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조 — 역술인 소환의 전말과 그 내력
태종 십사년 갑오 춘삼월 임진일.상이 편전에 좌정하시어 승정원 도승지 박석명을 가까이 부르시고 낮은 목소리로 이르시기를,"과인이 오래전부터 한양 저자에 떠도는 소문 하나를 귀에 담아온 것이 있으되, 처음에는 이를 가볍게 여겨 아예 입에 담기조차 꺼려하였느니라. 그러나 그 소문이 봄날의 풀처럼 해를 거듭할수록 무성해지고, 심지어 전일 도성 안팎의 사족들과 무인들 중에도 그 자를 찾아 앞날을 구한 이들이 적지 않다 하니, 과인이 그를 직접 보고자 함이 아니라, 그 자가 과연 어떠한 인물인지를 한 번은 살펴보아 마땅히 처치할 바를 정하려 함이니라. 조용히 그 자를 찾아 데려오되, 포졸을 앞세워 사람을 놀라게 하는 일은 삼가도록 하라."
박석명이 엎드려 명을 받들었으되, 물러나와 비밀리에 수소문하기를 여러 날이 지났음에도 좀처럼 그 종적을 찾기 어려웠으니, 이는 그 역술인이 도성 안에 일정한 거처를 두지 아니하고 동서를 떠돌며 사람을 만나는 까닭이었다. 본래 그 자는 성명이 알려지지 아니하였고, 사람들은 그저 '백발의 술사'라 부르거나 혹은 '짚신 신은 선인'이라 불렀다 하니, 이는 그가 어느 권세가의 부름에도 응하지 아니하고 비단신 대신 짚신을 신은 채 저자를 오가며 달리 재물을 구하는 기색이 없었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 소문의 근원을 살피건대, 이미 수십 년에서 백 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니, 애초에 고려 공민왕 치세 말년에 도성 안 어느 약재상의 노인이 젊은 청년 하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 아이는 비범한 눈을 지닌 자라, 이미 왕께서 초심을 잃으시고 마침내 불행한 일을 당하실 것을 알고 있으며 아울러 고려의 천명이 다하여 새로운 국성이 하늘의 명을 받을 것 또한 이미 마음속에 품고 있는 듯하니, 그 눈빛이 여느 사람과 다르도다"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청년이 그대로 세상에서 늙어갔음에도 역술의 명성은 오히려 날로 높아졌고, 특히 왕자의 난이 일어나기 얼마 전에 그와 가까이 지내던 몇몇 조정의 인사들이 화를 면하고 도리어 복을 얻었다는 소문이 사방에 파다하게 퍼졌던 것이다.
그 내력인즉, 난이 벌어지기 수개월 전부터 그 술사가 자신과 친분이 있던 한두 사람의 지인을 조용히 만나 은밀히 이르기를, "가까운 날 안에 도성 안팎이 크게 어지러울 것이니 무릇 그 날에는 가솔을 단속하고 대문을 닫은 채 일절 바깥출입을 삼가도록 하라. 또한 주군을 섬기는 데 있어서도 어느 한편에 섣불리 가담하는 것은 삼가고 물처럼 낮은 곳에 처하면 반드시 몸을 보전할 것이니라"라 하였다 하고, 그 말을 들은 자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그 당부를 새겨들어 실행에 옮겼더니 과연 난이 벌어진 날 그들은 아무런 연루도 없이 화를 면하였으며, 이후 새 왕조의 기틀이 잡히는 과정에서도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도리어 은총을 입은 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그를 아는 이들은 다투어 그의 명성을 칭송하였고, 여러 대신가에서는 재물과 비단을 갖추어 그를 초청하고자 하였으나 그 술사는 번번이 이를 피하여 모습을 감추곤 하였다 하였다.
도승지 박석명이 사람을 풀어 수소문한 끝에 그 술사가 한양 동쪽 성 밖 어느 주막 근방에 머물고 있다는 말을 듣고 조심스럽게 사람을 보내니, 그 술사는 한동안 응하지 아니하다가 마침내 "임금께서 과인을 부르시는 뜻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 다만 때가 아닌 것 같아 기다렸을 뿐"이라 말하며 따라나섰다 한다.
