글쓴 역갤러(220.87) @책사풍후zen ㄴㄴ 왜국은 이미 삼한시대부터 철기 문명이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과 '후한서'에 뻔히 나오는데, 한국에서는 '우가우가 미개 왜인'이라는 거짓선동이 판을 치고 있지 ㅋㅋㅋㅋㅋㅋ 이미 서기 1세기에 가야에 철제 농기구까지 수출한 게 왜국의 철기 수준이다. - dc App
@글쓴 역갤러(220.87) 삼국지(三國志) 권30, 「위서」 30, 「오환선비동이」 30 나라에서 철이 생산되는데, 한(韓), 예, 왜에서 모두 와서 가져갔다. 사고 팔 때에 모두 철을 사용하였으니, 마치 중국에서 돈을 사용하는 것과 같았다. 또한 그것을 [낙랑과 대방의] 두 군에 공급하였다. - dc App 三國志 魏志 卷30 위지 오환선비동이 왜의 풍습, 문화, 자연환경, 사회제도에 관한 설명 그 땅에는 소, 말, 호랑이, 표범, 양 그리고 까치가 없다. 무기로는 창, 방패 그리고 목궁(木弓)을 사용한다. 목궁은 아랫부분을 짧게 하고 윗부분을 길게 한다. 대나무 화살대는 어떤 것은 철로 된 화살촉이고 어떤 것은 뼈로 된 화살촉이다. 있거나 없는 것이 담이(儋耳) 및 주애(朱崖)와 같다. - dc App
@글쓴 역갤러(220.87) 양산시 다방동 패총 청동기 유물 대거 발굴 2023-04-03 07:40 부산MBC 정세민 또 하나 눈여겨 볼 대목으로는 이번 발굴과정에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1세기경 ,일본 야요이 시대 철서. 쇠로 만든 괭이가 발굴됐다는 점으로 다방동 패총의 가야인과 당시 일본 사이에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백진재 / 학예연구사 (양산시 문화관광과)] "왜계 철기인 철서(쇠 괭이) 가 발견됐다는 것입니다. 철서의 존재는 최소한 이제 일본의 야요이 시대에 북쪽 세력과 양산에 있는 다방동 세력이 교류를 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 dc App
@글쓴 역갤러(220.87) @책사풍후zen 고고학계에서 이미 야요이시대 '왜계 철기'라고 판정을 받았는데 뭔 헛소리냐 ㅋㅋㅋㅋㅋㅋ고고학도 무시하는 조선 환빠 수준 ㅋㅋㅋㅋㅋ - dc App한, 예, 왜, 낙랑군이 모두 변진에서 철을 수입했는데,한, 예, 낙랑군은 자립적인 철기강국이 아니었어? ㅋㅋㅋㅋㅋㅋㅋ에휴 이 조선 환빠들 진짜 ㅋㅋㅋㅋㅋ - dc App왜국처럼 한, 예, 낙랑군, 대방군 모두 변진에서 철정 수입해다가 철기 만든 건 똑같은데, 넌 도대체 뭔 소리를 히고 앉아있냐? 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글쓴 역갤러(220.87) @ㅇㅇ 4세기 신라와 가야 갑옷인 종장판갑이 일본에 건너가서 영향을 준 건 맞는데, 일본의 대금계 판갑은 종장판갑이랑 구조 자체가 아예 다름. 가야 갑옷이 아님. 정작 가야, 신라는 5세기에 기병을 본격 운용하면서 찰갑으로 전환을 함. 삼한은 5세기에 찰갑으로 전환하고, 일본은 대금계 판갑을 사용하는데, 그게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되고 있는 거임 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글쓴 역갤러(220.87) 2호 주거지에서는 국내 최초로 일본 야요이 시대(1세기) 철서(쇠괭이)가 출토됐다. 이는 당시 양산 다방동 패총지 가야인과 일본 사이에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료여서 주목된다. 발굴팀은 일본이 4세기 이후 철을 생산한 걸로 보아 이 쇠괭이는 일본이 양산 가야에서 철을 수입한 뒤 농기구를 만들어 다시 양산에 수출한 제품으로 본다. 일본 기업이 반도체 웨이퍼 시장 30% 정도 차지하는데, 그래서 일본이 최첨단 반도체 완제품도 시장 30% 차지함? ㅋㅋㅋㅋㅋ 그냥 첨단 기초 소재만 제공할 뿐인 거임 ㅋㅋㅋㅋ 변진의 철정도 마찬가지인 거. - dc App @ㅇㅇ(221.154) 그 왜계 갑주가요 ㅋㅋㅋㅋ 가야권역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백제, 마한, 신라권역에사 출토가 된다고요 ㅋㅋㅋㅋㅋㅋ
