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번에 47z(원 야요이)가 구축한 해양네트워크에 관해 써보았다.
이는 단지 고대사에 한정된게 아닌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으며 현대일본의 사회구조로 이어진다.
고대 백제 최후결전인 백강전투로 돌아가보자.
이미 백제와 왜는 나당 연합군의 규모와 침공방향을 그들만의 해상네트워크를 통해 파악 한 후 방어를 위한 대규모 파병을 결정을 한다.
한편 정보를 입수한 다수의 47z그룹이 반도에서 열도로 탈출하는 시점이며, 백제에게 있어서도 힘의 균형이 지방귀족에게 넘어가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급박한 위기상황에서 믿을건 아이러니 하게도 연고도 없는 조몬용병들. 열도 각지에서 3만이 넘는 병력을 징발하는데,여기엔 동부에서 징집된 에미시 전사들이 다수 보인다. 운명공동체인 백제의 멸망을 막기위해 열도에서 최대치로 징발했기 때문이다.
최대의 인원을 동원했지만 급박하게 모은 열도각지의 병사들을 조직적으로 운용하는건 어려웠고 결국 막강한 조직력의 나당연합군에 패하게 된다. 백제인들 눈에도 털이 덮수룩한 조몬병사들이 자신들을 구원하러 온건지 아니면 또 다른 적인지 혼란스러웠을것은 마찬가지이다.
사실 조몬병사들은 47z의 확장에 있어 핵심 전력이었다. 이미 반도에서부터 현지 지리와 척후에 능한 조몬인은 경쟁자가 아닌 47z의 파트너였고, 이후 대규모 농경기반의 점토대토기 세력의 진입에 맞서 이들의 협력은 필수적이 되었으며 전략적동맹을 맺게 된다.
이는 무역과 쌀농사를 통해 경제력을 제공하는 야요이와 전투력을 제공하는 조몬인들간의 공생의 시작이자 일본 특유의 분업화된 사회시스템이 구축된 시점으로 볼수있겠다.
이들의 대륙에서의 활약은 백강전투를 마지막으로 사라지고 곧 열도로 이어지게 된다. 해양루트를 잃어버린 이들은 열도 동쪽으로 진출을 시작하며 이들의 특기인 해안 거점점유+무력통한 내륙진출로 열도를 개척하며 오늘날 일본 영토를 완성시킨다.
이러한 양상은 47z기반의 엘리트집단+조몬 기반의 전사집단이라는 이원적 구조를 띄며 강자에 대한 절대충성, 무사도, 사무라이, 막부, 쇼군-천황 시스템 같은 일본만의 정치문화적 특성의 기반이 된다.
중세 일본의 혼란기때 고대 47z의 항해술과 조몬의 전투력의 시너지가 왜구의 등장과 함께 되살아난다.
이런 역할분담적 사회구조는 일본 특유의 사회적 경직으로 나타났으며, 이 경직이 풀렸을때의 드러나는 잔혹함 역시 이 시스템으로 설명 가능하다.
신기한건 오늘날에도 지역별 군입대나 스포츠인들을 보면 아오모리 홋카이도 같은 동북부 내지는 큐슈 최남단 처럼 조몬의 피가 진하게 남아있는곳에서 두각을 보이며, 47z나 도래인들이 자리를 잡았던 서부지역은 주로 상업이 발달했고 야마구치에선 지금도 다수의 정치인을 배출하고있는 점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있다.
이 시스템을 구축한 주역이자 이를 상징하는 존재만이 천황으로써의 자격이 있으며, 고대부터 이 시스템의 총책임자 역할을 하는 47z가 되어야만 일본의 정체성을 설명할수 있으며 일본 특유의 고착화되고 분업화된 사회 체계 및 암묵적 계급의 유지, 그리고 만세일계에 기반한 천황의 권위를 지킬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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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47z 천황설은 일본 신화속 비밀이 드러나면서 반전을 맞게된다.
과연 일본 신화속 비밀과 역사적 진실
왜국에게있어 백제가 신적 존재였던 이유 싸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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