그리하여 태종 십사년 삼월에 그 역술인이 편전으로 나아와 상 앞에 엎드리니, 상이 그 모습을 살피시매 과연 소문대로 백발이 성성하고 거친 삼베 도포에 헌 짚신을 꿰어 신은 행색이었으나, 그 눈빛은 흐리거나 탁하지 아니하고 맑고 고요하여 이상한 기운이 있었다. 상이 잠시 그를 바라보시다가 가볍게 웃으시며 이르시기를, "과인이 본래 괴력난신을 가까이 하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라 하여 오랫동안 너와 같은 자를 물리쳐 왔느니라. 그러나 사람으로서 문득 지나가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는 것도 인지상정이라 하겠으니, 오늘 이 자리는 다만 과인의 잠깐의 일탈로 여길 것이요, 너는 이 앞에서 너무 겁을 먹을 것 없이 허심탄회하게 말하라"고 하시고, 그 자리에는 신뢰하는 몇몇 신하들과 사관들을 배석시키셨다.
제2조 — 천하 운수를 논하다 : 서방의 제국과 중원의 미래
상이 먼저 주변을 물리치지 아니하신 채 이르시기를,"오늘 과인이 너에게 묻고자 하는 것은 개인의 앞날이 아니니라. 과인의 본심은 천하의 운수와 이 세상이 앞으로 어찌 돌아갈 것인가를 알고자 함이니, 네가 아는 바를 소상히 아뢰어라."
역술인이 이마를 바닥에 조아리며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아뢰기를 시작하되, 그 목소리는 떨리지 아니하고 일정하였다."상께서 천하의 운수를 물으시니 소인이 감히 아는 바를 아뢰겠사옵니다. 먼저 머나먼 미래의 일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소인의 말이 언뜻 황당하게 들릴 수 있사오나 이는 소인이 지어낸 것이 아니오며, 다만 소인에게 보이는 것을 그대로 아뢰는 것이니 관대히 들어주시기를 청하옵나이다."
상이 고개를 끄덕이시며 계속하라 하시니, 역술인이 숨을 고르고 말하기를,"지금 이 세상을 놓고 보면 동쪽에는 대명천자께서 다스리시는 중원이 있고 그 주변에 여러 나라들이 있으며, 서쪽으로 한없이 나아가면 소인이 서방정토라 부르는 땅이 있사옵니다. 이 땅은 불경에서 말씀하시는 아미타부처님의 세계가 아니오며, 현세에 존재하는 실제 땅이온데, 다만 그 거리가 하도 멀어 지금은 소인 같은 역술인의 입을 통해서만 그 존재가 전해질 따름이옵니다. 상께서 혹 이 이름이 괴력난신을 연상케 한다 여기실까 두렵사옵니다만, 소인이 그리 이름 붙인 까닭은 따로 있사옵니다. 그 땅은 지금 이 시각에는 옛 주나라처럼 하나의 큰 세력 아래 묶여 있던 형세가 이미 허물어진 지 오래여서, 마치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춘추전국시대의 형국이 그 땅에서 지금도 재현되고 있사옵니다. 크고 작은 나라들이 저마다 국경을 맞대고 이해를 다투며, 그 합산한 판도나 병력의 규모는 지금 당장은 중원의 대명제국 하나에도 미치지 못할 수 있사옵니다."
상이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리며 이르시기를, "그러하다면 그 땅이 무에 그리 주목할 만하다는 것이냐?"역술인이 두 손을 모아 쥐며 아뢰기를,"상께서 바로 그 점을 물어 주시니 황감하옵니다. 그 서방정토의 여러 나라들은 비록 지금은 중원에 비해 왜소해 보이오나, 머나먼 훗날에 이르면 그 땅에서 밤새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신묘한 것들이 하나 둘씩 계속 탄생하는 형국이 펼쳐질 것이옵니다. 소인이 보기에 이는 마치 도교에서 말하는 신선들의 세계에서 기이한 기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과 같고, 혹은 불경에서 일컫는 정토의 세계처럼 풍요롭고 신묘한 모습을 이룰 것이기에, 소인이 감히 서방정토라 이름 붙인 것이옵니다. 그 세계의 사람들이 일구어 낼 신묘한 것들이 어찌나 기이한지, 먼 훗날 천하의 모든 나라들이 그 기이한 것들을 탐하고 배우려 들 것이오며, 결국에는 그 서방정토에서 나온 크고 작은 것들이 세상의 이치 자체를 바꾸어 놓을 것이옵니다."