@글쓴 역갤러(220.87)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서 다 출토가 되고 있어요 ㅋㅋㅋㅋㅋㅋ 한국 국사학계의 재지수장설, 왜인용병설 다 붕괴되고 있는 중 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글쓴 역갤러(220.87) @ㅇㅇ(221.154) 백제, 마한, 가야, 신라가 모두 왜국의 군사적 지원을 받은 건가요? ㅋㅋㅋㅋㅋㅋ 백제, 마한, 가야, 신라가 전부 왜국 용병을 고용해서 왜국 용병끼리 서로 싸웠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조선 환빠는 진짜 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야마토 정권이 삼한 국가들을 복속시키고 일부 영토를 빼앗았다고 인정하면 모든 게 술술 풀림 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글쓴 역갤러(220.87) 백제의 태자와 신라의 왕자는 왜 같은 시기에 동시에 왜국에 인질로 붙잡혀 있었을까? ㅋ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397년 三國史記 권 제25 백제본기 제3 아신왕(阿莘王) 왜국과 우호관계를 맺고 태자를 파견하다 ( 397년 05월(음) ) 6년 여름 5월에 왕이 왜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태자 전지(腆支)를 인질로 보냈다. - dc App 402년 三國史記 권 제3 신라본기 제3 실성(實聖) 이사금(尼師今) 나물왕의 아들 미사흔을 왜에 볼모로 보내다 ( 402년 03월(음) ) 원년(402) 3월에 왜국(倭國)과 우호를 통하고 나물왕(奈勿王)의 아들 미사흔(未斯欣)을 볼모로 삼았다. - dc App
@글쓴 역갤러(220.87) @ㅇㅇ(221.154) 헛소리 ㄴㄴ 인질 맞음. 외교관이란 상호파견되어야 하는 것이고, 본국에서 얼마든지 귀환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임. 그러나 백제의 태자나 신라의 왕자는 왜왕의 허락 없이는 귀국할 수 없었음. 백제 태자는 울면서 돌아가기를 청해서 허락받았고, 신라 왕자는 박제상이 왜왕을 속여 왕자를 탈출시키고 본인은 붙잡혀서 처형을 당함. - dc App
@글쓴 역갤러(220.87) @ㅇㅇ(221.154) 405년 삼국사기 권 제25 백제본기 제3 전지왕(腆支王) 전지왕이 즉위하다 ( 405년 09월 ) 전지왕(腆支王) (혹은 직지(直支)라고 한다) 은 『양서(梁書)』에서 이름을 영(映)이라고 하였다. 아신왕(阿莘王)의 맏아들로서 아신왕 재위 3년(394)에 태자가 되었고, 6년(397)에 왜국에 볼모로 갔다. 14년(405)에 왕이 돌아가시자 왕의 둘째 동생 훈해(訓解)가 대신 다스리면서 태자가 나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는데, 왕의 막내 동생 설례(碟禮)가 훈해를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전지가 왜(倭)에서 부고를 듣고 소리내어 울면서 돌아가기를 청하니 왜왕이 군사 100명으로 호위하며 보냈다. - dc App
@글쓴 역갤러(220.87) @ㅇㅇ(221.154) 이윽고 국경에 이르자 한성(漢城) 사람 해충(解忠)이 와서 알리기를, “대왕께서 돌아가시자 왕의 동생 설례가 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태자께서는 경솔히 들어오지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전지가 왜인을 머물게 하여 스스로 지키면서 바다의 섬에 의지하여 기다렸더니 나라사람들이 설례를 죽이고 전지를 맞이하여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왕비는 팔수부인(八須夫人)이니 아들 구이신(久尒辛)을 낳았다. 왜왕의 붙여준 왜군이 없었으면 왕위계승도 불투명했던 게 팩트. - dc App
