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왜족이 원래 같은 뿌리인데 해양문화계적 요소 즉 양자강계 문화(오 월문화- 즉  얼굴문신 흑치 어로문화와  벼수전경작)를 고수한게 왜인계

 

그에비해 예맥적 요소 즉 산악계의 수렵과 유목 기마문화가 첨가된게 삼한계 (변진한 툭히 변한은  삼한중 한과 왜의 중간적 색채로 얼굴 문신등 왜습속이 짙고 북규슈 야요이와 친연성이 많음} 

 

원래 한왜세력이 분리되기전  동일종족으로( 남방 양자강계 o2  하플로 상태로)  산동이나 황해평원,요서요동지역 인근서 혼거 잡거하다가   남쪽 흑산도 부근 밑으로부터 수백년에 걸쳐  서서히 수몰되기 시작한  황해평원이든 그이후 요서 요동이든  o2b로  분화한후  남방 오월문화적 요소를 상대적으로 고수했느냐 (왜)   북방 동호예맥적 문화세례를 좀 더 받았느냐(한)  차이일뿐 -  그 문화차이에는 혼혈적 요소도 많이 작용 즉 한은 예맥등 북방과 왜인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섞였다는 의미

 

단석괴가 요서지역의  오후진수  호수에서 물고기잡이를 위해 생포해온 1천명이 넘는 한국인(한자로 간족 즉 유목계의 왕을 일컫는 칸의  한자 한)의 동일한 사건이   역사서별로 혹은 후시대의 기록에 한인이라고 기록되거나 왜인으로도 혼용해 기록되어 있는게  그런 연유....

 

하지만 한민족과 일본족은 별개...

 

위에 애기한 한왜가 서서히 분리되기 시작해  반도는  만주계와 예맥(40프로)과 중국 한족(20)  삼한족(30)  왜(10)  비율로 섞였고

 

왜는 왜 30프로, 삼한  15프로, 조몬  40프로, 한족 5프로 ,남방해류를 타고온 남방계 10프로 정도로 셖여 별개의 민족화

 

왜는 한과 많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인 야요이계로 기원전에 많이 넘어갔고  후대에  더 예맥화된 삼한은 가야 내지 신라 백제계로 열도초기 왕조수립 전후에 넘어가 지배세력이 됨