상이 고요히 들으시다가 이르시기를, "그 서방정토의 여러 나라들이 그렇게 신묘한 것들을 만들어 낸다 하면, 그 가운데 으뜸가는 나라는 어느 나라이냐?"역술인이 아뢰기를,"그 서방정토의 여러 나라들 중에서 훗날 가장 힘이 강성해지는 나라가 하나 있을 것이옵니다. 이 나라는 서방정토 땅 중에서도 가장 서쪽 끝에 자리한 나라로, 섬으로 이루어진 지형에서 시작하여 훗날 그 세력이 크게 뻗어나갈 것이옵니다. 이 나라는 서방정토의 여러 나라들 중에서 가장 먼저 그 신묘한 이치를 깨닫고 가장 빠르게 강성해질 것이며, 그 힘을 바탕으로 저 멀리 불교의 교조가 탄생한 천축 땅의 여러 왕들을 마치 제후처럼 봉하여 다스리는 형세를 이루게 될 것이옵니다. 뿐만 아니라 천하 사방의 크고 작은 수많은 나라들을 그 아래에 두어 마치 옛 당나라의 천가한 같은 위세를 누릴 것이오나, 그 규모는 당나라와도 비교가 되지 아니할 정도로 광대할 것이옵니다. 그 판도가 얼마나 넓은지, 대명천자께서 직접 다스리시는 땅을 다섯 곱절로 헤아려도 오히려 모자랄 지경이옵니다."
상이 이 말을 들으시고 잠시 말씀이 없으시더니 이르시기를,"참으로 허황된 말이로다. 그러나 네가 말한 그 나라가 정말 그러한 위세를 누린다 하더라도 세상에 영원한 나라는 없는 법이거늘, 그 나라의 천명도 언젠가는 쇠락하겠느냐?"역술인이 머리를 숙이며 아뢰기를,"상의 말씀이 바로 천하의 진리이옵니다. 그 서방정토의 천자나라 또한 언젠가는 쇠락의 때가 오겠사오나, 그 전에 먼저 중원의 일을 아뢰어야 할 것이 있사옵니다. 상께서 대명의 앞날을 아울러 물으시는 듯하오니 이어서 아뢰겠사옵니다. 지금의 대명제국은 천명을 받아 원의 오랑캐를 몰아내고 중원을 다시 회복한 자랑스러운 나라이오나, 먼 훗날에 이르면 그 천명이 차츰 쇠약해질 것이옵니다. 그리되면 옛날부터 북방을 누비던 이민족이 때를 얻어 다시 중원을 향해 밀려올 것이니, 이는 마치 한족이 원의 지배를 받았던 것이 다시 한 번 재현되는 것과 같은 형세이옵니다. 이 새로운 북방의 오랑캐들은 한때 중원에서 큰 권세를 떨칠 것이오며, 그 세를 몰아 사방 나라들로 하여금 신하의 예를 갖추게 할 것이옵니다."
상이 얼굴을 찌푸리시며 이르시기를, "원나라가 다시 재현된다는 것이냐? 그 오랑캐들은 또 어찌 되느냐?"역술인이 차분하게 아뢰기를,"그 중원을 차지한 오랑캐들도 본래의 원나라가 그러했던 것처럼 강성한 때를 지나 결국 쇠약해지는 운명을 피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그런데 그 쇠약해지는 과정에서 앞서 소인이 말씀드린 서방정토의 대제국이 그 오랑캐들을 몹시 곤궁하게 만드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옵니다. 이를 비유하자면, 옛날 금나라가 남쪽으로 쫓겨난 남송에게 끊임없이 조공을 요구하며 겁박하던 것과 비슷한 형국이 재현되되, 그 정도가 남송과 금나라의 경우보다 배나 더 심하고 곤궁할 것이옵니다. 중원을 차지한 오랑캐들은 그 서방정토 대국의 압박을 받으며 사방에서 조여드는 형세에 처할 것이오며, 이는 단순히 군사적인 다툼만이 아니라 교역과 재물의 흐름, 그리고 여러 나라들과의 사귐 등에서 두루 압박을 받는 형세이니, 그 처지가 매우 어렵고 딱할 것이옵니다."