현실은 백제노예 칠지도에 하사하노라 ^따잇^
김용운 박사 백제는 일본에 나라를 통째로 옮긴다 니들은 육변기용 ㅋㅋ - dc App
동북아 몸 노리개 영토흉내 ㅋㅋㅋㅋㅋ https://m.dcinside.com/board/history_qna/26531 - dc App
의정부 일용아 좆창아 ㅋㅋㅋㅋㅋㅋ - dc App
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ㅋㅋㅋㅋㅋ 조몬 + 야요이 8만 미만 ㅋㅋㅋㅋㅋㅋㅋ 다음 폭주 된.인구... 제 2 거점으로 둔 대백제의 일본이다 ㅋㅋㅋㅋ 몸이나 잘 대라... https://m.dcinside.com/board/history_qna/26531 - dc App
못 배운 새끼 일용이 답다.. - dc App
우야노 ㅋㅋㅋㅋㅋㅋㅋ 니들 mt dna 로 조몬 조상 검출 쉽고 개정 예고 ㅋㅋㅋㅋ 일본은 대백제인 나라 https://m.dcinside.com/board/history_qna/26529 https://m.dcinside.com/board/history_qna/26535 - dc App
현실은 최소 936회 강... 간 따잇 ㅋㅋㅋㅋㅋ 국가보훈부 광복회 오리지널 형질은 일본이다 ㅋㅋㅋㅋ 영토흉내 의 비극 ㅋㅋㅋㅋ 좆몰존 ㅋㅋㅋ - dc App
백제의 아이들에게 지배 당하고몸 노리개 ㅋㅋㅋㅋㅋ 지정학도몸 노리개 ㅋㅋㅋㅋㅋ병. 신아 니들은 세계사 최다 몸 노리개다...엉토훙네 섹. 스존 새끼야 ㅋㅋ - dc App
니들 영토흉내는 대백제 일본이 들고 싸우는 ㅋㅋㅋㅋ방패 ㅋㅋㅋㅋ 아프예 ㅋㅋ 방패 ㅋㅋㅋ - dc App
아시아 패왕 일본과 세계사 웃음벨 최다 가랑이 오픈존 ㅋㅋㅋㅋㅋㅌ https://m.dcinside.com/board/history_qna/26537 - dc App
너 마빡에 아프예 김 ㅋㅋㅋㅋ 박히며 죽여 버린다 ㅋㅋㅋ - dc App
현행 일본 교과서 다 삭제 4세기 전 가야 도래인 지나도 응애검 수준이라 정복은 개뿔.. 합의.. 일본이 언제 나라 다운 모습 갖추냐 4세기 중반부터 7세기 대백제인들의 눈물 - dc App
졸라 무뇌아 같은 논리네. 일본 쪽 역사학자도 아니라고 하는데 역사학부 근처에도 못 가는 무뇌일뽕들만 맞다고 우기네. ㅋㅋㅋ
"출병해서 싸움에서 이기면 그곳이 영토화될 것 같은 이미지네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병참이 없는 것입니다. 누가 어떻게 현지에서 식량을 조달할 것인가. 병참 부분을 정비하지 않으면 군대 등 활동할 수 없기 때문에. 하물며 배라고 해도 대형선이 있는 시대가 아니었으니 만 단위의 군대가 바다를 건너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663년의 '시라무라에 전투'에서 드디어 만 단위의 동원이 가능해졌습니다만, 그 경우도 큐슈에 거점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싸움의 국면뿐만 아니라 그 백그라운드까지 생각해 보면 임나를 영토적으로 10~20년 점거하는 것은 꽤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 니토 아츠시는 국립역사민속박물관 교수이자 일본 고대사를 전문으로 하는 최고 역사학자 중 하나.
몽골계 유목 국가들 상대로 10만~20만 병력을 동원해 5번이나 군사 원정을 한 명나라.군사원정 스케일만 보면 조선은 아침 한입꺼리도 안 되지만,실제로는 베트남도 찬탈당한 전왕조복위시켜준다고 사기쳐서 먹은거고그마저도 20년만에 뱉어낸걸보면명나라가 조선먹지도 못하거니와먹더라도 10년안에 뱉어내게 될을껄?만주도 통제하기 힘들엇는데 조선은 너무멀고 힘든 길이지.그리고 영락제의 몽골원정은 아무것도 못하고 돈만 허공에다 뿌리고 왔다.그냥 돌에 이름만 붙이고 왔어.근데, 저 시기 일본이?바이킹 사례 들먹이면서 근거 짓는게 얼마나 개뿔 뜯어먹는 소리인지 모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