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족이 한반도 중남부에서 펴져있다가  남만주 요동 등 북방계에 밀려  점차 남부 해안지방으로 밀려가  대마도를 거쳐 북규슈로 넘어가고  일부는 반도에 남아 북방계와 혼혈해 한민족을 형성한 것  (마한 진한 변한의 남쪽은 왜와 접한다는 기록과   특히 가야 와 진한 등  영남지역에서  많이 남아 한민족화ㅡㅡ 이는 위지동이전의 마한은 물론 진변한의 왜인과 잡거,  문신 등 왜인습속과 흡사 등의 기록과  신라초기 왜인 왕권의 수립등서 알 수 있듯이) 

 

마한은 말을 탈줄 모른다는 기록,  마한과 진변한어가 다르다는 기록,  백제의 왕칭호의  이원화 등등... 분명 마한어와 진변한어가  각각 초기한국어와 일본어의 근간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반도 중남부 특히 남부는 지명 등에서 왜어계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고 (특히 가야)  o2b1의 대다수와  o2b  일부에서도 왜어계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

 

그후 북방계의 남하와 혼혈에 따라 북한 남만주 유래의 한국어 계통이  이를 대체했다는 것

 

한반도가 양자강과 동남아에 비해 벼재배에  그다지 적합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황하유역의 밀재배 문화를 압도해  남부지역의 벼재배가 반도에 퍼져 남만주지역까지 퍼졌다는 것  (여기엔 o2b가 o2에서 황하대평원이든 요동이든 반도남부든 어디서 분화했더라도   o2 하플로 자체가 양자강 유역의 쌀분화에서 기원을 둔다는 시사점)

 

고구려 발해 뿐 아니라 낙랑지역의 한족과 북방기마세력  그후  거란장 (각종 탈춤 송파산대놀이 양주별산대 놀이 등등과 농악의 꼬깔돌리기와 남사당패 양수척 백정 등  많은 부분이 거란장 마을  유래... )

 

조선 중기 기록서 영남 남해안지방 호구조사서 물고기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어민의 10프로 정도가 북방 여진계로 기록된 점 등 여진말갈계 유입이 예상외로 많았다는 점  (165가 뽐내는 C 하플로의 선주민설도 있지만 이런 요인도 감안해야....  한민족은 산악과 내륙지역의 수렵에 기원을 둔 종족으로  바다에 친숙하지 않고 당시 농경지는 포화상태로  그 사각지역인  어부로 여진계가 많이 정착한듯....   함경도의 경우 남방 사민 못지않게  여진계의 동화 가 많았다는 점 --  북한체제 수립후에도 남북회담서 김일성이 언급했듯이 여진 재가승 마을이 존재했다는 것ㅡ  파인 김동환의 국경의 밤 여진마을 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