상이 말씀하시기를, "그리하면 그 후에 중원의 운명은 어찌 되겠느냐?"역술인이 고개를 잠시 숙인 뒤 아뢰기를,"중원의 일이 어찌 되는가는 또한 그 이후에 벌어지는 더 큰 천하의 대세와 맞물려 있사오니, 이 이후의 일들은 또 다른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드러날 것이옵니다. 다만 상께서 먼저 아셔야 할 것은, 천하의 운수란 어느 한 나라가 영원히 홀로 주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들이 서로 흥망을 주고받으며 그 흐름이 이어지는 것이옵니다. 대명의 뒤를 이은 오랑캐들도, 그 오랑캐들을 압박하는 서방정토의 대국도, 결국은 그 운수의 흐름 안에서 성하고 쇠하는 이치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옵니다."
제3조 — 종묘사직의 앞날을 묻다 : 비밀 독대와 경천동지의 예언
상이 이 모든 이야기를 들으시고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더니, 이윽고 좌우를 돌아보시며 낮은 목소리로 이르시기를,"물러들 가라. 과인의 가장 신임하는 대신들과 오늘 이 자리를 기록하는 사관들만 남고 모두 나가도록 하라."편전에 있던 여러 내관들과 잡직의 신료들이 물러나고, 좌의정 하륜, 병조판서 이숙번을 비롯한 몇몇 원로 대신들과 사관 두 명만이 남아 자리를 지키니, 상이 이윽고 자세를 고치시고 목소리에 힘을 실어 이르시기를,"네가 전에 왕자의 난 때에도 이미 그 일을 알고 있었다 하고, 고려 공민왕의 말로와 고려의 천명이 다할 것도 이미 알았다 하니, 이제 과인이 진정으로 묻고 싶은 것을 물을 것이니라. 과인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고 소상히 아뢰어라. 과인의 황고 태조대왕께서 세우신 이 나라의 종묘사직이 앞으로도 계속 건재할 수 있겠느냐?"
신료들도 일제히 숨을 죽이고 그 술사의 입을 바라보는 가운데, 역술인은 이마를 바닥에 조아린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였다.상이 기다리시다가 재차 이르시기를, "왜 답하지 않느냐? 말하라."역술인이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아뢰기를, "소인이 감히 아뢰기가 차마 어렵사옵니다. 이는 소인이 겁이 나서가 아니오라, 말씀드리기가 워낙 송구스러운 까닭이옵니다."상이 이 말을 들으시고 잠시 그 의중을 헤아리시는 듯하더니, 이윽고 목소리를 가라앉히시며 이르시기를,"과인은 이미 태조대왕을 도와 새 나라를 개국하는 데에 몸을 아끼지 아니하였고, 그 이후에도 왕위에 오르기까지 여러 차례 목숨이 오가는 고비를 넘겼느니라. 그러한 과인이 어찌 한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이치를 모르겠느냐. 세상에 영원한 나라는 없다는 것, 나라의 천명도 사람의 수명처럼 유한하다는 것은 과인도 이미 아는 바이니라. 그러므로 오늘 네가 어떠한 말을 하든 과인은 그 말로 인해 너에게 벌을 내리거나 책임을 묻지 아니하겠노라. 이를 어명으로 공개히 약조하노니, 오늘 이 자리에 남아 있는 모든 이들이 증인이니라. 다만 오늘 이후 이 자리에서 오간 모든 말은 이 자리에 있는 자들 외에 발설하지 말 것이며, 이 사관들은 이 모든 것을 실록에 빠짐없이 기록하도록 하라."사관들이 붓을 들어 기록하기 시작하는 가운데, 상이 다시 역술인을 바라보시며 이르시기를, "이제 말하라."
