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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고시대의 조선반도


북부조선·기자조선

옛날에 반도의 북부를 조선(朝鮮)이라고 불렀으며, 중국에서 기자(箕子)가 와서 그 땅에서 왕이 되었다고 한다.

위만조선

그 후 위만(衛滿)이라는 자가 이 지방에 와서, 기자의 후계자인 준(準)을 쫓아내고 나라를 빼앗았다. 위만의 손자 우거(右渠) 시기에, 한나라의 무제(武帝)가 이를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그 땅에 사군(四郡)을 설치했다.

한사군

이로부터 수백 년 동안 반도의 대부분은 중국의 영지(領地)가 되었다. 한(漢)이라는 것은 그때의 중국 국명(國名)으로서, 무제가 조선을 취한 것은 우리의 가이쿠와(開化) 천황 때이다.

남부조선한족

반도의 남부에는 한족(韓族)이 살고 있었는데,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卞韓)을 다스리는 세 종족으로 나뉜다. 모두 수많은 소국들로 이루어졌지만, 후에 마한은 백제국이 되었고, 진한은 신라국이 되었으며, 변한은 가라(加羅: 가야의 옛 명칭-역자) 등의 나라들로 되었다. 가라 등의 나라들을 가리켜 하나로 임나제국(任那諸國)이라고 이른다. 이상의 나라들은 모두 일본과 매우 가까웠으므로, 바다를 건너 일찍부터 서로 교류했다.

고대 일한(日韓)의 교류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의 동생인 스사노 오노미고토(素戔鳴尊)는 그의 아들과 함께 조선에건너가신 적이 있다. 스진(崇神) 천황제10대 때, 가라국은 처음으로 사신을 일본 조정에 보내왔으며, 스이닌(垂仁) 천황제11대 때에는 신라의 왕자 아메노히보코(天日槍)는 일본에 이주하여, 그의 자손들이 계속 이어졌다.


2. 삼한(三韓)

         (제3 「야마토 다케루노미코토(日本武尊)」 이후)


신라·고구려·백제의 시조

신라 제1대 왕을 박혁거세(朴赫居世)라고 한다. 그가 즉위한 것은 스진(崇神) 천황 시대이다. 제4대 왕인 석탈해(昔脫解)는 일본에서 건너와서 왕위에 오른 사람이라고 한다. 또한 같은 천황 시대에 만주(滿洲) 땅에서는 고구려(또는 ‘고려’라고도 부른다)라는 나라가 일어났다. 그 나라의 제1대 왕을 주몽(朱蒙)이라고 한다. 주몽의 아들인 온조(溫祚)는 조선반도에 와서 백제국을 세웠다. 이때가 스이닌 천황 시대이다.

고구려와 백제의 관계

고구려는 만주에서 많은 종족들을 격파했으며, 또한 조선반도의 북부에 있던 중국의 영토도 차지하면서 점차 남쪽으로 진격했다. 이 때문에 고구려는 백제와 전쟁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고구려 왕은 백제 왕의 공격을 받게 되었으며, 활에 맞아 죽었다. 이로 인해 두 나라는 영원히 서로 적이 되었다.

일본과 임나제국의 관계
이에 앞서 가라국은 신라와 다투었는데, 스진 천황 때 사신을 일본에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또 지금의 규슈(九州) 땅에는 구마소(熊襲)라는 주민이 있었는데, 여러 차례 조정(朝廷)에 반기를 들었으며, 그 밖에도 조정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 있었으므로, 주아이(仲哀) 천황제14대은 구마소를 정벌하려고, 황후와 함께 규슈에 거둥하셨는데, 불행히도 군중(軍中)에서 돌아가셨다. 그리하여 황후는 천황의 유지를 이어 규슈를 평정하시고, 이어서 곧 바다를 건너가 신라를 토벌하고, 임나제국을 보호하셨다.

 3. 문학·불교·공예
         (제4 「진구 황후(神功皇后)」 이후)

문학의 전래
중국의 문학은 먼저 고구려에 전해졌다. 만주에 있던 고구려는 일찍부터 중국과 교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흥(高興)과 왕인(王仁)
백제가 일본에 복속될 무렵에 고흥(高興)이라는 박사가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기록이 시작되었다. 이 무렵 백제는 왕인(王仁)이라는 학자를 일본에 보내왔다. 이때가 오진(應神) 천황 시대이다. 천황은 왕인 등에게 명하여 기록을 담당하도록 하셨다. 왕인의 조상은 중국인으로, 조부 때부터 백제에 거주하였다. 신라에서 중국까지의 거리는 고구려나 백제에서 중국까지의 거리보다 멀었기 때문에, 학문이 신라에 전해진 시기도 두 나라보다 늦었다.
불교의 전래
불교도 북중국에서 고구려에 전해졌고, 대략 같은 시기에 남중국에서 백제에 들어갔다. 이때가 닌토쿠(仁德) 천황 시대이다. 이로부터 백 수십 년이 지난 뒤에 신라에도 전해졌으며, 법흥왕(法興王)제23대 때부터 성행했다.
일본에 불교를 전하다
긴메이(欽明) 천황 시대에 처음으로 일본에 불상을 바친 것은 백제의 성왕(聖王)제26대으로, 이때는 신라에서 불교가 흥성한 시기이다.
공예의 전래
각종 공예도 중국에서 전해진 것이 많으며, 삼한이 복속된 후에는 다시 일본에 전해진 것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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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은 없음. 기자와 위만조선은 소개. 

임나諸국은 신라와 대결하고 이후 신공황후가 신라를 정벌하여 임나제국을 보호했다고 표현.

(임나일본부는 신공황후의 신라정벌 이후에 임나에 설치함)

그리고 반도에서 문화를 전수받은 것을 솔직하게 서술. 

하지만, 반도가 일본에 중국문화를 (獻上)바치거나 반도 정복을 통해서 중국문화가 전래(흡수)된 것이라고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