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골제는 백제 비류왕 27년(330년)에 처음 쌓은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대의 고대 저수지로, 당시의 인구와 기술력을 고려하면 기적에 가까운 거대 국가 사업이었습니다. 구체적인 공사 규모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틀라스뉴스 +1
1. 제방의 물리적 규모
- 길이: 약 3.3km ~ 3.8km에 달하며, 고대 저수지 중 동양 최대 규모로 평가받습니다.
- 높이 및 폭: 제방 높이는 약 4.3m ~ 5.6m이며, 윗면 폭은 약 7.5m, 밑변 너비는 약 17.5m ~ 20m에 이르는 거대한 둑이었습니다.
- 저수 및 관개 면적: 저수지 둘레는 약 68km ~ 140km, 총 저수 면적은 약 34~37㎢로 추정됩니다. 이를 통해 물을 댄 논의 면적(관개 면적)은 약 10,000ha에 달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민일보 +5
2. 동원된 인력과 노동력
- 연인원: 제방을 쌓는 데만 약 32만 명이 동원된 것으로 추산됩니다.
- 수문 설치 및 주변 하천 정비 공사까지 포함하면 실제 동원 인원은 이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보입니다.
- 설화 속 규모: 인부가 너무 많아 500명이 들어가는 논인 '되배미'를 기준으로 사람 수를 셌다거나, 인부들이 털어낸 신발의 흙이 쌓여 '신털뫼'라는 산이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올 만큼 압도적인 규모였습니다. 김제시청 +3
3. 주요 수리 시설
- 5개 수문: 수여거, 장생거, 중심거, 경장거, 유통거라는 다섯 개의 거대한 수문이 있어 물의 양을 정교하게 조절했습니다.
- 수문 구조: 약 5.5m 높이의 거대 석주(돌기둥)를 세우고 그 홈에 널빤지를 끼워 넣는 방식으로, 현대의 수문 조절 원리와 매우 흡사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
이처럼 벽골제는 단순한 저수지를 넘어 백제의 고도화된 토목 기술과 강력한 왕권,
그리고 만경평야를 중심으로 한 고대 쌀농사 경제의 핵심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시설입니다.
위의 기술이 조선시대 없어지고 방치됨. 일제시대까지 백제를 능가한 관개농경은 보이지 않아...웃음
한반도 조상들이 저런 사업을 이루었는데..황금보검이나 빠니까 안타까워..머 청나라 일본 2중으로 털려서 개털되였지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