역술인이 이마를 깊이 조아리며 천천히 아뢰기를,"옛날 신라의 천명이 다하였을 때 고려 태조 왕건께서 그 천명을 이어받으셨고, 다시 고려의 천명이 쇠하여 다하였을 때 태조대왕께서 하늘의 명을 받아 이 나라를 세우신 것처럼, 당장은 아니오며 실로 상당히 머나먼 훗날의 일이오나, 언젠가 이 나라의 옥새는 왜왕과 그 씨족에게로 넘어가는 일이 벌어질 것이옵니다."이 말이 떨어지자 자리에 남아 있던 신료들이 크게 술렁이며 얼굴빛이 달라졌다. 좌의정 하륜이 즉각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이르기를, "전하, 이 자가 망언을 늘어놓으며 전하의 성심을 혼란케 하고 있사옵니다. 당장 이 자를 의금부에 하옥하여 그 근본을 국문하여야 하옵니다." 이숙번 또한 안색이 변하여 이르기를, "전하, 이런 요망한 말을 내뱉는 자는 즉시 처단하여 다시는 이러한 불경한 말이 세상에 퍼지지 않도록 하여야 하옵니다." 다른 신료들도 각기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처벌을 청하는 말들을 쏟아냈다.
상이 손을 드시어 신료들을 제지하시며 이르시기를,"과인이 방금 전에 무어라 하였느냐. 이 자가 어떠한 말을 하든 책임을 묻지 않겠다 하였으니, 그 어명을 이 자리에서 바로 어기란 말이냐. 모두 진정하고 앉으라."신료들이 마지못해 자리에 앉는 가운데 상이 다시 역술인을 바라보시며 이르시기를,"과인이 그 말을 쉽게 믿기 어렵구나. 지금 왜의 조정은 힘이 쇠약하고 그 나라 안에서도 무사들의 세력이 왕을 압도하는 형세에 있다 들었는데, 고려의 무신 집권과 같은 꼴이 벌어지고 있는 그 나라가 어찌 사방이 바다로 막힌 작은 섬나라에서 우리 삼한 땅의 옥새를 차지하는 일을 벌일 수 있겠느냐. 그것도 자기 나라 백성들이 왜구가 되어 우리 해안을 노략질하는 것도 제대로 막지 못하는 위세로 말이다."
역술인이 고개를 들어 처음으로 상의 얼굴을 직접 바라보며 아뢰기를,"상의 말씀이 지당하옵니다. 지금 이 시각의 왜 조정으로는 도저히 그러한 일을 도모할 힘이 없사옵니다. 그러나 소인이 말씀드린 것은 당장의 일이 아니오라 머나먼 훗날의 일이옵니다. 훗날 왜왕과 그 씨족과 대신들은 소인이 말씀드린 서방정토의 여러 나라들과 두루 교통하기 시작하면서 그 나라들의 신묘한 것들을 배워 힘을 얻게 될 것이옵니다. 특히 서방정토의 천자나라, 즉 그 가장 강성한 나라를 마치 자신들의 스승으로 삼아 그 나라로부터 갖은 신묘한 것들을 전수받고 부지런히 힘을 쌓을 것이오니, 그 힘이 일정 수준에 이르게 되면 사방을 넘보는 야욕을 품게 될 것이옵니다."
상이 눈을 가늘게 뜨시며 이르시기를, "그리하여 그 왜 조정이 우리 삼한을 차지하고 나서는 또 어찌 된다는 것이냐?"역술인이 아뢰기를,"왜왕과 그 나라의 권세도 천하의 이치대로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그들은 힘을 얻는 과정에서 그 스승으로 삼았던 서방정토의 천자나라와 점차 사이가 틀어지게 될 것이오며, 급기야 서로 칼을 겨누는 지경에까지 이를 것이옵니다. 이때 왜 조정은 서방의 스승 나라와만 다투는 것이 아니라, 동쪽에 있는 매우 크고 강성한 나라와도 싸움을 벌이게 되는데, 결국 이 동방의 큰 나라에 패하여 크게 꺾이고 삼한 땅에서 물러날 것이옵니다."
상이 이르시기를, "그 동방의 큰 나라는 어떤 나라이냐?"역술인이 아뢰기를,"그 나라는 매우 특이한 나라이옵니다. 앞서 말씀드린 서방정토의 천자나라에서 그 백성들이 스스로 분리되어 나와 세운 나라이온데, 특이하게도 이 나라는 왕도 없고 국성도 없는 나라이옵니다. 말하자면 왕이 없이도 나라가 돌아가는 기이한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옵니다. 이 나라가 처음에는 변방의 약소한 나라로 시작하오나 시간이 흐를수록 크게 성장하여 마침내 천하를 호령하는 나라가 될 것이오며, 그 부요함과 강성함이 옛 당나라와 남송의 전성기를 모두 합친 것으로도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옵니다. 만국의 사람들이 너나없이 이 나라로 몰려들어 서로 교통하며, 이 나라의 재물이 흘러드는 것이 마치 천하의 모든 강물이 바다로 모이는 것과 같을 것이옵니다. 심지어 그 모국인 서방정토의 천자나라마저도 어느 시점에 이르면 이 국성없는 나라의 기세에 눌려 천하를 호령하던 으뜸 나라의 자리를 내주고 물러서는 형국이 될 것이옵니다."
이때 자리에 있던 신료들은 이 기이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반신반의하는 기색과 두려워하는 기색이 뒤섞인 얼굴들로 서로를 바라보았고, 사관들의 붓 소리만이 조용한 편전을 채웠다.상이 이르시기를, "그리하면 왜가 물러난 이후 우리 삼한의 땅은 어찌 되는 것이냐?"역술인이 잠시 숨을 고르고 아뢰기를,"왜왕이 삼한 땅에서 물러난 이후, 이 땅은 둘로 나뉘어 마치 옛날 신라와 발해가 남북으로 병립하던 형세가 그대로 재현될 것이옵니다. 남쪽은 앞서 말씀드린 동방의 국성없는 대국을 따르는 형세가 되어 나라 안이 비교적 평탄해질 것이오며, 그 대국과 더불어 만국과 두루 교통하며 단군 성조와 기자 성인 이래 그 어느 때보다 큰 풍요를 누릴 것이옵니다. 그러나 북쪽은 사정이 매우 다를 것이오니, 다른 북방의 세력이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옵니다. 이 북쪽을 차지하는 세력은 오랑캐이나 여느 오랑캐와는 성질이 판이하게 다른 자들이옵니다."
상이 흥미롭게 여기시며 이르시기를, "어찌 다르다는 것이냐?"역술인이 아뢰기를,"옛날부터 몽고나 여진 등의 오랑캐들은 야만적이라 하오나, 그 야만성은 그들이 예와 법도에 무지하고 오로지 말 위에서 무력을 과시하는 것에만 익숙하기 때문이옵니다. 그러나 그 북쪽 땅을 차지하는 자들은 겉으로는 스스로 학문을 아는 선비들이라 자처하며, 그들이 따르는 교조가 있사옵니다. 그 교조는 서방정토의 한 나라에서 태어날 사람이온데, 그가 가르치는 바를 보면 옛 제자백가 중 묵자의 사상과 비슷한 구석이 있어, 사람들이 두루 평등하게 잘 사는 대동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자이옵니다. 그 가르침 때문에 훗날 추종자들이 그를 성현이라 떠받들 것이오나, 소인이 보기에 그 교조라는 인물의 실제 인품은 그리 칭송받기에 매우 민망한 수준이옵니다. 그가 스스로 배워 익힌 지식은 적지 않으나, 그 삶 자체는 자신이 가르친 바와 어긋나기 일쑤이고, 진정한 성현으로서의 덕망과는 거리가 먼 소인배에 가까울 것이옵니다."
상이 코웃음을 치시며 이르시기를, "말과 행동이 다른 자가 어찌 성인의 반열에 들겠느냐마는, 그러한 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어찌 나라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이냐?"역술인이 아뢰기를,"그것이 바로 이 가르침이 매우 위험한 까닭이옵니다. 이 가르침은 묵자의 사상과 표면적으로 비슷해 보이오나 실상은 매우 해로운 사교이옵니다. 이 나라를 세운 자들은 본디 자신들이 아비처럼 섬기던 주군을 시해하고 스스로의 국성을 폐해버린 역도들이옵니다. 그들은 이를 의롭고 숭고한 일이라 칭송하며 이웃 나라에까지 전파하여, 이웃 나라의 백성들로 하여금 자기 나라 주군에게 모반하도록 책동하고 종묘사직을 허무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 선동하는 사문난적의 사교를 천하에 퍼뜨릴 것이옵니다. 이 가르침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삼강오륜의 법도를 모두 거꾸로 뒤집어 해석하는 것을 그 핵심으로 삼사옵나이다. 이 사교를 퍼뜨리는 자들은 백성을 위한다는 대동의 세상을 빙자하여 갖은 감언이설과 요설로 만국의 사람들을 미혹하오나, 자기들의 가르침에 반대하는 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처단하는 극악무도한 자들이옵니다."
이 말을 듣자 상이 얼굴빛이 굳어지시며 이르시기를, "그러한 자들이 어찌 선비라 자처할 수 있겠느냐. 그리하여 그 북쪽 땅을 차지한 자들은 어찌 된다는 것이냐?"역술인이 아뢰기를,"겉으로는 국성을 폐한 나라처럼 보이오나, 결국에는 어느 한 씨족이 실질적으로 나라를 손에 쥐게 될 것이옵니다. 그 씨족의 우두머리들은 지극히 흉악한 정치를 행할 것이오니, 소인이 감히 아뢰기 두렵사오나, 그 폭정의 극심함이 옛 하나라의 걸왕이나 은나라의 주왕에 비교하면 그분들의 정치가 오히려 요순 임금의 어진 정사처럼 보일 정도라 하겠사옵니다."
이 말을 들은 상이 두 눈을 감으시고 한동안 깊은 침묵에 잠기셨다. 가까이 있던 신료들도 이제 처벌을 청하는 말 대신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으며, 편전 안에는 무거운 기운이 가득하였다. 한참 만에 상이 눈을 뜨시며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이르시기를,"너에게 마지막으로 묻겠노라. 네가 지금 말한 이 모든 일들을 피하거나 바꿀 수 있는 방도가 있느냐?"
역술인이 이마를 깊이 바닥에 찧으며 아뢰기를,"상이 마지막으로 그 말씀을 물어 주시니 소인은 오히려 이 물음에 가장 소상히 아뢸 수 있사옵니다. 천하의 운수란 그 폭우로 생겨난 강물의 흐름과 같사옵니다. 하늘이 내리는 폭우를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고, 그로 인해 큰 강이 불어 범람하는 것을 완전히 통제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옵니다. 그러나 그 흐름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사옵니다. 미래에 벌어질 일 중에 얼어붙은 물처럼 반드시 그러하여야 한다는 필연이란 단연코 없사오며, 강가에 제방을 쌓아 홍수를 막고 그 물을 비축하여 가뭄까지 대비하는 복으로 만드는 것이 인지상정이오니, 이 새옹지마의 가르침이 한 나라의 천명에도 그대로 적용되옵니다. 상께서는 오늘 소인이 아뢴 이 교훈을 후대의 왕들에게 남기시어, 그들이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방심하지 아니하고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이정표를 세워 주시기를 간곡히 청하옵니다. 특히 훗날 삼한의 왕들이 서방정토의 여러 나라들과 왜와의 관계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아니하고 현명하게 처신하며, 백성을 두텁게 하고 나라 안을 굳건히 다지는 일에 힘쓴다면, 소인이 아뢴 것들이 반드시 그대로 실현된다고는 장담하기 어렵사옵니다."
상이 오랫동안 그 말을 음미하시다가 이윽고 내관을 불러 그 역술인에게 쌀과 비단과 약간의 전을 상으로 내리시고, 그 자리에 배석한 모든 이들에게 오늘 들은 것을 일체 발설하지 말 것을 재차 엄명하시었다.그 역술인은 상사를 받들어 물러나왔으며, 그로부터 수일이 지난 뒤 다시 도성 안에서 그 행방을 묻는 자가 있었으나 이미 종적이 묘연하였다. 이에 상이 찾으라는 명을 내리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이르시기를, "그 자를 더 이상 찾지 말라. 그 자는 이미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간 것이니라"고 하셨다 한다.사관은 기록하노라. 이날 편전에서 오간 모든 말은 상의 어명에 따라 이 실록에 온전히 기재하되, 이 기록을 함부로 꺼내어 보는 것은 삼가도록 후대 사관들에게 이르노라.
태종대왕 실록 해당 년조 사관 謹識
하여튼 전주이씨들 자아도취 개소리 개발해대는 건 알아줘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